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요즘엔 이래 살아요.

by Aner병문

아이는 근 한 달만에, 이틀만 있다가 다시 도로 어머니 아버지의 서울 집으로 돌아갔다. 이유가 있었다. 7월에 있는 나와 내 아내의 생일을 편히 보내라고, 어머니는 딸을 잠시 맡아두겠다 하셨다가 이러구러 조부모님으로서의 사랑이 길어지다보니 근 한 달을 묵다가 염치없는 손녀가 돌아오게 된 것인데, 물론 시댁/본가라고 해봐야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 걸어서도 30분이면 가는 거리를 우리 부부 오며가며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오랜만에 제 어미 품으로 온전히 돌아온 딸은, 몰라보게 컸고, 야무졌으며, 성질도 꽤 늘어서...(...) 제 부모 먹는 것은 무엇이든 저도 달라고 입을 벌리며 방방 뛰어다녔고, 주방을 막아둔 울타리도 제가 무슨 등반여제 김자인 선수라고 탁탁 잘도 올라와서, 더욱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딸자식한테 무슨 태권도냐고 벌써부터 내게 퉁을 놓으시던 어머니께서 결국은 퀭한 목소리로 '아앗따, 지지배, 어찌나 기운이 넘치는지 기양 쟈는 운동 씨겨야지(시켜야지) 안되겄다, 사람 하나 잡겄다 잡겄어, 쟈는 절대 어데 가서 오야붕 되았으믄 되았지 쫄자는 안 해 묵을 것이여.' 하며 웃고 마셨다. 첫 날은 감격적인 부모 자식 상봉으로 그렇게 즐거운가 했는데 둘째 날 밤, 도장에서 돌아온 나를 기다리느라 아내와 함께 늦게 잠들 무렵, 자정 넘어 아이가 끙끙 앓으며 잠을 깨기에 결국 우리 내외는 꼴딱 밤을 샜는데, 아뿔싸, 또다시 아이의 피부에 빨간 반점이 돋으며 온 몸을 긁느라 정신이 없었다. 양방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아내와, 연세를 드시며 자연과 한방 민간 요법에 점점 신뢰가 늘어가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사위이자 남편이자 아들이자 아비로서 나의 처신도 어려웠으나, 그래도 아픈 애 앞에서 고부의 토론은 길지 않았고, 정말 놀랍게도 아이는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간지 정말로 반나절만에 피부의 빨간 반점이 사라지고 긁지도 않았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 집은, 관악산 줄기 밑에서 산바람이 내려와 절로 맑고 시원한 곳이긴 했으나, 새삼 갓난아이의 피부에도 영향을 주는가 싶어서 부모로서 마음이 복잡하였다. 아내와 어머니는 서로 손을 맞잡고 오래 이야기하였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이의 몸은 심하게 아프지 아니하고, 아내와 어머니도 고부갈등이라 할만큼 충돌이 있다기보다 서로의 방법론이 달라서 그에 대한 합치점을 찾을 뿐이었다. 나는 그래도 예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기꺼이 여유를 갖고 서로를 대한 아내와 어머니에게 참 고마웠다. 사실 우리집은 출근 전이나 퇴근 후, 혹은 도장에서 돌아온 뒤에 내가 주로 설거지와 빨래, 청소, 밥하기, 아이 밥 등을 만들며, 아내는 육아 세미나를 참석하거나, 혹은 아이의 장난감을 빌려오고, 또 고치거나, 형광등을 갈거나,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하는 일을 도맡았다. 누가 보면 성 역할이 바뀌었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언변에 비해 눈치가 적고, 손재주도 없고, 무엇보다 운전도 서툴어서 군대 시절부터 참 눈칫밥 많이 먹었다. 아내는 운전도 시원시원하게 잘하고, 끈도 잘 묶고, 망치질이나 가위질도 눈대중으로 잘하지만, 매일매일 빨래나 청소, 설거지처럼, 잔잔하게 끊임없이 오래 해야 하는 일에는 어쩐지 성향이 안 맞는듯 하였다. 내가 매일 조금씩 책을 읽거나 일찍 일어나서, 혹은 퇴근 후에 도장을 가서 꼭 하루의 훈련량을 채우는 것을 보면, 그게 정말 어려운 건데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가끔 들르시는 어머니가 보기에, (회사에 나가 있는 동안은 내가 집안일을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일은 뭔가 정리되지 않은듯 정체되어 있고, 반면 아내가 원격 참여로 뭔가 상품권이나 육아수당 등을 받아온다거나, 혹은 뭔가를 수리하고 설치하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 아니므로, 어머니가 생각하는 며느리로서의 모습과는 다소 달랐을 것이다. 오랫동안 어머니와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어머니가 내게도 물려주신 그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품을 거두시고 그렇게까지 며느리를 부드럽게 품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결혼이 처음이니까..;;),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처럼 무슨 일이든지 '내 아들이 먼저 잘못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여담으로, 늘 어머니께 혼나고만 살아온 나로서는 술자리에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가, 맞은편에서 캔맥주를 마시던 너가 낄낄대며 '그거 진짜 어려운거야, 전 쌤, 잘 생각해봐, 소은이가 나중에 커서 뭔가 잘못했다고 해봐, 아버지로서 아무리 그래도 소은이 편 안 들어줄 수 있겠어?' 그 순간 마시던 고량주가 목에 턱 하고 걸려 콧구멍까지 화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선하다. 아무리 혼내더라도 결국엔 아비로서 내 딸 곁에는 내가 있겠으나, 그래도 그 때의 처신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사실을, 나는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완벽한 부모가 없듯이, 완벽한 부부이자 짝들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더 편하고자 부부가 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의지가 되어주고자 결혼했다. 내가 혼자 있다면, 나는 내 스스로 밥이나 빨래, 청소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기타 할 수 없었던 일에 내 스스로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을 터이다. 내가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었던 일들에게 구태여 반려에게 화를 내며 실망했다면, 사실 반려의 잘못이라기보다 '당연히 집에 있는 너가 이정돈 해주겠지, 그게 부부 아니야?' 라는 내 스스로의 기대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나 스스로도 가정의 모든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그러면 아내가 나와 함께 일을 해줄때 무척 편하고, 도장으로 가야할때도 훨씬 여유를 가지고 아내에게 부탁할 수 있다. 평소에 모든 일을 내가 주관하여 하는 모습을 아내도 늘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딸이 없을때 쉬면서, 어머니를 대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회사와 도장과 집에서, 매 순간마다 내게 맡겨진 일을 다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우리가 완벽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떄문에 결혼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는데, 그 말이 참말로 옳아서, 나는 술잔을 기울이다 무릎을 탁 쳤다. 안타깝게도, 늘 바빠 책을 다 못 읽거나 태권도 훈련을 덜 하는 날은 있어도, 술을 마시지 못한 때는 많지 아니한 듯하다. 시간을 쪼개어 나는 모범 맞서기 훈련을 마쳤고, 사매들과 함께 새로 입문한 수련자들과의 훈련과 지도 보조를 반복했으며, 사범님께 부사범 자격증과 국내 단증을 받았고, 도장 업무를 배우고 있다. 회사는 여전히 바쁘고, 코로나에 못 이겨 집 주변의 좋은 밥집, 술집들이 자꾸만 꽃잎 떨어지듯 사라지는, 슬픈 시대다. 내 가족과 도장 사형제 사매들, 사범님이 옆에 계시어 늘 감사하다. 늘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내 딸도 더 몸이 좋아져서 이 아비 어미와 늘 즐겁게 살고자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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