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쓰는이야기는술한잔먹었어요(1)

오항녕, 조선의 힘, 역사비평사, 2010.

by Aner병문

21세기 하고도 벌써 이십년이 가까이 지났다. 새 세기둥이도 벌써 헌헌장부가 되었을 세월에, 아직도 우리 도장에는 '태권도는 스포츠 발장난 놀이 아닌가요? 북한태권도는 좀 실전성이 있겠죠?'하며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나 스스로도 그랬으므로 사실 탓할 마음은 없다. 이십대부터 그나마 무공을 열심히 해왔음을 자랑은 한다만, 결국 경력을 자랑하는 이는, 경력밖에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진짜 실력이 있다면,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십대의 나는, 오로지 나의 나약함을 가리기 위해서, 일부러 더 잔인하고, 강렬하고, 하여간 속세에서 잔인하고 거칠다고 소문난 기술들만 찾아다니며 몸의 기본도 갖춰지지 않았으면서 기를 쓰고 배우려 애썼다. 서른 되어 비로소 정통 무공을 익히려 했어도 내 몸이 따라주지 못했던 건, 분명히 타고난 재주도 둔하고, 나이 탓도 있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귀한 시간을 함부로 써서 몸을 망가뜨린 이유도 크다. 결국, 나의 선입견이 내 스스로 몸을 망가뜨린 것이다. 어떠한 무공은 실전적이지 않아서 그저 춤에 지나지 않다고, 비껴서 치워버렸던 내 스스로, 과거의 내가 결국 미래의 나를 망가뜨렸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아직도 술을 끊지 못했다. 사실, 끊을 마음도 없다. 껄껄.



내 빈한한 삶에 무공과 폭력의 구분이 아리송하다면, 커다란 역사의 세계에서는 아마 '근대' 가 그럴 터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근대를' 맞이한 우리는, 사실 아직도 근대가 무엇인지 모른다. 근대를 정확히 정의할 수 수 있는 시대가 과연 오기나 할까? 근대는 과연 어느 특정한 시기에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을 모두 이룬 서양화인가? 근대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 초, 나는 한국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역사를 연구한 김영식 선생의 논문집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사실 우리 스스로 맞이하지 못한 근대-일제-광복-해방공간-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더부룩함' 을 느끼는 이유는, 그 모든 상황을 우리 스스로 헤쳐나가지 못했으며, 우리의 언어로 체득하고 해석하고 이해할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업혁명을 이룩한 서양을 근대의 기준으로 삼아 항상 '그보다 뒤떨어졌던 조선' 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했었다. 한때 유학을 전공했던 나 역시 다르지 아니하다.



우리가 '근대' 라는 두 글자를 오해하여 빚을 스스로 지워 더부룩하듯이, 오항녕 선생의 날선 글에서는, 정말이지 우리가 잘알지 못하는 언어들이 춤을 춘다. 우리는 유학을 모르고, 당쟁이 뭔지 모르며, 이념이 뭔지 모르고, 근대를 모르며, 그러므로 조선 시대를 모른다. 적어도 한때 공무원 생활을 하며, 제도와 기록의 중요성을 깨우쳤기에 실록으로부터 조선사를 접근하는 저자의 문체는 사람의 마음에 깊게 닿는다. 시대의 한계가 있을지언정, 동아시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선사를 톺아보며, 현대의 역사에까지 닿고자 하는 오항녕 선생의 글을 아주 깊이 읽었다. 밑줄 깊이 그어가며 뽝뽝 읽었다. 결국 우리는 철학을 논하기 전, 우리가 쓰는 언어나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젊은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은 진실로 옳다. 나는 내가 젊은 시절, 막연히 상아탑 속의 글로만 알고 있었던 조선의 내면을, 한 꺼풀 더 벗겨본다. 그 것은 한낱 필부에 불과한 내 삶과도, 둔한 몸으로 죽는 그 날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내 태권도와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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