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도올 김용옥,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통나무, 2013.
다시 한번, 대저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동아시아에서 자랑할만한 역사를 지닌 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학교에 적을 두지 못한 지금도 오랫동안 책을 읽어 왔다. 학문이든 무공이든 무엇 하나 내 이마 반쪽 가리지 못할 정도로 얕지만, 수불석권(手不釋券),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에는 부끄럽지 않을만큼 늘상 단 한 줄이라도 읽고 담아두려 했다. 학교에 들었을 적에는 이른바 동양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깨느라 두어 해, 또 세상 쓴맛을 실컷 보고 나서는 내 마음을 가다듬느라 다시 수없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바는, 무공이 내 스스로를 이기고자 하는 것처럼, 철학도 결코 상아탑의 이상적인 거대담론이 아니라, 그저 갑남을녀 장삼이사 백성만민의 일상 곳곳을 긁어주고 보듬어주는, 속시원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지적처럼, 일제 치하의 번역식 서양철학용어며 의학용어(요즘엔 많이 바뀌었더라만), 법률 용어 등을 그대로 고수하고자 하는 학계의 흐름은, 이른바 하이어라키(hierarchy)를 지키고자 하는 하나의 면모일 수 있다. 오랫동안 한어(漢語)를 써오면서 '어려운 용어의 경제적 이점' 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여하튼 나는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 선생마냥, 늘 무공의 한 수를 내 한 몸에 심으려고 노력하듯이 철학의 위대한 가르침 중 단 한 줄이라도 비루한 마음에 담고자 애썼다. 젊었을 적 상처를 준 이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도올 김용옥 선생처럼 학계와 일상 면에서 평이 갈리는 이도 드물 터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끊임없이 '독하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들 이견이 없을 듯하다. 나 역시 누군가가 혹여나 술자리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을 어찌 생각하냐 고 물어오시면, (나 따위 책 읽는 아비가 무슨 한 시대의 위대한 석학을 평할 수 있겠냐만은) 항상 '공부 하나는 기차게 많이 하신 분이시지요.' 라고 답하곤 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으신(아마 이 점에 대해서도 평은 크게 갈리지 않을 것이다..ㅋ) 김용옥 선생은 뜻밖에도 무공에도 일가견이 있어, 젓가락을 비롯하여 손에 들린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다 던져 비수처럼 벽에 꽂는다는 외수 선생님마냥, 태권도의 고수라고도 했고, 또 한때 그의 노자 강의를 EBS에서 방영해주었을때, 난데없이 영화배우 류승범 씨와 함께 다리를 쫙쫙 찢는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시인과 소설가를 꿈꾸던 배불뚝이 문학소년이요, 한창 택견이며 권투, 종합격투에 눈이 돌아버린 젊은 시절에도, 태권도에는 구태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끽해야 올림픽에서 서로 껴안고 전자호구 맞추느라 덩실덩실 다리나 던져대고, 품새라봐야 타점도 상관없이 무조건 하늘로만 퍽퍽 뻗어대는게 무슨 무공이란 말이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태권도에 대한 관심은, ITF에 입문하고도 한참 있어, 검은 띠를 목전에 두고 비로소 태권도의 참맛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무렵 싹트게 되었다.
