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백쌤과 함께 하는 요리의 생활~

by Aner병문

늘 여러 번 말하지만 어머니가 엄격하시었다. 아버지도 엄격하셨지만 어머니는 그보다 더하시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도 엄격하신 아버지와 그보다 더 엄격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늘 적어서 냈다. 여동생과 나는 늘 어렸을 때부터 자기 밥상 자기가 차리고,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샤워하면서 속옷 빨아 걸어놓고, 마른 빨래 걷어 정리하고 늘 그렇게 컸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도 집 청소며 설거지는 늘 하시던 분이라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다. 팔자에도 없는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다른 집 아버님들은 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아버님께서 부엌에 들어가신 걸 본 적이 없다고? 물 한 잔도 어머님이 떠다주신다고? 21세기 한국,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그게 가능한 얘긴가?



서울 한복판은 잘 모르겠는데, 경상도 토박이신 처가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다. 어른들의 생활이므로 말을 삼가도록 하겠다. 결론만 말하자면, 장인어른께서는 물론 다정다감하고 현명하신 어르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집안일을 하는데 스스럼이 없는 사위에게 딸을 보내어 좋으신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총각 시절 가족과의 대만 여행에서 안내를 맡으시었던 부산 출신 화교 아주머니 또한 그러지 않던가. 참 신기한게, 딸네 집 가면 사위가 놀고 있는게 꼴보기 싫고, 또 아들네 가면 며느리가 놀고 있는게 꼴보기 싫고. 하여간 어머니는 뒤늦게 나를 아내에게 보내시며 신신당부하시었다. 너는 이제 내 손 떠났응게, 니 처 말만 잘 듣고 살어라이, 남자 별거 웂다, 돈 꿍꿍 벌어서 처헌티 갖다주고, 속 썩이지 말고, 퇴근했다고 손 놓고 있지 말고, 항시 집안일 같이 허고, 하기사 내가 널 그렇게는 안 키았응게 그렇게는 안 살 거이다, (아내를 보며) 걱정하지 말어라, 며늘아, 혹시나 야가 속썩이면 얘기혀, 당장 날아와서 박살을 내벌랑게로. 덕분에 아내는 지금도 내가 눈치를 보며 술 한병 들라치면, 어머니께 전화하는 시늉을 한다. 아이고, 어머니이~ 애기 아빠가 지금 술병에 손댑니데이~~ 얼른 날아오이소~~ 본가까지는 고작해야 버스로 네 정거장이다.



아내는 비록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내게 와서, 연애하듯이 결혼 생활을 하겠다 다짐하였고, 나 역시 속마음만 잘 헤아리면 평생 잘 모시고 살겠다는 마음이었으므로 함께 지내면서 서로 안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내는 내가 항상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며 심히 감동하였다. 적어도 아내 입장에서는 남자가 이렇게까지?!! 하는 심정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총각시절부터 익숙한 일인데다 거기에 요리만 한두 가지 더 하면 되므로, 사실 중간중간 아이만 울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은 없었다. 밑반찬은 어머니께서 주마다 서너 종류씩 보내주시고, 아이는 백일을 앞두어 몸이 여물어가므로, 서서히 집안 생활에도 축이 잡혀가는 중이었다. 나는 차라리 아내에게 운전이며 가구 조립, 큰 옷 정리 등을 맡기고, 소독, 아이 돌보기, 간단한 청소, 설거지 등을 하는 편이 훨씬 손에 익어 좋았다.



