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이야기)

마음에 빈 틈이 없다.

by Aner병문

엊그제 도장에서 돌아오다가, 짐을 가득 실은 휠체어를 뒤에서 천천히 밀며 걷는 중년의 여성 노숙자를 보았다. 주름살마다 때가 낀 얼굴은 어두웠고, 요령이 있다 할지 없다 할지 알 수 없도록 여기저기 쌓아놓은 짐들은 휠체어에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면서도 쏟아지지 않아서 신기했다. 그녀는 휠체어를 뒤에서 덮쳐싸안듯이 몸으로 눌러서 천천히 걸었다. 그녀에게는 소중한 짐들이었을 터이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 이미 마음이 닳았고, 도장에서는 몸이 지쳐서 그야말로 멍한 기분으로 걷고 있었다. 예전처럼 거미가 집을 짓는다거나, 아픈 이들이 퀭한 눈으로 거리 한구석을 찾는 모습을 볼때에도 나는 더이상 자극받지 않았고, 그저 아무 생각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책이 읽힐리가 없다. 그냥 겨우 꾸역꾸역 읽고 있다. 모든 일상들이 내 눈 바깥에서 미끄러져 지나간다. 아무것도 내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저 지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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