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드디어 아침 훈련 재개하다!
아침 세시 삼십분에 시험삼아 일어났는데 몸이 제법 가뿐하고, 피곤하지 아니하였다. 어젯밤 유모차를 조립한 후 아이를 둘러메고 아내와 1시간 걷고, 아이를 씻긴 뒤 아내와 나도 번갈아 씻고 정리하고 밤에 일찍 잤기 때문일 터이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 밤새워 놀기는커녕, 하루 4시간 자던 평일의 잠조차 버겁다. 아마 결혼하고 아내가 만류하여 하루 여덟잔씩 마시던 커피를 줄인 탓도 있을 터이다. 여하튼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비루한 회사원인지라 먹고 살고 남는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태권도 훈련을 하고 짬짬이 술 먹기도 여념이 없었다. 결혼한 뒤에는 그러한 시간에 아내와 함께 보내며 아이를 키우니 자연 몸이 늙고 둔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저번에 도장에서 내 신체능력의 저하를 절감했기 때문에, 더는 안되겠다 싶어 새벽 훈련을 결심한 것이다. 중국무술에도, 스승이 함부로 제자에게 보법을 전수하면 필히 등에 칼을 맞게 되며, 그러므로 비전의 전수는 반드시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만 행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치 홍콩으로 쫓겨가 건물 옥상에 초라한 무관을 연 중년의 엽문 노사마냥, 옥상으로 나오니 공기는 차지만 내 몸은 초라하기 이를데 없었다. 병원에 있을때를 빼고는 스물 넘어 일상에서 이리 살이 쪄본 적이 없다. 배와 엉덩이는 툭 튀어나오고 몸 곳곳에 군살이 붙어 힘과 유연성이 떨어지었다. 그나마 어깨는 병원에 2주간 다니며 재활 운동을 틈틈이 했더니 많이 나아졌다. 어깨가 가급적 덧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오늘은 주로 기본기 훈련을 했다. 나란히 선 상태에서 위아래로 발을 들며 찌르기 100회(ITF의 요체인 싸인 웨이브를 몸에 익히기 위한 기초 동작이다), 앉는 서기 자세에서 찌르기 30회(하체의 힘이 떨어져서 100회를 채울수가 없었다!), 걷는서기 자세에서 제자리 지키며 바깥팔목낮은데바로막기, 안팔목가운데옆막기, 손칼낮은데바로막기, 추켜막기 를 반복하고, 또한 앞뒤로 이동하면서도 반복했다. 발차기는 벽을 잡고 돌려차기와 옆차찌르기로 몸을 푼 뒤, 앞차부수기, 돌려차기, 옆차찌르기 역시 각각 2회 반복. 발차기는 특히나 원래도 다리가 짧고, 발목을 수술한 적도 있어 시원치 않았지만, 그 동안 쉬었더니 다리가 아예 올라가지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욕심낼 수 없고, 다만 천천히 기술과 틀을 반복하면서 다시 태권도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겠다.
그러므로 일전에 말한 철족불(鐵足佛) 상운상 노사의 일화를 전하지 아니할 수 없다. 중국무술 특유의 대범하고 호탕한 기상을 감안해도, 이 일화는 적어도 도복을 입고 띠를 매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둘만한 가치가 있다. 철족불이란 한자 그대로 쇠다리를 지닌 부처란 뜻이다. 별명처럼 상운상 노사의 초상을 보면 듬직하고 둥글둥글한 것이 딱 봐도 날렵하고 재빠른 몸매는 전혀 아닌지라 나와 비슷하다. 그는 성격도 나처럼 느긋하고 둔하여 형의권의 대가인 이존의를 사부로 모시고 오랫동안 무공을 연마했는데도 좀처럼 진전이 없어 동문 사형제들의 비웃음을 샀다. 외세에 신음하던 청나라 때, 이존의는 손꼽히는 무공의 고수였으므로 군대나 지역 민병들에게 교관으로 초청받는 일이 잦았다. 지금으로 치면 중국 각지에 무공 세미나를 하러 다닌 것이다. 평소 오랫동안 수련해도 진전이 없는 상운상을 가엾게 여긴 이존의는 그에게 붕권(崩拳)을 전수하며 자신이 돌아올때까지 이 기술만 연습하라 당부했다. 산 무너질 붕 자를 쓰니 대단한 무공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보면 가라테-태권도의 가운데찌르기와 비슷한 주먹치기일 뿐이다. 다만 상운상은 둔하여도 굳건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 처음에는 무관에서 연습을 하다가 동문들이 하루종일 그 것만 할 셈이냐고 비웃자 다시 낡은 절로 자리를 옮긴다.
