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1)
가만 볼작시면, 사람이란 동물이 참 재미있어서, 제가 못 가진 무언가에 늘 예민하고, 넘치게 반응하며, 지적받으면 화내기도 예사다. 돈이 없던 자가 갑자기 돈이 생기면 추태를 부리니 졸부(猝富)라는 말이 생겼고, 자격 없는 자가 벼슬을 얻어 품격없이 권력을 휘두르면 갑질한다 욕을 하게 되었으며, 유독 외모로 상처받았던 이들이 돈을 들여 얼굴을 고치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을 오히려 멸시하게 되고, 두드려 맞던 이들은 힘을 기른 다음 어깨에 힘을 주며 오히려 다른 이들을 괴롭혀 눈살을 찌푸리게 하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도 여기서 능히 쓰임직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마지막 경우에 많이 해당되었는데, 나 역시 솔직히 스스로 '흰띠 병' 이라고 불리는 병증이 깊어, 20대 때는 참 술 마시고 파락호마냥 지내는 꼴을 자랑삼은 부끄러운 기억도 많았으며, 이 흰띠 병은 서른살 넘어 태권도장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을 익히면서, 즉, 기술 몇 개 주워배워 거리에서 쓰는 수준을 벗어나, 도복과 띠를 갖추고 자세부터 다시 가다듬어가며 비로소 겨우 깨칠 수 있었다. 솔직히 20대 때 부끄러운 기억이 어찌 그뿐이겠냐만서도.
왜 나는, 혹은 몇몇 이들은 그토록 힘을 갈구했을까? 사실 물적으로 억압받았던 기억은 표면상의 이유다. 그 속내는 사실 '당당하고 싶어서였을 것' 이다. 모든 찌질이들의 구원자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니체는 위버멘쉬(Ubermensch) 즉, 모든 규칙 위에 있는 자를 애타게 부르짖는다. 일제 시대에 신음했던 이육사가 초인을 갈구했던 맥락도 이와 같을 것이다. 몇몇 잘못된 번역은 위버멘쉬를 아주 오랫동안 수퍼맨으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미국식 힘의 논리에 사로잡힌 히어로(hero)는, 바로 정의중심의 법칙에서 끝내 놓여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위버멘쉬, 초인과는 또 다르다. 맹자는 일찍이 호연지기를 지닌 이를 대장부(大丈夫)라고 표현했는데, 호연지기(浩然之氣) 란 사전적으로는 하늘과 땅에 가득찬 자연의 기운을 뜻하는 말이지만, 맹자는, 도를 따르는 자가 의롭게 살면 이 호연지기가 자연스럽게 인체에도 쌓인다고 보았다. (이를 내공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보다는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 몸가짐이 의로워진다는 뜻으로 봐야 더 옳을 터이다.) 맹자는 고자(告子,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괴로워하시는 그 분 말고..) 와 인간의 본성을 두고 평생 설전을 벌였는데,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인간은 날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졌다고 주장했던 맹자는, 등문공편에서 대장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천하의 가장 넓은 곳에 살고, 천하의 가장 올바른 지위에 서며,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해야 한다. 뜻을 이루면 백성과 함께 하고,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혼자서라도 도를 행하여, 부귀를 누려도 능히 음란치 않고, 가난하고 천하다 할지라도 능히 지조를 잃지 않으며, 위엄과 힘을 지니고도 능히 굽히지 아니하는, 그런 이가 바로 대장부다. 경춘 이라는 이가 맹자에게 위나라의 실세인 공손연과 장의의 예를 들며 '그들이 화를 내면 온 제후들이 전쟁을 낼까 두려워하고, 그들이 조용하면 천하가 조용하니(북한?!!), 이런 이가 바로 대장부가 아니랴?' 라는 질문에 반박하고자 했던 대답으로 대장부의 옳은 예를 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은 나 역시 대장부가 되고 싶었다. 인물도 재주도 대단치 못해 천하호령하는 큰 인물은 못 되어도, 마음 한구석에 협(俠) 한 글자는 늘 새기고 살고 싶었다. 이 협 이라는 글자도 참 재미있는데, 큰 뜻(大)을 가진 사람(人)에게 사람들이(人)들이 다글다글 모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점은 쉽게 보인다. 다만 사람이 사람에게 붙지 않고, 큰 뜻에 모여 있으니, 그 사람이 큰 뜻을 잃으면 마땅히 사람도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작고 못나고 불민하니, 차라리 큰 협이라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출산 전, 아내가 만삭일 때, 늦은 밤 퇴근 지하철에서 한 마른 아가씨가 갑자기 푹 쓰러진 그 순간에, 나는 막 내려야 할 보라매역이었고,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 아가씨 주변에 마치 뜨거운 물 부어놓은 개미떼마냥 확 물러나는 상황에서, 나는 더이상 홀몸이 아니라서 막 코로나로 세상이 들끓던 그 때 그 순간을 빨리 결심하지 못했던 행동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내가 총각이었으면, 솔직히 그 마른 아가씨를 도우려고 먼저 나섰던 남학생보다 더 빨리 나섰을 터이다. 아내도 어머니도, 이제 홀몸이 아니니 더이상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늘 내 성격을 걱정하며 당부했었다. 이미 낌새를 알아차린 지하철은 문을 연 채 멈춰서고, 사람들은 여전히 쉽게 나서지 못하는데, 키도 크고 잘생긴 남학생 한 명만이 아가씨를 흔들어보고, 신고를 하면서, 저 좀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한 뒤에야 내가 겨우 나섰다. 학생과 나는 각자 아가씨의 손발을 나눠쥐고 바깥으로 겨우 끌고 나왔는데, 이미 그 가녀린 몸에 힘이 빠졌는지 등이 땅에 달라붙어 정말 무거웠다. 다행히도 아주머니 한 분이 허둥지둥 함께 달려나와 아이고, 총각들, 총각들, 일단 마스크부터 써, 하면서 아가씨 짐을 함께 옮겨주셨었다.
