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2021, 올해도 우리 부부의 일주일 차 생일을 맞이하여.

by Aner병문

한 해를 미루나 싶더니, 결국 2020 도쿄 올림픽은 2021년에 이름을 고치지 않고 개회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 해 밀리면서, 개막 공연의 내용도 많이 수정되었고, 제약도 많았을 것이며, 이미 만들어둔 상패며 각종 제품의 이름들을 다시 2021년도로 수정할 수 없으니 그대로 2020으로 진행하는 올림픽이라도, 아무리 예전과 달리 유튜브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로 활짝 열린 대명천지에, 골판지 침대며 후쿠시마산 식자재로 구설수가 있는 올림픽이라고 해도, 올림픽은, 인류의 축제이며 화합의 장이다. 아내와 나는 어깨를 맞댄채 일본 올림픽의 개막식을 보았고, 또 영국이나 중국의 개막식을 다시 보면서 잠시 회한에 잠겼다.



아이는 오랫동안 집에 없었다. 갑자기 아토피가 심해진 아내와, 덩달아 피부가 빨갛게 오르기 시작한 손녀까지 걱정되신다며, 어머니는 아내 편히 쉬라며 일단 손녀를 데려가신지 벌써 3주 가까이 되었다. 아내는 그 동안 푹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서, 살이 포동하게 이쁘게 오르고, 피부가 깨끗해져서 보기 좋았다. 어머니가 열과 성을 다하여 손녀를 돌본 덕에 소은이도 빨갛게 오른 피부가 하얗게 가지런해지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하여 한시름 놓았다. 그러므로 집이 깨끗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어, 아내와 나는 모처럼 대청소를 하고 즐겁게 생일맞이 손님들을 모실 수 있었다.



나이 먹어 관계를 많이 추리고, 이제는 정말 소박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도, 하루 온종일 연락과 선물이 왔다. 전화기가 울기 시작하면 생일 축하 인사였고, 무언가를 보냈다는 내용이었고, 또 무언가가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곽군은 오십도짜리 보리 소주를 사오려다가 형수에게 혼날까봐(!) 13도짜리 텁텁하고 깔끔한 맛의 연꽃 막걸리로 바꾸었고, 너의 엄 군은 머쓱한 얼굴로 '양주 사오렸는데, 형수님께 한 말씀 들을까봐...' 하며 바로 마실 수 있는, 압축식 커피 원액 두 상자를 가져왔다. 그 외 책이며 온갖 선물은 셀 수 없었다. 게임하다 말고, 술 마시다 말고, 얘기하다 말고, 자꾸 선물을 받느라 들락날락하는 나를 보며 너가 오랜만에 왼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틈을 타서 너는 작게 속살거렸다. 언니는 여기 아무 연고 없이 혼자 왔는데, 전 선생님 혼자 너무 선물 받고 우리랑 노느라 신나하지마, 언니 안쓰럽다. 아, 이것이 어느 때 어느 땅에 있건 서로 끈끈한 여성들의 마음인가. 그래서 이사벨 아옌데는 어느 하늘 아래 있건 간에 끝내 꿋꿋하게 살아가는 운명의 딸 엘리사 소머스를 말했었던가, 그녀 곁에서 의술과 무공을 익혀 충실히 인연을 지키던 중의(中醫) 타오 치엔처러 살고 싶었던 내 꿈은 얼마나 왔나. 비록 의술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동서양의 인문학과 과학에 대하여 읽고, 태권도를 꾸준히 훈련하여 어느덧 단과 부사범 직을 받고 있다. 벌써 서른일곱번째의 생일을 맞아 나는 내 인생 어드메까지 왔던가.