스님들조차 떠나 아무도 찾지 않은 폐사(廢寺)에서 상운상은 무려 3년이나 고련하며 꾸준하게 붕권을 연마한다. 앞서 보법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듯이, 사실 모든 무공의 기초는 호흡 다음으로 보법이다. 심지어 주먹이 더 위주일듯한 권투조차, 발놀림을 착실하게 닦은 뒤 그 위에 주먹만 살짝 얹는 것으로 표현하는 지도자들도 많다. 따라서 붕권을 칠 때도 다리를 강하게 디디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상운상의 3년 공력은 아무리 낡은 절이라 할지라도 그 주변의 포석을 모조리 밟아 다 부숴버리고야 만다. 가히 철족불이라 불릴만한 신공이다. 이존의가 돌아왔을 때, 그는 뭇 제자들을 불러놓고 상운상의 무공을 선보이게 했으며, 그는 고수로 대성한 뒤 늙어서는 산동으로 낙향하여 곽운심, 이낙능 등의 명인을 길러내었다. 그들은 상운상의 노력을 본받아, 스승은 나귀를 타고, 제자는 나귀의 뒤를 좇으며 붕권을 연마하는 독특한 훈련이 회자되기도 했다. 대만 금마장 영화제 무술상을 휩쓰는 개성있는 무술영화 감독 서효봉이 엮은 '무인과 거문고', 형의권 권사들의 어록과 일화를 모은 '흘러간 무림' 등의 책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보셔도 좋을 듯하다. (번역은 좋지 않다더라.)
세상에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 있어 라고 혀를 찰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태극권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이우현 교련 또한 무려 대학교 1학년때 우연히 새내기 환영행사에 본 태극권에 푹 빠져 그 길로 자퇴하고 상해에서 중국어를 배운 뒤 진씨들만이 모여 진씨태극권을 전승하는 진가구로 들어가 4년 동안이나 무공을 익혔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진가구는 정말이지 하루 세끼 먹고 밤에 목욕하고 잠드는 것 외에는 태극권 연무 이외에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궁벽한 시골이라고 한다. 그 깡촌에서 이우현 교련은 4년 고련 중 3년을 노가 1로(老架一路) 연마에 바쳤다. 흔히 품새/틀이라고 부르는 무예 고유의 움직임을, 가라테에서는 카타(形) 라고 하고, 중국 전통권에서는 투로(鬪路)라고 하는데, 용어는 달라도 결국, 그 기술을 쓰기에 적합한 몸을 만들어주고, 움직임에 익숙케하는 시뮬레이션이다. 노가 1로는 기초 중의 기초로서 WT로 치면 태극1장, ITF로 치면 천지 틀쯤 될까? 스무살 때 한 번 본 태극권에 흠뻑 빠져 혈혈단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노가1로 연마에만 3년을 바쳤으니, 이미 기본이 충실한 그에게 나머지 단계는 스스로 응용하여 연마해도 될 경지에 이르렀다. 공부자께서는 일흔이 되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하셨는데, 마음 먹은 바대로 행동하셔도 전혀 법도에 어긋남이 없을 정도로 이미 배움과 절제에 몸에 배었다는 자부심이다. 무림에서는 수파리(守破離)라는 세 글자로 요약되는데, 처음에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고, 다음에는 깨뜨려 극복하며, 마침내 아예 그 가르침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태극권의 귀신 이우현 교련은 말 그대로 귀신 같은 노력으로 능히 대성하여 지금은 부산에 무관을 열고 사모님과 함께 역시 후예를 양성하고 있다고 들었다. '고수를 찾아서' 에서 이 일화를 수록한 한병철 박사는, 돈만 내면 휙휙 진도를 나가 금방 고수가 될 줄 알고 기초를 소홀히 하는 제자와, 또한 그런 제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단증 장사를 남발하는 스승들이 바글대는 요즘 무림을 꼬집었는데, 한병철 박사 스스로가 논란이 많은 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판은 귀담아들어볼만한 일이다.
국내외의 여러 명인을 소개하자니 내 입만 아프고 부끄럽다. 기왕 잠 줄여 하는 것, 다시 부지런히 해보려 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다니지 아니하는 사람과 달라야 하고, 책을 읽은 사람은 읽지 아니한 사람과 달라야 하며, 태권도를 하는 사람도 태권도를 하지 아니하는 사람과 달라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무엇하러 돈과 시간 쓰며 몸을 괴롭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