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여기에 적어야만 해서(사는 이야기)

'학교폭력' 을 검색하여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다.

by Aner병문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문장의 나열과 글은 구분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여물지 못한 문장들을 배추널듯 뿌려버린, 지저분한 무엇을 글이랍시고 불특정다수에게 내보이는 행동은 분명 부끄러우면서도 사람이라서 솔직한 욕망이다. 황석영 선생의 여울물소리 에서도 그려지듯, 사람은 원래 말과 글에도 굶주려서는 살 수 없다. 어찌하여 말은 돌수록 부풀려지는가, 판쇄가 있기 전의 글들은 어찌하여 이본(異本, 가수 말고)이 많은가. 없었던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욕망도 강하지만, 이미 있는 이야기를 빼고 넣고 비틀고 휘어놓고 싶은 욕망도 강한 게 사람이다. 그러므로 여울물소리 는, 글을 쓰기보다는 이미 있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이야기꾼들이, 동학에 투신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삶과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말한다.



친구의 소개로 둥지를 틀게 된 이 곳은, 검색어를 통해 내 브런치로 유입되는 경로를 볼 수가 있었다. ITF처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검색어 같은 경우에는 나조차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내 행적이 뻔하게 드러나 아닌게 아니라 부끄럽다. 도장 동문 사형제 사자매들이 보면 나잇값 못한다 놀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면 구글에서 학교폭력을 검색하면 27, 100,000개- 이천칠백십만개의 기사가 확인된다. 이 기사들 중 어딘가에 내 브런치가 있으며, 그 검색어를 통해 하루 한 명 이상의 뉜가가 부끄러운 나의 이야기를 보고 간다는 뜻이다. 불경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현생에서 옷깃 한 번을 스치기 위해 500겁(迲) 동안 전생을 돌며 쌓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겁이란, 범어의 칼파(kalpa)를 음차한 것인데, 여러 가지 낭만적인 설명이 뒤따른다. 본디 뜻은 세계를 창조한 브라흐마 신의 하루를 일컫지만,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시 다음 개벽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도 말하고, 직경 12km에 달하는 커다란 바위에 신선이나 선녀가 백 년에 한번씩 내려와 옷자락으로 쓸고 가면서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도 하며, 가로, 세로, 높이가 각 십리씩 되는 창고에 겨자씨를 가득 넣은 다음 3년마다 한 알씩 빼어서 창고를 모두 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은 무(無)로 시작하여 공(空)으로 끝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자면, 사실 지금 우리가 불교의 대표적인 사상이라고 여기는 윤회설이야말로 인도 힌두교와 섞여 있는 흔적임이 분명하고, 겁에 대한 설명 또한 나라마다 조금씩 단위가 다르지만, 이 거대한 낭만은 현대에까지 이어져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외우고 사랑하고 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낭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어쩌면, 무슨 연유일지 알 수 없으나, 학교폭력, 섬찟한 네 글자를 검색하여 이 불민한 몇 마디를 보게 되실 분들을 위해 감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학교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길러내는 의무적인 기관인만큼 당연히 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학교가 괴로웠을 우리가 앞으로 겪어야할 세상도 더욱 혹독한 풍진(風塵)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계모가 의붓아들을 가방에 가둬죽이고, 계부가 의붓딸의 손가락을 프라이팬으로 지지며, 친부가 제 딸을 덮치고, 오래 전 떠난 생모가 자살한 딸의 장례식에 뻔뻔히 찾아와 보상금을 타가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잔혹한 세상이다. 부모자식 간 인연으로 지워진 이들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남남일까, 사람을 때리고도 반성할 줄 모르고 얼음과자를 핥아먹는 인간이 있고, 약한 자만 골라가며 어깨를 부딪쳐 시비거는 자가 있으며, 많이 배운 자가 취했답시고 여인을 희롱하고도 뻔뻔히 얼굴을 들이미는 세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세상과 인연을 맺어 나왔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므로 감히 내 탄생과 벗들-아내와의 만남과, 내 딸의 탄생까지 모든 것이 조물주가 지어준 큰 법칙 안에 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을 감히 타인에게는 강요할 수 없다. 믿음은 스스로에게 자라는 것이며, 무엇보다 나 역시 부모님께 혼나고 학교에서 시달리던 그 때에는 전혀 믿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감히 풍족한 물질 문명을 누리는 황금의 현대인을 오히려 야만으로 규정하고, 저 오지의 밀림을 누비는 이들을 문명인이라고 일컬었다. 금전과 권력으로, 하다못해 얼굴이 잘생기거나 몸뚱이가 세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압박하고 괴롭히는 문명인들은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 그저 생활 양식이 화려하기만 한 원숭이에 지나지 않았다. 흔히 부시맨이라 불리며 영화 속에서 희화화되는 토인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야말로 오히려 자연을 존숭하고, 약자를 보살피며, 평등한 공동체를 이끌 줄 알았다. 무엇보다 그의 흥미를 끈 것은 몸에 문신을 그려넣는 성인식이었는데, 끔찍하게 아픈 문신을 몸에 새겨넣음으로 해서, 타인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 말고, 또한 공동체의 아픔이 너의 아픔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한다는 설명에서, 문명과 야만은 분명 다시 생각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이 문신 성인식은, 캐머런 감독의 역작인 아바타에서 생명의 나무 앞에서의 공동체 의식을 연상케 하는데, '야만에 지쳐버린' 몇몇 젊은이들이 영화 속 아바타를 동경하여 자살해버린 것도 지금 생각하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천하의 토르조차 수없는 절망 끝에 뚱뚱한 게임 폐인으로 전락해버리지 않던가.




