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一場春夢)에 대하여
공부자 이후 유학은 더욱 세련되고 냉철한, 정치술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모든 과학을 아우르는 엘리뜨들의 고급 소양이었던 점과 비슷하다. 당나라 때에 들어 서쪽으로는 무려 로마까지 교역을 뻗어나가며 다양한 사상들이 중국 대륙에 몰아치기 시작했고, 송대에는 급기야 많은 선비들이 불교와 도교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조선 초기의 사상적 기틀을 잡고자 했던 정도전 역시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요즘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현실적 학문인 유학의 도를 익히지 않고, 승려나 도사들의 허망한 잡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기 일쑤다' 라고 엄포까지 놓았을까. 하기사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를 뒤엎고, 강력한 군벌 이성계를 휘어잡아 '이성적인 학문의 나라' 를 건설코자 했던 삼봉 정도전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처럼도 들린다. 불씨잡변을 저술하기 이전에도 정도전은 심문천답(心問天答), 심기리편(心氣理篇) 같은 책으로 이미 불교의 '허망한 사상과 논리' 를 지속적으로 공박해왔는데, 정작 한양으로 천도하게 된 계기가 왕십리(往十里) 무학대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또한 역사의 잔재미다.
검색어에 일장춘몽(一場春夢)의 고사가 올라왔다. 북한에서 무려 178억을 들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2년만에 보란듯이 폭파시키는 바람에 180석이 180억을 날렸다는 조롱부터 그나마 미사일 안 쏜 것이 어디냐는 다양한 반응들이 줄을 잇고 있다. 어찌 되었건 한 푼이 아쉬운 이 시기에 국세가 아까운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북한에서는 그 동안 모든 남북간 교류가 일장춘몽이었다 단언해버리니, 누가 봐도 돌아가신 DJ의 햇볕 정책을 계승코자 했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현재로서는 많이 미비했다 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사실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는 말은 이미 상식이거니와 송나라 때는 오로지 자국의 물리적 평화를 위해 '오랑캐' 로 규정한 외세에게 사실상 조공을 아끼지 않았으며, 하물며 상대는 와다 하루키가 일찍부터 '특공대 국가' 인전대 국가' 로 규정한 북한이 아닌가. 겨우 몇 권의 책과 몇 마디 뉴스로 저 숱한 엘리뜨들조차 골머리를 앓는 대북 관계에 언감생심 잘 아는 척 지껄여볼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일장춘몽에 대해서나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교? 그거 쓸데없이 남존여비, 공자왈 맹자왈 하는 아주 비현실적이고 쓸데없고 배고픈 헛소리 아냐? 그거 왜 하는지 모르겠어.' 라는 요즘의 평가와 달리 유학은 아주 오랫동안 동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정치 학문으로서 지위와 기능을 다해왔다. 유학(儒學)이 지금처럼 유교(儒敎)처럼 종교화되고, 이른하 신성적인 면모가 유입된 것은 송대의 불교와 도교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깊게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역사적인 고찰에는 산신각, 칠성각이라는 이름으로 호랑이 탄 산신령을 모시거나, 혹은 버젓이 누가 봐도 노자를 그려넣은 탱화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불교와 도교가 민간신앙으로서 서로 깊게 교류했다는 소소한 증거다. 송대의 유학은 장재, 정이-정호 형제를 비롯한 당대의 선비들이 태극, 음양, 이기(理氣)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우주의 기원, 자연 법칙, 사후세계 등을 논하기 시작했으며, 왕양명과 대척점에 서서 주자(朱子)로까지 평가받는 주희(朱喜)가 이 이론들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학문이 바로 그 유명한 성리학(性理學)이다. 이른바 유불선(儒佛仙)이라는 말처럼 유교-불교-도교는 자의든 타의든 접촉, 교류, 반목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왔는데, 이 성리학은 유학의 현실적인 면모에 덧붙여 자연법칙의 근간과 인간 본성-심리까지 아우르는 학문으로서, 고려 말 안향을 통해 조선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러므로 유가의 선비들이 일장춘몽이란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했을까? 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나로서는, 그런 말을 들었을때 비감하고 허무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물며 나라의 앞일을 걱정하는 관료인 그들이었을까? 소동파는 일필휘지로 적벽부를 노래하고, 백성들을 생각해 동파육을 만들어 먹이며 칠십 평생 천하를 주유했지만 그 역시도 벼슬살이의 세파를 피할 수 없어 끝내 유배를 당한다. 초췌한 몰골의 대시인을 본 한 노파가 쓸쓸히 웃으며 인생살이 참으로 한바탕 덧없는 봄날 꿈과 같구려! 한탄했다는 이야기에서 이 고사가 나왔다. 벼슬아치 순우분이 낮잠을 자다말고 괴안국 황제 부부에게 초청받아 일군을 다스리다 죽음을 당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역시 꿈이었는데, 알고보니 자신 집 바깥 개미 우두머리가 자신을 초청한 것이었으며, 자신이 다스리던 개미굴 또한 몹시 작아 허탈했다는 내용의 남가일몽(南柯一夢), 노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가난에 지쳐서 신선 노인의 베개를 베고 잠들었다가 역시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는 꿈을 꾸었는데, 한평생이 지나도록 꿈을 꾸는 동안 걸린 시간이 고작해야 밥에 뜸을 들인 정도였다는 한단지몽(邯鄲之夢) 등의 이야기도 다 비슷하다.
서포 김만중은 장옥정의 꾐에 빠져 어진 인현왕후를 내쫓은 숙종을 비판하고자 사씨남정기를 썼다가 그예 귀양을 가게 되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효심이 극진했던 그는, 홀로 남은 어머니가 심심하실까봐 하룻밤 만에 일필휘지로 소설 하나를 집필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시대를 앞서간 라이트노벨, 미연시 장르소설로 극찬받는 한글소설 구운몽이다. 고뇌 많은 젊은 스님 성진이 속세의 유혹에 시달리다가 양소유로 환생하여 입신양명하고, 팔선녀와 온갖 쾌락을 만끽함에도 끝내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지 못하여 출가를 결심하는 순간, 성진은 다시 현세로 돌아오며, 이 모든 것이 속세의 허무함을 깨우쳐주기 위한 스승 육관대사의 도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일장춘몽, 남가일몽, 한단지몽의 종합판이며, '아시발꿈' 드립의 조상님 판이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도 파격적인 내용의 이 소설이 당시 선비들에게는 얼마나 지탄을 많이 받았을지 가히 상상이 되는 일이다.
지금도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종교를 강력히 거부한다. 그러나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180억짜리 건물이 날아가는 그 순간,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차피 내 돈이 아니니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천상병 시인의 말씀처럼, 모두가 이 세상에서 잠시 놀러왔다가 훨훨 날아가는 것인데, 우주 속 한 톨 먼지보다도 작은 지구에서, 우리는 늘 서로에게, 1800원으로도 능히 사람을 죽일만큼의 이유를 가지고 산다. 어차피 눈 감으면 수의 한 벌 가져가지 못하는 게 우리 삶임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