다만 요리는 처음에 약간 걱정하였다. 어린이집 교사를 하기 전부터 손이 야무졌던 동생에 비해 나는 하여간 운전을 비롯하여 기계 다루는 일이며 칼질, 바느질 등 섬세한 일에는 도통 재주가 없었는데, 어머니께 요리하는 법이야 곁눈질로 배웠다지만, 칼질도 엉망이라 그냥 남자의 요리 식으로 대충 썰어다 대충 때려넣어 대충 퍽퍽 끓인, 이른바 안주거리 같은 찌개를 아내가 좋아하려나 싶은 마음이었던 터이다. 아내는 물론 내가 과일을 못 깎는다는 사실에는 조금 놀라긴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도 이러다 사과 한 트럭 버리겠다며 그만두라시고, 그 성격 센 밥 잘하는 유진이도 과일 깎이만큼은 가르쳐주기를 포기하였다. 하여간 칼날을 바짝 붙여 둥글게 굴리라는데, 칼날은 직선이고, 사과는 곡면이므로 대체 뭘 어떻게 바짝 붙이라는거야, 투덜거리다 칼날이 엄지를 파고들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내가 틈만 나면 깎아보라고 연습시켜주어, 지금은 한참 주물럭거릴 지언정 그럭저럭 깎기는 한다. 아내 말로는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장모님께서 어른들께 보일 기본이라며, 처남 형님과 아내에게 과일 깎고, 잘라서 그릇에 담는 법을 직접 알려주셨다고 한다. 여.. 역시 교육직 공무원....



말이 조금 새었는데, 하여간 아내는 내 요리를 잘 먹어주니 나도 힘이 난다. 밥 잘하는 유진이, 수염 큰형님과 함께 일할 때, 업장에서의 요리는 정말 중노동이라서 나는 정말 요식업도 사명감없이는 못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TV에서 하나의 요리를 가지고 멋을 부릴 일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요식업은 정말 끝없이 밀려드는 주문을 끝없이 처리하고, 또 그 전에는 준비로 한세월, 그 후에는 정리로 두세월인,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었다. 나는 수영 이외에는 운동의 경험이 거의 없는 밥 잘하는 유진이가 왜 그렇게 힘이 세고, 팔뚝에 흉터가 많은지 뒤늦게 알았다. 어째서 수염 큰형님이 늘 피곤에 절어 있는지도 그 때 알았다. 그 때의 요리에 비하면 나의 요리는 사실 어머니께 맛의 기초를 배우고, 백종원 선생의 유튜브로 잔기술을 더한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아내는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므로 항상 김치 썰어다 고기 볶아 김치찌개 해주거나, 힘줄에 국거리 양지 섞어놓고, 된장과 고춧가루 풀어 칼칼한 된장찌개를 끓여주고, 아내가 좋아하는 제육볶음과 생고기 육회는 벌써 서너 번이나 해주었다. 고기를 먼저 주스에 담가둔 뒤, 양념을 만들어두고, 채소를 대략 썬 뒤, 함께 부어 중불에 오래 볶으면 끝이다. 아내는 또한 면을 좋아하므로 좋은 제면소에서 국수를 받아다 비빔국수를 해주기도 하고, 어머니의 밑반찬에 들기름 살짝 부어 비빔밥을 해주었더니 속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번 주말에는 집에 많이 있는 양파와 사둔 카레가루, 그리고 고기를 조금 볶아 또 아내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한다. 아내가 맛있게 먹어주니 나도 자꾸 요리에 욕심이 난다.



아내는 경상도 토박이로 살다 나 하나 믿고 이 먼 타지까지 와주었다. 아직 젊은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데 나가지도 못하고, 오로지 아이만 돌보며 주5일을 집에만 있는 아내가 안쓰러워 먹는 재미라도 자주 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밥 잘하는 유진이한테도 자주 물어보고 그런다. 밥 잘하는 유진이는 도장 사매가 되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엄격하여서, 제발 칼질 좀 잘 하라고 잔소리하기를 잊지 않는다. 어제는 비가 너무 와서 기분이 좋기에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술 한병에 안주를 사다가 아내와 함께 먹었다. 물론 아내는 술을 못하지만, 나는 그 때 오돌뼈볶음을 뒤적이면서, 나도 이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잭 니콜슨이 어느 영화에서 말하듯, 사랑은 늘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게끔 한다. 그저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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