그러므로 야만적인 폭력에 지친 몇몇 이들이 스스로 도피하여 숨을 끊는 일은, 비극적이지만 이해될 구석이 있다. 까뮈는,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이 세상으로 내팽개쳐진 인간이 유일하게 제 뜻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살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삶이란 시지프스와 같아서, 평생을 바위를 진채 오르락내리락할 뿐인 잔혹극이었다. 그러나 나는 감히 한 시대를 풍미한 부조리의 대작가에게 맞서, 그러나 아직 포기하거나 절망하기는 이르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한 낙관론이나 희망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나는 우리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참 많은 선을 봤었다. 만난 이가 많았던만큼, 거절당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키가 작아서, 머리카락이 없어서, 눈이 작아서, 못생겨서, 종교가 안 맞아서... 하여간 많았다. 정말 많았다. 물론 내게도, 거울을 볼 때마다 정말로 얼굴 앞뒷쪽을 칼로 다 그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외모 결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이를 먹고 나니 더 넓은 세상이 보이고, 외모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 성격이 나쁘다든가, 가난하다는 것처럼, 내가 고칠 수 있거나, 내 잘못인 것은 어떻게든 노력의 여하가 있지만, 외모는 애초에 내가 지고 태어난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얼굴 뜯어먹고 사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도 아닌데, 대머리 가지고 같이 못 살 여자는, 다른 이유로는 더 못 산다- 라고 늘 되뇌이며, 나는 우리 아내를 찾아 항상 주말마다 돈과 시간을 쓰곤 했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분주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소소하게나마 학교 폭력을 당해왔다. 소소하게나마, 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폭력의 강도는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이 다 다르며, 객관적으로 감안코자 하더라도, 내가 당한 내용은, 지금의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당하는 폭력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접한 때는 약 3년 전의 중학교였는데, 나의 학창시절과는 판도가 달라져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학생들은 무척 조숙했는데, 내가 내주는 소설 숙제를 제대로 읽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6. 25를 맞아 천승세의 포대령, 이었다.) 쓰는 말이 다르니, 생각은 더욱 달랐다. 도둑맞기가 무서워서 서로 다른 반끼리는 왕래도 하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마음을 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외부 강사라서 마음을 가볍게 틔우기가 오히려 나았을 터인데도 그랬다. 여하튼 요즘 세태를 잘 모르는 불민한 내가, 그저 20년 전 학교 폭력의 기준으로 후학들을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다. 요령없는 내가 어렵게 찾아낸 답이 누군가에게는 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게 있다면, 세상은 어딜가나 다 똑같은 듯하면서도, 넓어서 어딘가 이 한 몸 비빌데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분명히 더욱 집요해지고 잔혹해져서, 곳곳에 계급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학교나 군대가 힘든 것도, 노골적인 계급이 결국 사람들을 가르고 자연스럽게 착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졸업이 있고, 군대에는 제대가 있다. 즉, 불합리한 고통은 언젠가 분명히 끝난다. 노예였던 흑인들도 마침내 풀려났고, 미국의 초기 역사가 피로 물들었던 학살극이었음을 모르는 이들도 없다. 한신은 끝내 천하를 움켜잡을 때까지 시장 할머니에게 밥을 빌어먹고, 무뢰배의 가랑이를 기어가며 모멸감을 견뎠다. 내가 항상 좋아하는 과하지욕(過下之辱)의 고사다.




