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896일차 - 그래, 나도 그랬다.

by Aner병문

ITF 태권도의 유급자 과정 마지막 틀은 충무 틀이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그 영웅. 유시민 선생이 '대한민국에서 세종대왕과 충무공 건드리면 큰일난다' 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으리만큼 구국의 명장이었던 충무공을 기리는 이 틀에는, 유급자 줄검은띠 1급에서, 드디어 검은 띠 초단으로 넘어가는 단계답게 구부려 준비선 후 옆차찌르기, 뛰어 옆차찌르기, 왼걷는서손칼등높은데옆때리기 에서 돌려찬 뒤 다시 뒷차찌르고, 또 돌려차고, 한 바퀴 뛰어 도는 동작 등 유급자들에게는 기가 질릴만한 어려운 동작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광개, 포은, 계백 틀에서 다시 헉헉대다가 의암 틀에서 주춤하고, 충장 틀에서 한숨 돌리고, 마침내 2단 마지막 고당 틀에서 끝내 또 좌절한다.) 오늘은 9시부터 11시까지 내 개인 훈련을 모두 마쳤는데도 다른 수련자들이 오시지 않으셔서 평소 체력과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했던 2단 틀 중에서도 의암 틀(반대돌려차기 이후 옆차찌르는 동작이 많아서 어지럽고 짜증난다.) 과 고당 틀(진짜 언제 좀 되면 영상 찍어서 보여드릴 예정이다. 발을 높이 들어서 휘두르고 버티는 동작이 많아서 사람 환장한다. 이 틀이 2단 틀의 마지막인 이유는, 창시자 살아계실 때 당시의 수련 인구 연령을 감안하면, 보통 이십대 초반에서 늦어도 중후반에 배우기 때문에 가장 몸이 팔팔할때 수련이 가능하리라 여겨서 그러셨다는 "카더라" 가 있다.) 을 진짜 원없이 연습했다. 느지막히 홀로 온 수영 강사 미스터 문이 오죽하면 "부사범님 숨소리가 복도 밖까지 다 들립니다." 할 정도였다. 하여간 고당 틀은, 가뜩이나 발차기를 못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어렵고 까다로운 틀이다. 오죽하면 그 실력 좋은 밥 잘하는 유진이조차 매일 업장 끝나면 하루 30분에서 1시간이라도 도장 와서 밤늦게 혼자 연습하고 갈까.



곧 첫 승단 심사를 앞두는 수영 강사 미스터 문을 위해서, 어제 이었던 틀 훈련을 계속했다. 화랑 틀을 세밀하게 다듬어주고, 중간까지 배운 충무 틀을 완전히 알려주었다. 쉬운 동작들이 아니라서, 단순히 보여주거나 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고, 아이 걸음마 가르치듯, 손과 발을 하나하나 끌어다 위치에 가져다주기까지 해야할 정도였다. 그 때 문득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는데, 앗차, 그러고보니 내가 그랬다. 밥 잘하는 유진이가 우리 도장에 처음 입문하던 시절, 그 때는 초단 승단을 준비하던 인사동의 초출내기 업장 종업원이었다. 그 때 나는 태권도에 한창 재미를 붙인 밥 잘하는 유진이와 새벽 5시에 나와서 아침 일곱 시까지 연습하고 업장으로 나와 일을 하고, 또 퇴근하고 한 시간 정도 도장에 가서 또 연습하던 나날들이 많았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내가 혼자 열심히 연습량만으로 채워서 그나마 이 정도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건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내가 충무 틀을 배울 때에도 역시 나는, 그 당시 부사범이던 돌도끼 장 사범에게 혼나가며 틀을 배웠었다. 아니오, 그게 아니구요, 이렇게요, 이렇게요, 아오 답답해. 하면서 발을 쾅쾅 구르던 젊은 장 사범이 갑자기 눈에 선했다.



(내 무공 수준으로는 분에 넘치고 부끄럽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으므로) 느닷없이 부사범 일을 맡기 시작하면서, 처음 입문하면 배우는 찌르기와 기본 발차기에 다소 지루해하는, 입문한지 얼마 안된 흰 띠 사제들이 비록 좀 재미없더라도 열심히 연습해서 태권도의 참맛을 알았으면 하는 내 마음에 대해 말하자, 사범님은 술자리에 픽 웃으시며, 딱 한 마디 하셨다. 너도 그랬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랬나? 내가 잊어버렸던 기억 중에 나 역시 태권도가 한때 지루하고, 언제까지 이 기술을 반복해야 하나 싶었던 때가 있었나? 늘 태권도를 하며, 다른 무공에서 느끼지 못한 성취에 즐겁고 기뻤던 기억만이 있었던 듯 싶지만, 사범님 결코 허투루 말씀하실리 없으니 사범님 말씀이 옳으실터이다. 사실, 사범님 말씀이 맞다. 생각해보면 둔하고 늦된 나조차 내 스스로에게 짜증내면서, 이 아득한 과정을 언제 다 해야 하는 막막함이 있었다. 그를 생각하면, 지금 그나마 의암 틀과 고당 틀을 반복하고, 맞서기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까닭은, 다 사범님을 비롯한 도장 사형제 사자매들이 나를 도와주고 애써줬기 때문이다. 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미스터 문의 충무 틀을 모두 알려주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