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혹세무민(惑世誣民) -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거짓으로 속이다.

by Aner병문

모처럼 아침 훈련을 개운하게 하고, 미역국에 밥 말아 한 그릇 뚝딱하고, 음식이 상할까 미리 데워놓고, 도시락도 챙기고, 아이가 쓰는 물건들 싹 끓여서 소독한 뒤에 출근길 버스에 오르는데, 늘 듣던 NHK일본어 방송을 틀다말고 희한한 행색을 보았다. 남의 물건 함부로 보는 일이 어찌 예의바른 일일까마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휴대전화 싼 가죽집 바깥에 떡 하니 허경영 씨 사진을 붙여놓으니, 그게 눈이 안 가고 배겨? 뒷태만 보아도 나이가 지긋한 중년 부인이셨는데, 가죽집 안팎에 허경영 사진도 모자라서, 휴대전화 배경 화면에까지 그의 사진을 모셔놓았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초상을 붙여놓는 열성적인 부인네들은 종종 보았어도 진짜 허경영 씨 사진을 붙여놓은 분은 처음 봤다. 혹시 이 분이 그 허경영 씨와 염문이 있다는 그 트로트 가수인가 싶어 힐끔거렸지만 버스의 뒷좌석, 내가 그 분보다 조금 더 높이 앉아서 휴대전화는 어찌 보았지만 앞얼굴을 끝내 알 수 없었다. 아직 이른 시간, 어른 얼굴을 함부로 훔쳐보기도 무례하기도 해서 오늘 아침의 호기심은 그 정도로 접었다.



내 듣기로 허경영 씨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짝을 찾아보기도 부끄러운, 여의도의 기인이라고 들었다. 선거마다 이색 후보랍시고 나오는 이들이 있듯이, 이른바 정치병에 걸렸거나 혹은 정치합네 얼굴 걸어놓고 돈이나 긁어내려는 무뢰배들이 많다는 사실이야 익히 알고 있다. 다만 스스로 IQ430의 천재를 자처하고, 이병철 회장의 양아들 행세를 하는가 하면 돌아가신 박정희 대통령의 비선실세였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며 합성 사진까지 증거랍시고 들먹이니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들이 혹할만도 하다. 그래도 명색이 성균관 근처에서 먹물 대신 소주라도 마셨다고 가끔 그의 요설난설 같은 논어나 불경 강의 등을 유튜브에서 볼 때가 있는데, 원래 사기를 치려면 진실 아홉에 거짓 하나를 섞는다던가, 나름대로 읽고 독자적인 생각은 갖춘 듯, 영어 일본어 한자를 섞어가며 천하횡행하는 혓바닥만큼은 기름지고 매끄러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국 가는데 돈 아끼는 사람 없듯, 그 역시도 자신의 눈을 바라보면 병이 낫고 인생이 잘 풀린다고 광고한다. 남의 돈을 끌어다가 아방궁 같은 건물을 지어놓고 중년 부인들을 끌어다가 병을 고쳐주겠다며 몸을 주무르고 희롱한다. 그런데도 이런 이가 명색이 한 정당의 총재가 되고,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수많은 젊은이들과 어르신들을 속여 돈을 갈취한다. 심지어 이번 지방 선거에는, 일선에 고생하는 약사들의 대폭 지원을 약속하여 일부 젊은 약사들이 허경영의 지원을 받아 지역 곳곳에 출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허경영은 지금도 그가 대통령이 되고, 그의 정당이 여당이 되면, 국민들에게 많은 돈을 지원하겠노라 공포한다. 세금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세상에 도둑이 너무 많은 것이라는 그의 말이 속시원하다며 인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허경영 또한 그 중 큰 도둑이다. 그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그는 몇 마디 글줄을 읽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사람들을 속이고 다닌다.




내가 실력이 대단치 아니해도 무공을 좋아하고 단련하는 이유는, 말로 가릴 수 없는 실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장풍도사요, 내가고수라고 해도, 주먹으로 을러메어 지면 지는 것이다. 허경영 역시 이미 허위사실 유포로 징역을 살았는데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는 누군가에게 검증을 받지도 않았고, 강의를 하면서도 학위가 없으며, 그렇다고 격식 있는 토론장에 나가 본인의 정책이나 이론을 제대로 펴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로 그가 가장 열성적으로 하는 일은, 이른바 본좌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우스꽝스러운 영상으로 대중들의 환심을 사는 일뿐이다. '파시즘과 대중심리' 에서 빌헬름 라이히가 지적하듯, 대중예술을 이용해서 자신의 인상을 꾸며내는 것이다. 이런 이를 보고 혹세무민한다고 한다. 나는 허경영 같은 이가 함부로 TV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춘추전란의 시대에 음양가(陰陽家)들은 제자백가 중 일부랍시고, 귀신의 힘을 빌어 사람들을 고쳐준다며 백성들의 쌀과 옷을 갈취해갔고, 한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오두미도(五斗米道)는 쌀 다섯 말씩 받아가며 끝내 황건적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명패라며, 문 밖에 걸어두면 왜군이 피해간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려 사기치는 중고나라의 원조 사기꾼들도 있었다. 쓰다보니 어느 틈에 '씨' 자를 붙이지 않게 되었다. 허경영은 정말 그렇게 나쁜 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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