도올 선생의 상기 저술은, 하나의 논문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학술적인 수필 모음에 더 가까워 '인간으로서 고매한 지식과 무공과 인격을 지닌 내가 당시의 폐쇄적인 태권도 및 언론계에서 얼마나 핍박을 받느라 이 논문집 하나 제대로 간행은커녕 발표조차 못했다' 라는 넋두리를 제외하면, '태권도' 라는 열쇠단어Keyword 안에 철학/인문학/사회철학/체육학 등, 엮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엮었다는 느낌이다. 회사 식으로 말하자면 내 모든 일상이 다 백업되어있는 애플 ID를 보는 듯도 하다. 어쨌든 그 스스로도 '경기태권' 이 발돋움하기 이전의 5,60년대 고류 태권도-가라테와 태권도 사이에서 태수도, 화수도, 당수도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명확한 형태가 없었던 - 의 2단을 받은 이답게 적어도 몸(Mom : 한글 몸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는 본인의 몸 철학을 말할때 항시 영어 철자로 이를 표현한다.) 철학, 기철학(氣哲學 : 기철학에 대해서도 서경덕이나 최한기나 이지함 등의 철학 등이 이미 그렇게 불리고 있음에도 그러한 유교적 가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에 대해 논하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보인다. 특히 '고구려 무용총의 수박도나 신라 불상의 자세에서부터 태권도의 기원을 알 수 있다' 는 국기원의 태권도 전통론을 극렬히 비판하고, 태권도가 결국 가라테에서부터 출발한 근대 무공이라는 점을 여과없이 드러낸 점에 대해서는, 이 논문에 대해 누구도 이견을 가할 수 없거니와 태권도의 격렬한 분쟁과 논란의 역사 속에서 김운용 총재가 IOC로 하여금 태권도를 올림픽의 '께임' 속에 넣기 위해 경기태권이라는 정밀한 단어와 개념을 만들어 지금의 스포츠 태권도을 만들고, 그 저변을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분석해냈다. 또한 개신교적 변증법을 더하여 품새/틀/카타/투로 등이 율법이라면, 겨루기/맞서기/대련/스파링 등은 성령이라며, 전자의 수련방법은 본디 실전을 상정하여 정확한 각도와 힘을 지켜야 하는 미학적 수련이지만, 후자의 수련방법에는 잘 통용되지 않는다며, '실전을 상정한 형의 연습' 보다 오히려 매번 성령의 번뜩임처럼 예상 외의 즉각적인 동작을 취해야 하는(그는 여기서 WT태권도의 받아차기 자세를 예로 들었다.) 겨루기 자세가 품새를 상회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저술하였다.
태권도라는 열쇠단어 하나로 폐쇄적이고, 왜곡된 태권도계의 비판에서부터 무공의 역사, 효용을 다루고, 체육학을 넘어서 철학적, 사회적 요소까지 빠짐없이 함양한 그의 저술은, 과연 쉼없이 책을 읽고 공부해온 그의 박학다식함이 여실히 드러나며, 그 또한 어느 면에 있어 문무를 겸비한 인물임을 능히 알게 해준다. 오죽하면 '한복 입고 거들먹거리며 학교 망신 시키지 말라' 며 화장실에서 덤벼온 모교 K대의 학생들은 본인의 태권도로 능히 제압했다는 '썰' 이 있지 않던가. (크..클레멘타인?!) 다만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 식으로 여기서도 노자의 도덕경이나 기타 고전들, 혹은 서양 석학들의 문구까지 두루 해석하여 태권도에 적용하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노자를 제국주의의 교조를 읽어낸 강신주 선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내가 강해지려면 먼저 상대를 강하게 해주어야 한다' 는 문구에 대해서, 강신주 선생은 자본주의 국가가 백성을 착취하기 위해 마치 복지제도로 선심을 쓰는 척 백성들에게 재생산을 위한 기반을 내주어야 한다는 구절로 해석했는데, 김용옥 선생은 이미 '노자와 21세기' 에서도 그렇게 해석했듯이, 그 구절은 상대의 강한 공격을 부드러운 허(虛)로 끊어내는 방식이라며, 노자가 무공에도 절륜했던 인물이라 평했으며, 훗날 그는 도덕경을 도가 특유의 양생비법이 담긴 책이라고 까지 해석하여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느니 저러느니 해도 나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나 강신주 선생, 혹은 여타 다른 문무의 석학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작은 배움과 큰 부끄러움을 지닌 이다. 나는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좁은 어깨의 가장이며, 하루 잘 먹고 잘 마시고 아내와 함께 훈련할 수 있으면 족한 이이다. 아내는 어제 처음으로 정식으로 태권도의 찌르기를 배웠다. 생각보다 재밌어하여 무척 다행이었다. 오늘은 원래 국궁장으로 활쏘기를 배워보려 했는데 아내는 근육통이 심하여 드러누웠다. 나의 학문이 그러하듯이, 나의 무공 역시 생활을 넘지 않는다. 어제 사범님의 말씀으로, 국내 심판 및 부사범 자격증을 신청하였다. 이제 난.. 죽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