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조금씩 깨고 있지만.
그래봐야 56도짜리 고량주 반 병도 아니 마셨다. 아내가 늘 기함을 해서, 고량주 한 병을 하루에 다 못 마시게 하는 탓이다. 아스파탐이며 온갖 약품을 타서 주정을 억지로 흐리게 만들어 숙취로 골을 쑤셔놓는 낮은 도수 화학주를 마시느니, 목구멍을 숯으로 지지는듯해도 한 병의 순결한 술을 마시고 싶다. 이러한 술은 한 잔을 올릴때마다 힘써서 마시게 되고, 술을 마신다는 느낌을 주며, 늘 세상을 즐겁게 한다. 술이 깨고 나서도 몸이 아프지 않아 좋다. 오늘도 힘들게 일하고 오니, 아내도 갑자기 돌아온 딸 때문에 혼자 돌보느라 못지 않게 힘들었을텐데, 언제 시간이 났는지, 어머니가 반찬 주러 오신다고 해서, 눈치 빠르게도 앞다리살과 사태를 사다가 기름기는 발라내고, 냄비에 양파를 둘러 된장으로 재워놓은 고기를 푹 삶아 수육을 만들어 어머니께 대접하고 남은 게 있다고 하므로, 이미 내린 비에 온 몸의 뼈마디마다 무쇠를 눌러놓은 듯 쑤시고 아파도, 어찌 술 한 잔을 거를 수 있겠나. 할머니 김장 하신다고 잠시 집에 온 딸은, 혼곤히 제 자리에서 잠들고, 하루의 일과를 끝마친 아내는 소파에 편히 누워 웬 남의 집 귀한 따님들 헐벗고 춤추는 쇼 프로그램을 보시기에, 나는 아내 몰래 마시다 남긴 고량주 반 병을 꺼내고, 곱게 자던 수육을 젓가락으로 꾹꾹 찔러 깨운 뒤에 한 잔 마시고, 도장 일도 좀 보고, 이제서야 겨우 이러저러 일기를 쓰고 있다.
딸이 잠시 몸을 돌보느라, 어머니가 손수 맡아주시는 동안, 아내와 나는 각자의 삶에 몰두했고, 또 서로를 잘 챙겼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늘 내 곁에 붙어 있던 아내에 비해, 나는 말만 그럴싸할뿐, 늘 직장이다 도장이다 이래저래 번잡한 일상을 마치고 오면, 또 책 한 줄이라도 읽어야 하고, 밥 한 술 뜨더라도 술 한 잔 있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조르는 통에 아내가 훨씬 힘들었을 터이다. 회사에서 괜시리 중국어와 일본어 1년간 무료로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서, 나는 남는 시간에 원래 하던 영어에 더해서 다시 한번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느라고 안 그래도 없던 여유가 더욱 없어졌다. 저 오나라의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멀어, 인간적인 마음을 버리고, 제 부모의 원수를 묘지에 끌어내어 그 시체에까지 매질을 했다고 했다. 갈수록 나이는 먹는데, 할 일은 점점 많아서, 내 남은 시간을 꼽아보건대, 내가 읽어야할 글, 내가 애써야할 무공을 다 이루고자 한다면, 사실 난 단 한 잔의 술도 마실 수 없을 터이다. 한 잔의 술이 하루의 여유를 낳는다. 나는 그 여유를 비춰 딸을 본다. 지금 곤히 자고 있는 딸이 훗날 커서 말을 능히 하게 된다면, 부족하고 모자란 아비를 뭐라 표현할 지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늘 '단지 오는 적을 맞을 뿐' 이라고 하셨던 충무공처럼, 하루의 일상을 견뎌내는데에도 진땀을 뺴는 이이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고 하셨으나, 나는 속세에 있으므로 늘 가끔 믿음이 흐려져 아내의 어깨에 기댄다.
나는 늘상 부족하며 부끄럽다. 가끔은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 내 온 몸을 헤집는 듯하다. 나는 비오는 날마다 견딜 수 없이 아프다. 아무리 읽어대고, 몸을 못살게 굴고, 술을 마셔도, 덮어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그런 천박한 기억들이 내 본질이라면 나는 정말 슬플 터이다. 나는 가끔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다. 내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데, 내가 살고 간 흔적을 벌써 남겨 하나의 삶으로 크도록 만들었다. 불쌍한 내 딸아, 이가 곧 죄인가 한다. 어차피 술이 깨면 또 나는 모르는 척 천연덕 잊을 것이고, 밝은 날 도복 띠를 매며 이 문장 같지도 않은 배설들을 보며 부끄러울 터이다. 내 평생 아직은 그리 살았다. 그러므로 더욱 부끄럽다. 부끄러움만을 선연히 안다. 술잔을 아무리 엎어도 도망칠수 없다. 묻을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