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감독 미야자키 햐야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일본, 2004

by Aner병문

버섯은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 라고 했고, 지브리의 3대 걸작하면 1)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 보다 늘 이 이름이 더 입에 붙는건 나도 어쩔 수 없는 80년대생이기 때문일까?) 2)천공의 성 라퓨타 3)붉은 돼지 라고 생각하는 나인지라 상기한 작품들만 정기적으로 돌려봤을 뿐, 다른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그다지 보지 않았다. 그나마 전공투 세대의 민중운동을 표현하는 걸작이라고 하여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본 정도가 다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는 서사나 작화가 조금 거친 느낌이고, 마루 밑 아리에티나 바람이 분다, 등은 어쩐지 지브리 초기의 향수를 자극하기엔 많이 모자랐다. 백신 2차 접종으로 정신없을 즈음, 몸이 고달프고 시간은 많아서,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베이컨과 달걀을 곁들인, '하울 정식' 으로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도 보았다.



몸이 썩 좋지 않고 나른하여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였기 때문일까. 그 어떤 지브리 작품보다도 서사는 흩어졌고, 기승전결은 난데없이 흘러갔다. 흥미가 있을만한 내용은 그나마 옛 지브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 자체와 언제나 늘 당당하고 침착한 소피뿐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스로 지지한다 말했던 인류평등, 여권신장, 평화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온갖 '리버럴한' 이념들이 이 영화에 온통 잡탕처럼 끓고, 금발의 하울은, 비록 겁쟁이일망정 흑발이 되어도 여전히 그 미모와 젊음을 자랑하지만, 이 영화는 죽음까지 불사하며 인간과 자연의 화합을 꿈꿨던 원령공주나 나우시카, 혹은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고 싶었던 마르코의 모습처럼 강렬한 무게는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늘 소심하리만치 정갈하게 살다가, 당당하고 활기차게 스스로를 책임질때 아낌없이 젊어지는, 소피의 모습이 훨씬 더 지금 마음에 남는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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