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의 아이언맨 - 묵자(墨子)
어느 한 사람이 묻는다 치자. '당신 가족이 더 좋습니까, 아니면 이웃 사람이 더 좋습니까.' 대부분 무슨 미친 소리냐며, 당연히 자기 가족이 좋다고 할 것이다. 그 사람이 다시 한 번 묻는다 치자. '그렇다면 저 먼 나라 트럼프 대통령처럼 우리 국민부터 보호하자는 대통령이 좋습니까, 아니면 지금 나라도 힘든데 일단 힘든 사람들은 누구든 받아들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더 좋습니까.'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릴 수 있겠으나 또 상당수가 '아니, 당연히 일단 내 나라 내 국민부터 살펴야 하는거 아니오? 당연히 자국민 먼저 챙겨주는 지도자가 더 좋지!' 할 터이다. 그러자 이 남자 또 묻는다. '그렇다면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가족을 남한테 맡긴다 칩시다. 당신처럼 제 가족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당신 가족을 맡기겠소, 아니면 당신 가족도 제 가족도 모두 귀하기는 마찬가지니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겠소? 마찬가지로 당신이 궁핍한 백성이라 한다면, 차등을 두어 백성을 살피는 왕이 좋겠소, 아니면 하늘 아래 누구든 평등하게 사랑해주는 왕이 좋겠소?' 이 말을 듣는 어떤 이는 할 말이 없어 괜히 다른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딴 궤변을 늘어놓는 당신은 대체 누구냐고 묻는 말에 그는 말없이 허허 웃으며 사라질 터이다.
실제로 생몰연도가 정확치 않으나, 피로써 피를 씻는 전국시대를 살아오며 누구보다 앞서 전쟁을 방비해온, 방어전 전문가이자 사상가였음에도, 말년에 우산 하나 빌리지 못해 비를 맞으며 쓸쓸히 산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는 알려진, 이 위대한 사내의 성은 묵(墨) 이름은 적(翟), 묵가(墨家)를 이끌던 초대 거자(鉅者)였으며, 그나마 남겨놓은 71편의 글 중 53편이 청대 말의 사상가 양계초의 연구로 겨우 밝혀지나 앞서 말한 겸애(兼愛) 이외에도 비공(非攻 : 먼저 공격하지 않음), 비악(非樂 : 음악을 배척함, 즉 백성을 힘들게 하는 큰 행사를 열지 않음), 비명(非名 : 지배자를 이롭게 할 뿐인 명분이나 운명 등을 믿지 않음), 상동(尙同 : 모두가 평등함. )등의 비범한 학설을 남겼다. 공자의 제자인 공맹자(公孟子)와 설전하는 내용이 저서에 실린 것으로 보아, 공자 사후와 맹자 탄생 전 세대에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천하의 도는 양주와 묵적에게 있다 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인기가 많은 사상가였음을 알게 한다. 인기에 비해 그의 사생활은 지금까지도 밝혀진 바가 많지 않은데, 그의 성씨로 알려진 '묵' 조차도, 본디 그가 노예 출신임을 알리는 '묵형(墨刑)' - 즉 얼굴에 먹물 문신을 들인 형벌에 나왔다는 말에서부터 잊혀진 나라의 왕손이라거나 혹은 얼굴이 검은 인도인이나 아랍인이었을 거라는 둥, 무협지처럼 낭만적이기까지 한, 여러 가지 설들이 분분하다.
