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스틴 대니얼 크레튼, 샹치 : 텐 링즈의 전설, 미국, 2021
감독 다스틴 대니얼 크레튼, 주연 양조위, 유사모(Simu Liu), 아콰피나 외, 샹치 : 텐 링즈의 전설, 미국, 2021.
한 단락을 분명히 마무리지은, 이른바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시리즈인 '인피니티 사가infinity Saga' 가 마무리되고, 그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샹치 : 텐 링즈의 전설' 을 보았다. 코로나 시대를 감안하면, 햇수로는 근 2년만의 영화관인 셈이다. 어차피 전부 한글로 할거라면, 텐 링즈도 그냥 '링 열 개' 로 번역하는게 더 나았으려나, 아니면 차라리 십환전설(十環傳說)로 쓰는게 낫지 않았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여하튼 오리엔탈리즘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무협을 와호장룡 이상으로 현대 감각으로 잘 해석했다는 평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왕년의 무협광으로서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여 모처럼 아내와 데잇트 할겸 가보았다.
결론은!! 버킹검..... 이 아니라(이 광고 아시는 분들 있나? ㅋㅋㅋㅋ 요즘 젊은 분들은 모를텐데 ㅋㅋㅋ)
절찬받은 액션씬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양조위를 비롯한 당대의 동아시아 명배우들이 총출연한 인물상도,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족 중심의 서사도 다 좋았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양조위의 연기는 정말이지 고량주 열 병을 마셔도 아깝지 않았다. 다만 편집이 문제였다. 내 알기로 발터 베냐민이 극찬한 대중예술의 정점인 영화는, 서사의 순서에 상관없이, 필요한 모든 장면들을 다 촬영한 뒤, 감독의 의도에 따라 편집하여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뺼건 빼며, 더할 것은 더하여 꿰매어 맞춘 장면의 일련이 비로소 한 번의 시사회를 거친 뒤에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알고 있다 .즉, 전적으로 작가의 손에서 빚어지는 시나 소설과는 달리, 하나의 영상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며, 대중의 평가까지 사전 점검하는 절차까지 거치지만, 영화를 구성하는 장면을 결정하는 이는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그러므로 야구 감독과 영화 감독은, 모두 하나의 서사를 끌어나가는 이들인지 모른다. 마치 다음 타자나 투수가 누구일지 고심하는 명장 감독처럼, 모든 영화 감독들은, 못지 않은 산고를 겪으면서 장면들을 고르고, 그 순서를 배열한다. 아내는 진작에 지치고 피곤해서 내 어깨 옆에 기대었고, 뒷자리의 중학생들은 벌써 지루해서 조그맣게 욕설을 내뱉으며 영화 끝나고 먹을 덮밥에 골몰해 있었으나, 나는 모든 장면들이 너무 좋아서 가슴아팠다. 조금만 회상을 덜어냈다면, 조금만 장면의 순서를 바꿨다면, 조금만 저 장면을 다르게 연결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어차피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는 관객이 별별 상상을 혼자 다했었다.
샹치는 한자로 상기上氣 라고 쓴다고 들었다. 기운이 솟구친다는 뜻이다. 영화인이자, 비운의 무술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루스 리- 이소룡을 본따 만들어진 마블의 영웅 샹치는, 비록 여전히 21세기에도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듯 오리엔탈리즘의 상징들을 두르고 살지만, 나는 그래도 몸으로 직접 완강한 철학을 표현해내는 영화 속 그들이 좋았다. 오항녕 선생은, 조선시대의 당쟁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지금의 정당 정치처럼, 이상과 현실이 부딪히는 수준 높은 정쟁이라고 해석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 역시 한낱 멍청하고 둔한 필부에 지나지 않으나, 늘 몸 한 구석에 의기충천한 무공과 학문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 소인배로 나고 자랐을지언정, 끝내 대장부로 살고자 애쓰다 죽을 이로 기억된다면 조금이라도 자랑스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