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어느 뜨거운 효자의 이야기 ㅎㅎㅎ

by Aner병문

버트란드 러셀이었나, 지금 술 한잔 또 마신 김에 알딸딸 기억이 잘 안나는데,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프랑스 철학자였던거 같긴 했으니, 사실 버트란드 러셀은 아니었을 테고, 여하튼 서양 철학자 중에 부모로서의 가장 큰 미덕은, 아이를 낳은 뒤 먹고 살 걱정 없게 해준 다음 가능한 빨리 죽어주는 것(!!) 이라고 말했던 이가 있었다. 또한 헤르만 헤세는, 그 스스로도 가냘픈 유년 시절을 보내었던 이답게, 그 유명한 데미안에서 반드시 알 껍질을 깨고 나와야할 아브락사스에 대해 말했는데, 결국, 자녀와 부모는 서로가 최초로 겪는 타인이자 친족이기에 겪어야할 갈등이 분명히 있을 터이다.



나는 젊었을 적, 분명히 어렸고, 철이 덜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참 못할 짓도 많이 하고, 속도 많이 썩였더랬다. 어머니가 평소에 힘들어 하신다고 아내가 잘하는 오리볶음을 가지고 간 오늘, 이미 저녁을 먹었는데도 아버지는 슬슬 여러 사람 눈치를 보시더니 '흠흠, 거 회에 소주 한 잔 했으면 좋겠구먼' 하시었다. 어머니 눈치를 쓱 살피니, 연말에 소주 한잔 더 해도 크게 문제삼지 않으실 듯 하여 아내가 얼른 회를 배달시키고, 나는 소주를 사와서, 부자 간에 또 소주 한두 병 나누었다. 한때 나를 정말 이해 못하겠다던 아버지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난 뒤로, 일단 한시름 놓으셨고, 나 역시 막상 부모가 되어보니, 어렷을때 그토록 어렵기만 하던 부모님 입장이 단번에 이해되는 부분도 많아서, 요즘에는 비교적 터놓고 자주 술자리를 갖는 편이다. 특히 건강상의 문제로 평소에 다른 이들과 거의 술자리를 갖지 않는 아버지는, 가족간의 술자리는 약이라면서, 내가 올때마다 술 한잔 하시는 걸 낙으로 삼고 계셨다.



오늘 아버지는, 다수의 수다 종교인 편을 무심코 틀어놓고 보시다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말씀하셨다. 아니, 근데 말이 그르치 떡 다섯 개에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이 먹고도 남았다는게, 그게 진짠거여? 신앙이 없으신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논어에 나왔던 비슷한 고사를 비유로 설명해드렸다. 공부자께서 삼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주유천하를 했다고 하지만, 명성은 높았을지언정 요즘말로 천하의 공부자가 출세하여 부를 누린 시절은 드물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실상 반평생을, 허울좋은 취업준비생으로 늙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리고 지친 어느 날, 비까지 내렸을 때, 제자들은 공자의 자가용, 즉 귀족의 상징이기도 한 백마를 손수 잡아 한 그릇의 국을 끓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백마 한 마리를 잡았는데 한그릇만 나왔을까? 여기서부터 궁금하긴 하다 ㅋㅋ) 천하를 위한 웅지를 품었으나 노쇠한 스승이 허물어진 사당에 비를 피하며 제자들이 손수 말을 잡아 끓인 국그릇을 받았을때, 그의 곁에는, 젊고 총명하지만 병색이 완연한 수제자 안회가 있었다. 평생 인의를 지켜온 스승은, 차마 굶주리고 연약한 제자 앞에서 말국 한 그릇을 삼키지 못하고 먼저 그릇을 내민다. 안회는 그 그릇을 물끄러미 보다가 마시는 척을 하고, 다시 큰 사형인 자로에게 그릇을 넘긴다. 마시는 척만 했을뿐, 전혀 양이 줄지 않은 국그릇을 보며 자로는 다시 다음 제자에게 국그릇을 넘긴다. 삼천 명의 제자들 사이에 국그릇이 돌며, 기름은 엉기고 굳어 차갑게 식었을지언정, 국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아마 몇몇 호사가들은 공부자께서 도가 지극하여 한 그릇의 국으로 삼천 명의 제자들을 먹였다고 말할 수 있었을 터이다. 나와 아내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또한 능히 오병이어의 기적을 실천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또 명망있는 학자들은, 공부자의 이야기, 혹은 알렉산더 대왕의 물병(알렉산더 대왕 또한 목마를때 물을 차마 마실 수 없어 여러 병사들에게 그냥 마시는 척 넘겼다고 하더라.) 이야기처럼, 예수님을 뵈러 온 수많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먹을 것을 직접 나누지 않았겠느냐- 라는 이론을 남기기도 한다. 나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아버지에게 굳이 예수님의 기적을 믿으시라 설파할 마음도 없었고, 그런다 한들 아버지가 갑자기 믿으실리도 없다.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개신교의 믿음을 가진 이들이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변변치 못한 먹을 것조차 나누었다 라는 마음으로도 충분하지 아니한가? 나는 아버지께 이 말씀을 축약해서 간단히 정리해드렸다.



그 때 아버지는 묵묵히 드리는 말씀을 듣고, 술잔을 비우시다가, 참 이 놈은 말이여, 설민석이처럼(지금도 아버지는 내가 김제동 씨보다는 설민석 선생을 더 닮았다고 생각하신다..^^;; 그 분은 동안에 잘생겼는데..ㅎㅎ) 어디 유명한 강사나, 기자나, 아나운서를 했어야할 놈이여, 뭔 바람이 불어가지고 갑자기 무술을 한다고 허고, 철학을 헌다고 하고, 그건 잘 모르겄는디, 하여간 조금만 더 즈그 어미 씨기는대로(시키는대로) 공부를 했으믄 뭐가 되얐어도 되얐을 거인디... 그라면은, 우리 소은이 에미도 훨씬 일찍 만났을 거이고...



그 때 이번에는 아내가 거들었다. 아버지, 구약에 보면은, 요셉이라꼬 있었거등요, 노예로도 살고, 불륜 누명도 쓰고, 깜빵도 가고, 그러다 2년만에 하나님이 이집트 국무총리까지 시키따 아입니까, 근데 하나님이 요셉한테 언제나 만사헹통(만사형통) 시키준다 캤는데, 왜 그리 힘든 시간도 주셨겠십니꺼, 다 그 힘든 시간이 있어가 요셉이 총리도 될만한 큰 그릇이 된 거 아이겠습니까, 만약에 소은이 아빠 좀더 일찍 만났으모, 그때는 또 어떤 사람일지 내도 모르는기고, 내도 어떤 사람일지 소은 아빠가 우째 알았겠십니꺼,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때로 딱 만나가, 소은이도 낳고, 쌈도 한번 안하고 이래 사니까 안 좋습니까, 아버지. 두 부부가 이러고 거드니 아버지는 즐겁고 행복하시다며, 오늘 커피까지 거하게 사주셨다.



어쨌든, 한때 뜨거운 효자, 즉 불효자였으나, 지금은 결혼하고 애 낳고, 누구보다 집 안 대표 효자로 거듭나고 있는 젊은 아비의 이야기였습니다...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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