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비 내리는 날에는 아내가 온다.

by Aner병문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이미 들어서인지, 내 몸의 이음새들은 벌써 어제 저녁부터 아우성쳤다. 닳듯이 피곤한 속세의 삶에서, 아내도 오랫동안 시댁에서 딸을 돌보고 모처럼 여유를 내어 나와 함께 저녁을 보냈다. 나는 정말이지 아내가 보고 싶었다. 휑뎅그렁한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회사와 도장에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책들이 널브러진 거실로 돌아오는 삶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못박아두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외로움을 상기시켰다. 젊은 시절, 외로움들은 늘 곰팡이처럼 스며서 책과 책 사이에, 굴러다니는 술병 사이에, 땀에 젖은 도복 사이에 어디든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되돌아오는 시간이 싫어서 아내가 있을 때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오래 숨을 빨았다. 아내의 옷깃에 배인 아내의 향취를 맡으면 마음이 가라앉아서 좋았다. 나는 아내와 밤거리를 오래 걸었고, 모처럼 중래향에 가서 마라 양념으로 튀겨낸, 말린개구리다리와, 가지튀김과, 바지락 양념볶음에 걸신들린듯이 먹으면서, 큰 고량주 한 병을 마셨다. 몸의 허기보다 마음의 허기를 늘 더 견딜 수 없었다. 아내가 있어서 나는 그 곁에 조개처럼 붙어서 오래 잤다. 비가 칼처럼 내려서 몸에 꽂히는 듯한 날이었다. 아내가 없으면 나는 더욱 심약하여 버티기 어렵다. 요즘 세상을 버텨내기가 내 스스로 많이 힘든가보다. 처자식이 가까이 없으니 자꾸 총각 시절처럼 책이나 도장으로 잊으려는 나날들이 늘어난다. 도장 일이 너무 바빠 의외로 술은 많이 마시지 아니하였으나, 마신다 한들 잊혀질 기억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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