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의 출생신고를 하던 날.
나와 꼭 닮은 딸을 보며 감격에 겨워 킬킬 웃던 날이 엊그제 같은게 아니라 엊그제였는데, 30일 이내에 빨리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며 나라에서 벌금을 물린다니 서둘러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혼인신고 할때와 마찬가지로, 서른 중반이 되도록 속썩여 장가나 갈까 싶던 아들이 짝을 맞추고 손녀까지 낳아 그 자리에도 동행하시려는 마음도 이해가 갔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크신 모양이었다. 야, 내 친구 중에 원래 이름이 김길순인데 말여, 아부지가 이름을 잘못 써서 김질순이 되어부렀당게, 김질순이 뭐냐, 김질순이, 그거 한 번 법원에 들어가믄 고치는 거이 지독스럽게 어려운 것이다잉, 긍게 꼬옥 글자 또박또박 써야 혀, 하시며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할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러나 막상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주민센터에 가 출생신고를 하겠다 하자 마스크 속 표정은 알 수 없었어도 담당 공무원의 눈빛 또한 묘하게 흔들렸다. 아버님, 이거 뭐 하나 틀리시면 다시 써야 하는것도 복잡하지만, 혹시 문제 생기시고 그러면 아버님이랑 저랑 둘 다 같이 법원에 가셔야 해요, 그러니까 한 삼십 분 이상 걸릴 거니까 긴장 조금 하시고 작성 부탁드릴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모든 일을 끝마칠 때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으며 종이를 4장이나 바꿔가며 다시 썼다. 어머니 덕택에 한자특기생으로 대학까지 갔으며, 평소에는 갈겨 쓰도록 편히 쓰던 한자가 그 날따라 왜 이리도 잘 안 써지던지, 글씨는 붓 쥔 자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더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아내가 안타까워 하였다.
출생신고를 하기 전부터, 나는 내심, 아기 이름이야 부모가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아내의 의견을 달랐다. 뭔 소리를 하십니까, 우리도 하나 지어놓고, 시댁에서도 지으시고, 울 집에서도 하나 지으시고, 서울 목사님이랑 경주 목사님이랑 다 이름 받아가, 그 중에서 우리가 정해야지예. 즉슨, 양가 어른들이며 목사님들께 이름을 모두 받아서 그 중 정하겠다는 뜻이었다. 내가 현재 모시는 목사님의 따님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얀미는, 요즘엔 이런 이름이 대세라며 이스라엘의 준말- 이엘이라는 이름을 보내왔다. 장인장모께서는 그냥 너희들이 지으라며 넘기셨고, 어머니는 빛날고 어질게 살라고 채인이, 아버지는 복이 파도처럼 들어오라며 해랑이 라는 이름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래도 기왕, 속 썩이다 장가를 갔으니 조금 더 아버지께 기쁨이 되고 싶어서, 항렬을 염두에 두었다. 내가 불 화 변 항렬이었으니, 내 자녀들은 흙 토 변 항렬을 가져야 했다. 흙 토 변 한자 치고 딸에게 어울릴만한 어감이 많지 아니하였다. 그 중 겨우 흙 빚을 소 를 찾아내었다. 처가는 장인 어른만 제외하고 모두 독실하게 태중에서부터 신앙을 지켜왔고, 나는 비록 술을 즐겨 늘 아내에게 타박을 듣지만, 역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흙 빚을 소 자는 의미가 있는 돌림자였다. 주님께서 흙으로 빚어준 은혜를 믿지 말라고, 고심 끝에 소은이라고 지었다.
혼인신고를 할 때도, 출생신고-혼인신고-이혼신고-사망신고 절차에 대해 안내하는 공간이 차례대로 있어, 참으로 서류로 요약되는 한 인생의 삶이구나 싶어 속으로 웃었었다. 그 중 출생신고를 보니, 과연 아직 젊고 미숙한 부모의 삶이, 이제 막 움터 나오는 아기의 삶과 겹쳐 기반이 되어줘야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여실히 났다. 서류는 단 한 장 뿐이었지만, 경직되었고, 날카로웠다. 서류는 내게, 혹시 혼외자식인지 물었고, 아내가 외국인인지 물었으며, 혹시 아내의 성과 본을 물려줄 것인지를 물었다. 서류는 나와 아내가 그동안 어데에서 태어나 어데에서 사는지 물었고, 우리 아이는 어데서 키울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하나하나 또박또박 답해 쓰면서, 우리 아이가 아직 어떻게 끌지 헤아릴 수조차 없는데, 부모가 이렇게 마음대로 출생시키고, 신고까지 대행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괴상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좌우지간 어머니는, 손녀의 이름이 적혀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받고 나서야 아따, 축하헌다잉, 하시며 웃으시었다. 이래서 아들딸은 부모님께 뺨을 맞고 크지만, 손자손녀는 조부모 뺨을 치며 큰다고 하던가. 어머니는 매일매일 손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참말로 지독시럽게도 이쁘다잉, 봄바람처럼 녹고 계신다. 나는 여지껏 이러한 어머니를 뵌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