이토록 신비로운 묵자가 이끄는 묵가가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그들은 서생보다 기술자이자 무인에 가까웠고,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 전쟁을 막기 위해 아낌없이 몸을 던져 싸웠다. 상징적인 말이 아니라, 그들은 뛰어난 무공과 군사 기술로, 요청받은 어디든 달려가서 실제로 대신 적을 쫓아내주었다. 묵자는 이미 기하학에 일가견이 있어 '원은 중심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의 호선' 이라는 , 유클리드와 비슷한 정의를 남겼으며, 특히 바퀴 제작에 뛰어나 전차를 비롯한 여러 병기 및 축성, 수성 분야에 특히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즉 묵가는 하나의 거대한 군사 공방이자 방어 전문의 용병 집단과도 같았다. 쉼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를 끝내기 위해 저마다 교육이 중요하다, 엄격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논리로서 사람을 설득시켜야 한다, 외교적 정세로 세상을 평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 등 다양한 주장을 펴오던 제자백가 중에 실제로 피흘려가며 백성을 지킨 학파는 묵가가 거의 유일할 터이다. 특히 강한 병사를 양성하여 모든 적들을 쳐부수어야 한다는 병가(兵家)의 손자(孫子) 등은 그 강한 병사를 만들기 위해 오히려 백성들을 징병하여 더 큰 고통을 주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지배자들을 위한 사상에 지나지 않았는데, 묵자는 이러한 병가에 맞서 보호를 요청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제자들을 파견하여 끝까지 그 곳을 지켜내었다. 묵자는 농업을 중시하는 당시 세태, 특히 유가(儒家)와도 많은 갈등을 빚었는데, 유가의 교육론이 실질적으로 허상에 가깝다고 보았을 뿐 아니라, 전쟁이 나도 땅을 지키느라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나간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살기만 한다면 어디서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아 첫째로 백성의 생명을 보호했고, 둘째로 상업을 중시했으며, 따라서 유가의 전통적인 씨족 사회보다는 이동이 가능하고, 평등하게 수익을 배분하며(交相利 : 서로 이득을 나눔), 전쟁에 혈육을 잃더라도 모두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兼相愛 : 서로 평등하게 사랑함) 소규모의 공동체를 추구했다. 묵자가 한편으로는 고대의 아나키스트이자 맑스주의자로 불리기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로서는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했던 음악 행사를 거부한 것과, 제사 지내기, 명분 세우기 등을 거부한 이유도 동일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지금도 사나이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묵자의 전설은, 그가 누구보다도 당대 최고의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저 침략자를 막는 방어에만 전념할 뿐, 끝내 강자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점에 있을 터이다. 묵가는 피타고라스 학파처럼 당대 최고의 수학, 군사학, 건축학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내부 규율이 엄격하여 함부로 기술을 유출하거나 개인의 명예를 위해 전쟁을 벌이면 그 즉시 처형당했다. 실제로 묵자의 뒤를 이어 훗날 거자가 된 복돈(腹敦)의 아들이 살인을 저지르자 진나라 왕이 그 죄를 사면케 하겠다고 자청했다. 당대 최고의 전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묵가의 지도자에게 빚을 지워두자는 심산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복돈은 당당히 거절하고 손수 제 아들을 처형했다. 왕의 명보다 묵가의 도덕이 우선한다는 뜻이었다. 이토록 강대한 무력집단이 오로지 방어만을 고집하며 통일전쟁을 가로막으면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니, 고립되고 쇠락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유덕화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사케미 켄이치의 소설이자 모리 히데키의 만화인 '묵공' 은 바로 이 시기에 분열하는 묵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훗날이야 어찌 되었건 당대 묵가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한들 결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시대를 앞서간 욜로족 양주의 주장 또한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도 중국 대륙을 통일하겠다는 지배자들의 야욕은 끝이 없었고, 묵가는 고심 끝에 묵적지수(墨翟之守)- 줄여서 묵수(墨守)라는 두 글자를 써서, 방어를 요청하는 곳곳마다 보내었다. 묵적이 이미 이 곳을 지키고 있다. 간담이 서늘하도록 위풍당당한 이 깃발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으면 그 때야말로 묵가의 특수부대가 출전하여 침략군을 꺾어버리었다. 정말이지 기술로는 시대를 앞서간 중국의 아이언맨이요, 의협심은 캡틴 아메리카도 한 수 접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영웅이 있으면 빌런이 있어야 맛이 산다. 그러므로 묵가의 평생 맞수 공수반(公輸般)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으로, 그 손재주가 뛰어나 다양한 병기를 개발하였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운제(雲梯 : 골키퍼 말고 성을 공격할 때 쓰는 커다란 이동식 탑)가 바로 이 사람의 작품이다. 대나무로 새를 만들어 3일간 날게도 했고, 사람을 태울만한 연이나 아주 빠른 수레를 개발하여 통일전쟁에 박차를 가하던, 그야말로 중국의 아르키메데스이자 다빈치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손재주를 기려 지금도 도교에서는 노반선사(魯班仙師)라는, 장인과 명인을 수호하는 신령으로 모시고 있다. 공수반 역시 당대 최고의 군사 공방 전문가로서 곳곳에 초빙받아 무기를 만들어왔으며, 공수반과 묵적은 서로 목적이 달랐으나 그 재주는 기꺼이 흠모했다고 한다. 그러다 공수반이 당시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초나라의 군사 고문으로서 송나라를 멸망시키려 진군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묵자는 놀랍게도 홀로 그 군사를 막아선다.
