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말 피곤했다.
백수 시절 씨즌2, 다시 한 번 독서모임을 기획하면서 지인들끼리 한 달에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한 번씩 모여 미리 정해놓은 책 한 권씩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약속하였다. 당시 나이 이십대 후반, 아무리 그래도 한 달에 한 권을 못 읽겠나 싶었던 어린 백수였고, 또한 총각이었다. 두어 달 모여보니 책 좋아하기로 치면 나 못지 않고, 훨씬 더 총명하고 해박했던 이들이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구나 싶어 놀랐다. 하여 책을 정할 때, 가능한 책을 읽지 못하더라도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주제의식이 명확해야 된다는 조건이 더 붙었다. 이를테면 '마린을 찾아서'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유용주 시인의 '노동일기' 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소설, 혹은 인문서적은 비교적 논하기 쉽지만, 시집이나 주제 의식이 흐릿하거나, 읽는 이마다 평이 지나치게 엇갈리는 책들은 선정하기 어려웠다. 우리의 모임은 늘 즐겁고 알찼지만, 달마다 한번씩 문학과 비문학을 교차하여 읽는 그 모임에서, 조금만 더 책을 잘 읽어오면 좋을텐데, 하는 내 개인적 욕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하여튼 그 때의 나는 하루 4시간을 자도 피곤한 줄 몰랐고, 술 마시고 책 읽고 훈련하는데 일주일을 꼬박 보내어도 때때로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있던 시절이었다.
이제 내 나이 서른하고도 여섯,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어르다가도 달걀을 삶고 과일을 깎아 도시락을 싸주시는, 네 살 어린 아내와 이제 겨우 세상살이 백일을 넘긴 어린 딸을 두었다. 사실 회사 일도 그렇게 바쁠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하루가 피곤하고 번잡스럽다. 때때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고, 만사가 귀찮을 때도 있다. 어제만 해도 회사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더 떨어진 유명한 빵집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브리오슈를 사다주기로 약속했는데, 그 때 나는 이미 진이 빠져 있었다. 물론 코로나다 뭐다 해서 회사가 요즘 번잡한 것도 사실이고, 2주 전 주말부터 아이의 백일을 치르고, 또 주변 사람들과 축하를 주고받느라 몸과 마음을 비울 수 없었던 것도 맞지만, 그렇다 해도 요즘엔 어쩐지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원기가 샘솟지 않는 기분이 든다. 황석영 선생의 자서전과도 같은 '개밥바라기 별' 에서, 시대의 중심을 살아내며 하나같이 총명했던 약 60년 전의 고등학생들은 나이를 먹고 각자에 알맞은 돌부리를 만나 하나씩 현실로 잠겨들어가는데, 그 때 극중에서 나오는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이제 다음에 만나면 어디서 본 듯한 아저씨가 되어있을 거다. 그 때 나는 아직 머리에 스크래치를 파고, 귀를 뚫고 다녔으며, 껄렁한 차림새에 보란듯이 배낭에는 책과 술을 넣어다니던 어설픈 청년이었으므로, 훗날 나 역시 그 문장을 그렇게 곱씹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요즘의 나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몸을 추슬러가며, 가능한 짧고, 자극적인 서사만을 찾아 돌아다니고, 회사와 집을 왕복하며 일과 아이를 돌보고 나면, 어제 같은 날에는 염치 불구하고 아내에게 아이를 맡긴 채 그저 곯아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제는 정말이지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이가 변을 보지 못해서 아내도 피곤했을텐데도, 집안일만 대충 해버린 채 그만 방바닥에서 곯아떨어져버리었다. 너는 오랜만에 북촌 나들이를 했고, 곽 선생은 이번주 백일맞이 집들이를 벼르고 있었는데도, 그 꼴이었다. 나는 새벽녘에 잠시 깨어 내 늙어감을 마주하다가 도로 다시 잠들었다. 그 때 나는, 아,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나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무엇이든 눈에 들지 않아 마음에도 새겨지지 않는구나, 음냐, 했던 듯 하다.
아이는 새벽 네 시쯤 깨었다. 요즘 아이는 한창 자신의 몸쓰는 재미에 빠져서, 깨어 있을 때는 공갈젖꼭지며, 치발기, 심지어 젖병까지도 손으로 제법 힘껏 움켜잡기도 하고, 내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받쳐주면, 제 다리로 무언가를 디뎌 서고, 밟아보기도 좋아하며, 누워 있을때는 목을 가누고, 복근 단련을 하듯이 아랫도리를 힘차게 위아래로 휘두른다. 이미 엎드려서도 제법 목을 버티어 있고, 바동거리기도 예사니, 아내는 조만간 뒤집기를 하겠다며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었다. 그러므로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말똥하게 뜬 아이는, 아직 뱃속에 가득 찬 변이 내려오지 않아 답답한지 또다시 방아 찧듯 탕탕 다리를 위아래로 내려놓았다. 나는 밤마다 지쳐 곤히 자는 아내가 깰까 싶어 서둘러 아이를 안았다. 나는 늦어도 새벽 4시 30분에는 일어나 5시에 출근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면 보통 오후 6시쯤 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에 쓰고 나서, 다시 남는 시간의 절반은 아이와 아내에게 쓴다. 가정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나 역시 분명 서른여섯 해 전에는 이토록 천진하게 부모의 살과 속을 갉아내며 자랐을 터이다. 요즘 아이는 내 자장가를 들으며 곤히 잔다. 어느 예술적인 부모가 노래를 불러 아이를 재울 생각을 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아직 따뜻해서, 아내가 더욱 피곤할 것을 생각하면 늘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