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병子뎐)

병子뎐 酒害 편...ㅋㅋ

by Aner병문

옛부터 중원에 공부자(孔夫子)께서 삼천의 제자와 함께 수신(修身)에 정진하시어 맹자, 순자에게 그 도를 전하셨고, 해동(海東)의 이부자(李夫子 : 퇴계 이황), 송자(宋子 : 송시열)가 그 뜻을 좇으니, 훗날 오척단구(五尺短軀) 에 독두소안(禿頭小眼) 소인배 총각이 몇 마디 주워들은 말뽄새 그럴듯이 후려치고 돌려쳐 고운 처 맞이하고 자식 낳아 일가를 이루매, 성인의 가르침이여,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하여 뭇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병子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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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子 나이 경자년(庚子年) 올해로 서른하고도 여섯이라. 이름난 학교에서 수학하여 글줄이나 읽어 거들먹거리더니 많던 벗 다 떠나가고, 신통치 않은 역량은 이미 바닥을 기어, 남들 다 한 자리 꿰어차고 세상에 보탬이 될 때, 절치부심하여 겨우 남쪽에서 고운 각시 하나 맞았고나. 그 때가 벌써 삼년 전이라, 슬하에 백일 넘긴 딸 아이 하나 두고 어엿한 아비가 되었으니, 저 멀리 북촌 장터에서 고관대작 부인들 저녁거리 셈해주고, 문무겸비 출중한 내외인들 말벗해가며 술잔쌓아 산 이루던 그때도 벌써 총각 시절 추억이라, 부인되는 안씨는 천년고도 토박이로 몸가짐이 바르고 신앙이 두터워 술 한잔 입에 대기를 두려워하니, 부부 간 금슬이 좋다 한들 가끔은 일잔에 타박듣기 일쑤더라.



하여 부인 안씨가 가로되, '애 아버지여, 그대가 남쪽까지 내려와 나와 연 맺기를 약조할 때, 물회와 감자탕을 앞에 두고도 능히 술을 참고, 또 그대가 성경에 해박하온즉 그 신앙을 믿고 내 기꺼이 가시버시가 되겠다 마음먹었건만, 가끔은 술을 못 참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오? 바라건대 이제 그만 술을 끊고 천주님 가르침에 더욱 죄를 씻으소서. 그대가 이미 잘 하는 이인 줄 내 이미 아오이다.' 하니,



이에 병子, 안해도 될 말을 굳이 덧붙이며 '그 옛날 제비골 샌님 연암 박지원은 사모님께서 객(客)이 올때만 하루 석잔 신 술을 내주어 저잣거리 아무 선비나 붙잡고 집에 모셨으며, 옛 선비 정철과 손순효는 서로 모시는 왕이 달랐으되 친히 내리신 은잔으로 하루 석 잔 이상 마시기를 금지당하였어도, 능히 잔을 두드려 기어이 양푼으로 세 잔을 마셨다 하니, 이 어찌 글을 배운 이로서 마땅한 배포가 아니라 하겠소, 자고로 主와 酒 는 한 몸이요, 홍길동의 형을 자처한 선조 때 사람 홍일동은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열한 병.....'



부인 안씨가 다시 손사래를 치며 가로되 '하고 많은 이야기 중 꼭 술 먹는 얘기만 갖다붙여 아이 귀에 자꾸 속삭이니 내 언젠가 그를 시모께 일러 야단케 하리라. 그건 그렇다치고, 그럼 어찌하여 첫 만남 자리에서는 그 좋아하는 술을 아니 자셨는가 그 연유나 물어보리라.' 하니,



병子 다시 겁을 상실하여 '그거야 그때 안 참으면 장가 못 갈거 같아서...' 실토하온즉 안씨가 가슴을 치며 '주여, 지금 한 놈 올려보냅니데이, 마셔라, 마셔, 이 술귀신아~' 하고 대노하더라.




병子와 안씨가 이토록 금슬이 좋고, 병子 또한 퇴근하거나 일을 쉴 때는 항시 부인을 대신하여, 스스로 도장과 독서모임과 술자리까지 마다하고 기꺼이 아이를 돌보니, 부인 안씨는 고작 석 달 만나 평생 함께하기로 약조한 이치고는 남편의 마음씀이 자상하고 훌륭하나 그 것이 과연 자신을 사랑해서인지, 혹은 뻐어쓰 정류장 4정거장 거리에 가까운 시모가 두려워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가끔 고심터라.



그러던 날인즉, 더운 초여름날 저녁에 병子 가로되, '부인께서는 순갱농회(蓴羹鱸膾)의 고사를 아시오? 또한 동진(東晉) 사람 필탁의 소원은 알고 있소?' 물으니 부인 안씨가 실내 자전거를 타다 모른다 답하는지라,



이에 병子 설명하기를 '진나라 사람 장한은 동조연 벼슬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고향 강동의 순채국과 오강에서 건져올린 농어회가 먹고 싶어 늘 그리워하다, 마침내 벼슬살이를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이를 즐겼소. 세상사 자기 뜻한 바가 있는 법인데, 무엇하러 먹고픈 음식조차 못 먹으며 인생을 어렵게 살 필요가 있는가 늘 이야기하였다지요. 그런데 훗날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져 능히 그 목숨을 보전하였소, 이를 두고 순갱농회의 고사라고 일컫지요. 동진 사람 필탁 또한 그처럼 술을 좋아하였는데, 어찌나 술을 즐기는지 관리임에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관청의 술을 훔쳐 마셔 파직까지 당하게 된다오. 그럼에도 술을 끊지 못해 오히려 한 손에는 게다리,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시를 읊다 죽었으며 원이 없다고 하니, 이 어찌 모름지기 죽어 이름을 남기기보다 살아 술 한 잔이 중하다는 이백(李白 : 흔히 우리가 아는 이태백)의 싯구에 비견할만하지 않겠소?'



부인 안씨가 행여나 아이가 들을까 저어하며 귀를 막으며 묻기를 '어찌하여 애 아버지께서 갑자기 그러한 말씀을 하시리이까?' 묻자



병子 부끄러워하여 스마트폰을 들며 가로되 '헤헤, 회사 형님들 백일상 한 잔 사드려야 되는데 나가도 됩니까, 애기 용품 소독 다 해놓았고, 빨래도 다 걷어서 접어놓았는데....'



부인 안씨 또다시 극히 대노하여 6척에 달하는 긴 다리를 뻗으며 앞차부수기로 남편을 후려치니 그 솜씨가 가히 태권도교본에 남길만하더라. '어휴, 나가라, 나가, 이 술귀신아, 며칠 잠잠하다 했데이!' 안씨가 백년해로 약조한지 햇수로 삼년이요, 장녀(長女) 소은이 세상에 난 지 백일하고도 엿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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