학생이 부른 119 구조대를 기다리며, 일단 아가씨를 벤치에 눕혔다. 지하철 역무원 두 분이 오셔서 어찌 해야할까 묻기에 나는 일단 어설프게나마 아내에게 배운대로 손목의 맥을 확인하고, 콧김 아래의 숨을 살폈다. 입술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기에 물을 부탁했다. 아가씨가 서서히 눈을 떠서, 나는 그녀의 이름과, 여기가 어딘지 알겠냐고, 정신을 헤아려보는 질문을 하고, 눈 앞이 뿌옇지는 않은지 내 손가락을 보고 맞혀보라고 했다. 외모도 외모거니와 그런 말들이 전문적으로 보였는지, 남아 있는 역무원 한 분이 '혹시 의료 계통에 계세요?''아닌데요.' '...그럼 비켜서시고, 여기 아주머님이 대신 좀 봐주세요. 아무래도 여자분이니까...' 아, 예, 일리가 있네요. 하여튼 의로운 학생 덕분에 이름모를 마른 아가씨는 무사히 구조대에 인계되었고, 우리는 각자 인적사항을 역무원께 알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니 나는 차마 집으로 돌아가기가 참 무서웠다. 이미 벌어진 일이긴 한데, 혹시나 내가 코로나에 걸려 있으며 어쩌나, 게다가 만삭인 아내는 나 때문에 무슨 죄인가 싶어서 차마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집 주변만 뱅뱅 돌다가 아내가 왜 이리 늦으신고, 오늘 무슨 일 있으시니껴? 하고 전화를 해서 겨우 집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일단 아내를 복층 침실에서 아래 거실로 내려오지 못하게 한 다음, 문을 닫은 상태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내는 다 듣고 나더니, 일단 옷을 다 벗고 샤워를 두 번 하고 오라고 하셨다. 아내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영 걱정되어 그 날은 따로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 식사도 따로 했다. 다행히도 보라매역에서 아가씨는 별 일 없으니, 도와주신 분들도 걱정없을 것이라고 하여 겨우 마음을 놓았다.
그 때 아내는 혼자 잠을 자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남편 때문에 내가 외로울 때가 있겠구나. 우리 어머니를 봐서라도, 내가 혹시나 아내 속을 고의로 썩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20대 때 한 번 실수를 크게 했었고,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며, 정말이지 아내에게도 안될 일이다. 다만 아내는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가족에게 상처를 줄지도 몰라서 슬펐다고 했다. 생각해보이소, 예를 들어서 여보야가 누구 싸움 말리주다가 어데 크게 다쳐 불구라도 되어뿌면 나는 우짭니까? 차라리 여보야가 누구 후려패가 돈 물어주고 그라믄, 내가 남한테 흉보기도 편코, 공감도 받지만서도, 여보야가 다치가고 오면, 딴 사람들도 아이고 그래도 남편이 착한 일 했네, 이라고 말거 아이요, 내 혼자만 속 꿍꿍 앓고, 그런 게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안 합니까, 물론 내도 임신 안했으모 당연히 여보야처럼 거기 나서서 도왔을 낍니더, 그치만 웬만하모 여보야도 내 생각 좀 하이소, 예? 참말이지 대장부 흉내라도 내며 살려는 길이 이렇게 어려운 길입니다, 여러분.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