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895일차 - 오랜만의 오전반!

by Aner병문

사범님의 개인 사정으로 닷새 동안 이번에는 오전반 지도를 도움드리게 되었다. 오전반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분들이 오시다보니 나이 지긋한 중년 부인층이 많다. 국기원에서 실버태권도 WT 4단을 따신 커례 선생님이 벌써 줄검은띠셨고, 전직 수영강사 문 선생 또한 그러하였다. 나는 사실 너무 설레서 전날 잠을 새벽 4시까지 설쳤다. 안식구도 소은이 돌보러 잠시 시댁에 간 터라, 아침밥 대략 챙겨먹고, 추운 도장 온풍기 따땃하게 틀어놓고, 청소 싹 해놓고, 도복 갈아입고, 어르신들 오실때까지 유급자부터 2단 틀까지 쭉 돌면서 팔굽혀펴기를 사이사이 했고, 또 그러고도 2단 틀을 한 번 더 했다. 2주간 근력 훈련 및 낱기술을 주로 해서 그런지 동작 자체는 안정적으로 좋아졌는데, 동작과 동작 사이가 이어질때마다 쓸데없는 힘이 많이 들어가고, 낯설었다. 그러므로 무조건 힘을 기른다고 무공을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동작에 맞는 합리적인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재미삼아 커례 선생님께 팔괘 1,2장을 가볍게 배웠는데, 역시 WT를 해보지 않은 나는 동작마다 싸인 웨이브가 들어가서 꽤 웃겼다. 반면, 오십대 후반부터 십여년 가까이 WT를 주로 해오신 커례 선생님은 칠순에 가까운 노부인답지 않게 각도와 힘이 아주 정확하시고, 품새의 직선적인 움직임을 잘 재현해내시지만, 그 움직임이 그대로 ITF의 완곡한 틀에도 반영되니 이 역시 고민이긴 하다. 공도 형님이 유단자가 되어 본인의 틀을 점검할 동안, 나는 커례 선생님과 수영 강사 문 선생을 거울 앞에 세워두고 다시 사주찌르기부터 화랑 틀까지 쭉 같이 하면서 봐드렸다. 틀이란, 별 생각없이 연습하면 그저 춤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어느 무공이나 그 움직임의 정수를 모아놓은 중요한 훈련법이다. 그러므로 그 동작에 맞는 원리를 끊임없이 몸에 배도록 연습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밥 잘하는 유진이가 드디어 고당 틀 훈련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으므로, 저녁에 날 찾았다가, 오전반 임시 지도 보조를 하는 것을 알고 아쉬워했다. 조만간 술을 산다며 고당 틀을 알려달라고 했다. 퇴근한 나도 어서 빨리 자고, 내일 또 일찍 일어나 두 분의 충무 틀을 마저 알려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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