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내 딸의 두 돌을 맞아.

by Aner병문

반 칠십 정도를 살아오면서, 바다를 좋아하긴 했지만, 바다 가까운 도시의 토박이 처녀와, 하물며 눈높이도, 말투도 설은 4살 연하의 아가씨와 평생 가시버시 연을 맺을 줄은 몰랐기에 나는 내가 KTX를 그렇게 자주 탈 일이 있을 게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9월 1일에 만나 12월 1일에 결혼하기까지, 결혼하는 당일을 빼놓아도 추석 연휴 포함하여 열두 번 정도를 서로 KTX로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숱하게 철길을 달렸다. 책 한 권 읽거나,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어느 틈에 이 나라 남쪽 땅끝 가까이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했다. 돌아올때는 늘 시간이 아쉬워 막차를 탔는데, 괴괴한 한밤중의 광명역은, 꼭 어느 영화 속 우주정거장마냥, 제 등뼈를 다 드러낸 채 잠든 거대한 기계 괴물 같아서, 나는 여름에도 늘상 서늘했던 밤공기 속에서 혼자 우수에 젖곤 했다.


아내는 약 3주간 처가에 머물며 얼굴이 많이 좋아져 있었지만, 늘상 내가 보고 싶다 했고, 그건 아직 말이 다 트지 않았어도 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말투도 바람도 낯선 외가의 도시에서, 딸은 어느 틈에 더욱 야무지게 커 있었고, 눈치도 볼만큼 봐서, 체격이 좋으신 장인께서 넌지시 '이노옴~' 하면 깜짝 놀라서 제 어미 치마폭에 숨기 일쑤였다. 아이고, 야, 외할아부지가 니 이뻐가 그라는데 와 그카노, 하고 아내가 깔깔거리고 웃어도, 제법 낯가리고 눈치보게 된 딸아이는, 시무룩해서 눈을 꼭 감고 아내의 치맛폭에 싸여 있다가, 내가 나타나자 노래를 부르면서 와락 안겨왔다. 딸은 어느 틈에 누워서 고집도 부릴 줄 알게 되었고, 그네도 탈 줄 알게 되었으며, 먹성은 더욱 늘어서, 제 아비와 외할아버지가 발라주는 기름 가자미에 김치와 콩나물과 시금치와 콩밥을 한그릇 뚝딱 하고도, 배가 불룩하도록 배와 사과와 딸기를 또 입에 미어져라 넣으며 헤헤 웃었다. 2월 28일, 그러니까 사실은 오늘이 딸의 두 돌 생일이지만, 양가 어른들과 나의 시간이 맞춤하지 않아 당겨서 토요일에 치렀다. 딸은, 늘상 TV에서만 보던 생일 노래를 부르자 정말 신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면서 몇 번이고 더 불러달라고 했고, 그 모습이 귀여워 부르지 않는 어른들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어서 마저 불러달라고 보채기까지 했다. 얼마나 낮에 개구지게 놀았는지, 딸은 기가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잠이 들어 새벽녘에 몇 번이고 선잠이 깨어 저도 낯설어 울다가 또 잠들고 울다 또 잠들고를 몇 번 반복했다.


나는 늘상 말하듯, 장가 한 번 잘 간 덕에, 또 명분 준 처자식 한 번 잘 둔 덕에 이번에도 처가 내려 가서 일단 알이 가득 배인 기름가자미에 미역국 한 그릇 뚝딱 해주시고, 강정이며 약과에 커피 한잔 후루룩 마시고, 대방어 회를 추가까지 해가며 꾸역꾸역 소주에 먹어주고, 아침에 또 아귀포에 새우쪄서 먹고, 점심 및 저녁으로는 과메기에다가 장어포까지 무쳐다가 오미자술에 또 먹고, 늘상 먹고 먹다가 떼굴떼굴 구를 것 같은 얼굴로 이제서야 왔다.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늘 처자식이 보고픈 허전한 마음과 잠이련만은, 다행히도 회사의 배려로 하루 더 쉴 수 있어, 내일은 훈련하고 또 술을...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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