서로를 흠모하던 맞수의 첫 인사는 묵자가 먼저 틀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그대 나를 위해 한 사람을 죽여줄 수 있겠소?' 밑도 끝도 없는 말에 공수반은 차갑게 대꾸했을 터이다. '내 어찌 그대를 위해 모르는 이를 함부로 죽일 수 있겠소? 나는 그저 병기를 만드는 사람일 뿐, 사람을 죽여 의로움을 상하게 하지는 않소.' 이번에는 묵자가 다시 비웃는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의를 해칠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어찌 송나라 백성들을 몰살하려 하시오?' 말이 곤궁해진 공수반은 초왕 앞에 다시 묵자를 데리고 간다. 초나라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솥 3개는 만든다는, 강대한 초나라의 지배자 앞에서도 묵자의 언변은 신랄하다. 5천리 넓고 기름진 땅에 곡식은 많고, 백성은 부강하며, 소와 돼지, 양이 셀 수 없이 많은 초나라에서 사방 5백리도 안되는 작은 송나라를 치고자 하는 욕심을 꾸짖자, 초왕은 그만 '아, 아니, 그냥 나는 새로 산 무기 시범식이나 한 번 해볼까 해서.. 헤헤..' 하고 한 발 물러서고야 만다. 이 때 묵자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어 공수반과 워 게임(war game)- 모의 전투를 통해 한 번이라도 자신이 진다면 그 때는 초나라 군대를 막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공수반은 자신의 모든 기계와 병법을 동원했으며, 묵자는 단지 허리띠를 성벽 삼고, 방패를 무기 삼아 송나라의 모형 성을 방어했는데, 아홉 번 싸워 아홉 번을 모두 물리쳤다고 전한다. 이 때 공수반이 눈에 살기를 띠며 '내 열 번째는 필히 이길 수 있는 계책이 있다' 고 말하니, 묵자는 오히려 담대하게 한 마디 더 얹는다. '그대의 계책인즉, 지금 나를 죽이면 더이상 초나라를 막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내가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묵가의 비밀 무기로 무장한 3백명의 협사들과 거자가 죽음으로 송나라를 막기로 되어 있소. (묵가 어셈블?!!!) ' 이에 초왕과 공수반은 탄식하며 군대를 돌려버린다.
야사에 의하면, 단신으로 초나라 군대를 막아낸 묵자는 서둘러 돌아가다 우연치 않게 비를 만난다. 이에 송나라 아낙네에게 우산 하나를 빌려줄 것을 청하는데, 이 부인, 그 날따라 무슨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내가 댁을 언제 봤다고 우산을 빌려줘욧!' 하고 매몰차게 그를 쫓아버린다.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자고 부르짖었던 묵자, 당대 최강의 무공과 병법과 기술로 무장했음에도 지배자의 편에 서지 않고 백성들의 목숨을 지켜냈던 묵자,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여 단신으로 송나라를 지켜냈던 묵자가 정작 그 송나라에서 우산 하나 빌리지 못하고 쫓겨난다. 그는 허허 웃으며 비 내리는 산으로 사라져갔다고 한다.
회사가 어수선하다. 같은 직위의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나뉘어 편이 갈리워버렸다. 사회 생활 라인 잘타기- 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별애(別愛)가 되어버리었다. 하기사 자기 팔로우, 자기 구독자, 내 친구, 내 편, 무엇이든 '내'가 소중한 요즘이지 않은가. 하여 퇴근길에 묵자의 겸애 이야기를 했더니, 역시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이란 소리만 들었다. 그렇게 살아서 애 분유값이나 벌겠냐는 소리도 들었다. 아, 예, 역시 그렇습니까...?!! ㅠㅠㅠㅠ 그래서 여기에나마 아쉬워 몇 자 적는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