아내의 생일은 비록 연고가 없다 한들 못지 않게 성대하였다. 고개 남쪽 곳곳에 퍼진 아내의 동창들이 끊임없이 축하 문자와 선물을 보내왔고, 교회의 얀미와 너가 또다시 선물을 보내며 너의 마음을 훑어주어서 아내는 고마워했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손녀를 돌보며 혼신을 다하셔도 정말 피곤하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3주 가까이 조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느라 아이는 그새 떼와 애교가 늘었는데, 어머니는 때마다 피부에 좋다는 당근을 갈아먹이고, 블루베리를 짓찧어 먹이고, 두부와 오리고기를 푹 고아 떠먹이고, 씻길 때마다 고급 크림을 발라 금이야 옥이야 돌보느라 애를 쓰시면서도 즐겁다고 웃으셨다. 너그들도 부모 됭게 부모 마음 알겄지? 부모는 한도 끝도 없는 거이다,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괜한 잔말씀이 되실까 아버지가 얼른 술잔을 비우며 말씀을 받으셨다. 그래도 이 사람아, 이렇게 사니 좋은 것이제, 없다고 생각해보시게, 무슨 쓸쓸함인가. 하이고, 뭔 말을 그리하셔요, 암만 장가가고 애 낳고 상게 좋은 것이제, 없어봐요, 서로 쓸쓸해서 살간, 하면서 건너가는 어머니의 눈빛이 또 여동생에게 닿아서, 나와 세 살 터울에, 아직 시집가지 않은 여동생은, 술잔을 탁 상 귀퉁이에 내려꽂으며, 아따, 인자 또 나헌티 불똥 튀겄네, 어찌 오라방 부부는 싸우도 안하는가(싸우지도 않나), 막 서로 못 살겠다 싸워야 나한테 시집 가라 말도 안할 거인디. 어머니가 장난식으로 눈을 흘기시며 치는 시늉을 하시었다. 저 년이, 즈그 시집 못 가는 것은 생각도 안 허고, 새언니헌티 멋이 막말이냐, 이 잡것아, 너가 빨리 가야, 나도 편히 눈을 감제. 아따, 엄니는 천년만년 살 것잉게, 염려 말랑게, 아마 소은이 애 놓을때까지 살 것이네. 모녀 간에 반농반진으로 옥신각신하는 새에 아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하이고 마, 어머이 어째 그러십니까, 아가씨 시집 못 가는게 아이고 안가는 거지요, 인자 두고 보이소, 울 아가씨 세상에서 젤 멋진 남자 골라가 데려올낍니다, 기다려보시이소. 하여간 그동안 메마르고 강팍했던 우리 집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억양과 표현과 말씨로 늘 집안 분위기를 녹이는 것은 아내인지라 우리는 또 그냥 와그르르 웃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아버지께서는 '무려 50일만에 목을 축이는구나' (한동안 두통이 있으셔서 어머니 감시 하에 약주를 못하셨..) 라시며 와인 1병, 소주 2병을 나와 함께 비우셨다.




요즘 사범님께서 도장 지도, 외부 일정에 더하여 양감독 TV의 유튜브까지 참석하시며 바쁘시기도 하시어 잠시 돕느라 어제도 도장에서 훈련을 했는데, 그때 오랜만에 돌아온 가라테 출신의 흰 띠 동갑내기 수련자께서 저어, 수련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새 2단도 따시고, 결혼도 하신거 같은데, 혹시...(여기서 뜸들이심) 결혼하시면 정말 좋습니까? 그래서 나와 사범님이 함께 폭소하였다. 아니, 그렇게 뜸을 들이면서 물어보면 대체 내가 대체 무슨 답변을 해줘야 하나? 하고 나는 웃었고, 총각시절 서른살때부터 7년간 나를 돌봐주신 사범님께서는 아아, 우리 전 동지, 결혼 잘했지, 장가 잘 갔지, 결혼하고 팔자폈지! 하며 말을 거들어주셨다. 사실 처자식이 있건 없건, 나는 늘 일을 했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고 태권도하고 술을 마셨다. 다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외로워하고, 마음의 빈 틈을 메우지 못해 괴로워하던 시간에 이제는 마음을 쏟을 처자식이 있어, 마치 닻을 내린 배처럼, 손잡이를 무겁게 단 채찍처럼, 비로소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임시 부사범 직을 맡으며, 나는 요즘 들어 늘어난 흰 띠 수련자들께 늘 기초의 가운데찌르기를 할때, 찌르는 손을 너무 신경써서 어깨가 앞으로 나가거나 잘못 엇나가게 찌르지 않으려면, 반대손을 허리에 붙여 반대편 어깨를 고정해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늘 말한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단순한 틀이나 품새의 찌르기, 반대쪽 주먹 하나도 그 무게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내 삶의 의미는, 처자식과 가정의 무게로 더욱 깊어졌다. 아버지는 오늘도 우리를 배웅하시며 늘 지금처럼 살라고 하셨다. 아내는 늘 나를 새롭게 하는 분이다. 벗들에게도 약속하듯, 이 행복을 깨지 않고 살고자 한다. 1주일 터울로 태어난 우리 부부는, 4년의 나이 차이를 건너 이렇게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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