그러므로 견디는 힘이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와 정말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무공을 시작하면서, 고통을 견디는 방법도 알았고, 그러므로 생각보다는 사람과 맞붙어 싸우는 일이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하튼 킥복싱을 배울 때, 마치 완득이 소설 원작에 나올법하게 늙은 관장님은, 킥복싱은 원래 가드 올리고 로우킥만 차다보면 이기는 게임이라고 하셨다. 끈기 있게 견디는 놈이 마지막에 서는 거라고도 하셨다. 세상은 아주 넓다. 이 한 몸 비빌 그늘도 분명히 있다. 세상 곳곳이 아직 아름다운데, 고작해야 사람 몇백 되는 학교에서 몇몇 놈들이 을러대는 정도로 꺾기엔, 우리의 삶이 참말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맛도 못 보고 꺾이기엔 참말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러므로 나는 태권도 맞서기도 언제나 한 라운드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나서고, 삶의 어려운 순간들도 늘 이 순간만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생각한다. 그 다음 순간에 뭐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덧붙여서 죽을 용기가 있다면 대들어 싸우지 그러냐는 말도 숱하게 들었는데, 배포 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올바른 해결법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삶은 영화가 아니라서, 극적인 변화가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는다. 북두신권마냥, 갑자기 분노가 화려한 조명처럼 나를 감싸며 일진들을 때려눕힐 수 없기 때문에, 앞길이 보이지 않고 차라리 몸을 던지고 마는 그 막막함을 잘 안다. 그러므로 차라리 잠시의 모욕과 고통을, 차라리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견디라고 말하고 싶다. 혹은 견디기 어렵다면 도망가는 것이 낫다. 제아무리 비겁해도 살아남아야 한다. 내 삶을 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다음에, 다시 생각해도 절대로 늦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옛 생각을 많이 했다. 스물이 넘으며 삶이 달라졌고, 서른이 넘으니 또 달라졌었다. 이제는 배 나온 아저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살지만, 얼마 전 회사의 친한 동생이 허허 웃으며 장난식으로 내 멱살을 한 번 잡았는데, 그 순간 내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주 오래 전 그렇게 돈을 빼앗긴 기억이 있었는데, 그 묻어둔 기억이 순식간에 뻗쳐 일어난 것이다. 나는 스무 살때부터 택견을 시작했고, 합기도, 주짓수, 종합격투기, 권투, ITF 등 다양한 무공을 맛이라도 보았다. 그까짓 멱살잡이 풀어내는 방법을 열 가지도 더 알고 있지만, 마음에 박힌 기억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라 참말 놀랐었다. 이토록 상처투성이인 내가 여유를 갖고 살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항상 긍정해주는 벗들과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신주 선생은 사람이 망가지는데 십 년이라면, 살리는데도 반드시 십 년을 써야 한다며, 말 몇 마디, 글 몇 줄, 책 한 권, 노래 한 소절, 음식 한 그릇, 여행 며칠 따위로 쉽사리 '힐링' 을 입에 올리는 행태를 강렬히 비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십 대는 책과 선생님들 덕에 버텼고, 이십 대는 좋은 벗들과 술로 버텼으며, 삼십 대는 처자식과 태권도 덕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삶조차 혼자 챙겨가지 못하는 나는 감히 누군가를 응원한다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여유가 있다면 내 처자식을 돌보기에도 바쁠 것이다. 다만 자신의 삶을 챙기는 여유는 자신에게 있음을,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한때는 더없이 비겁하고 천박하고 더럽게 살았다. 지금 그나마 옛 성현의 말씀이라도 입에 올리고, 몇 가지 기술이라도 쓰면서 사는 것은, 다 옛 사람의 글을 읽고, 몸을 단련하며, 주변의 몇 남지 않은 벗들을 항시 소중히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으므로,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한다.





혹시나 이 이야기를 보는 이들이 있다면, 부디 거칠고 어줍잖은 이야기를 용서해주시고, 늘 평안히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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