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동아시아의 과학의 차이, 사이언스북스, 2013.
실로 오랜만의 독서감평이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려고 할 때, 그 유명한 코스모스를 마침내 읽었고, 아이의 성장을 보며 네루의 세계사편력 을 읽었으며, 백일맞이를 위해 너와 곽선생이 온다고 하기에, 같이 이야기할 책이 필요하여 먼저 이 논문집을 읽었다. 세계사편력은 현재 세계1차대전이 끝나고, 네루가 화폐에 대하여 딸에게 강론하는 편지 부분에서 멈춰두었다. 고대-중세를 논하는 1, 2권에 비해 3권은 계급적 갈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네루 그 스스로가 맑스주의자임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훈련을 하지 않는만큼 짬짬이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코스모스, 세계사편력, 동아시아의 과학의 차이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읽어두어야할 유발 하라리의 책 역시 몹시 빡빡한 책인지라, 정말이지 가끔 고구마에 사이다 곁들이듯 소설 한 권 시원하게 읽고 싶기도 했었다. 좌우지간 잠 줄이고 밥 줄여가며, 물러지고 약해지는 몸으로 밑줄 쳐가며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저자 김영식 선생은 서울대에서 화학공학과를 졸업 후 다시 하버드에서 물리학으로, 스탠포드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음을 내가 굳이 밝히는 이유는, 이 위대한 석학이 본디 주자를 연구하던 분이셨으며, 따라서 철학의 입장에서 전통과학 및 서양근대과학을 해석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고 교직에 있는 곽 선생의 말에 따르면 과학철학이나 과학사는 우리 나라에서 더더욱 홀대받는 분야이며, 김영식 선생 스스로도 과학사, 특히 한국과학사는 오로지 몇몇 학자들만이 우리들만의 언어로 지엽적으로 연구되는 고립된 분야임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를 나온지도 근 십 년이 다 되어, 그저 책 읽는 애비에 지나지 않는 나는, 갑자기 왜 이 논문집을 제 돈 주고 사서 읽게 되었을까? 지가 무슨 미래과학부 차관이라고? ㅋㅋ
물론 지적 허영도 있을 터이지만, 그렇게만 설명하기엔 내 조건이 썩 좋지 못하다. 한동안 훈련하지 않아 몸은 많이 불었고, 잠은 늘 부족하며, 사실 퇴근하고 살림과 육아를 함께 하고 나면 진이 빠져 여유가 없는데도 나는 책을 읽었다. 허영이란, 본시 진실로 가진 게 없는 자가 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내가 오래 전부터 이 논문집을 찾아왔던 이유는, 이른바 '근대의 고민' 과 같은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대한제국-해방공간-대한민국으로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발적이지 못한 근대화' 강요된 서양화' 등에 아쉬움을 표한다. 양계초 식으로 말하자면 근대의 맹아(萌芽 : 순우리말로는 새싹, 또는 움)가 과연 조선에는 없었는가? 이 질문은 일본이라고 하는 급격한 서양화를 거친 거대한 맹수로부터 '근대를 강탈당한 한-중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조선 15~16세기 시절이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 라고 일컬으며 자발적인 근대화의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제가 하는 짓은 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나라의 현대화를 일으켜주었다고 옹호하는 이까지도 있다. 지금은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국이자 문화로 천하를 호령하는, 'K-한국' 이지만 대한민국의 기저에는 아직도 주체성이 결여되어 혼란이 가득하다.
이러한 논란에 더욱 가중을 더하는 내용이 이른바 '유교 논란' 이다. 나 역시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줄' 알고 있었고, 군대 가기 전까지는 그나마 서양철학책이나 달달 읽어댔으니 할 말이 없다. 훗날 광복 이후 사이비 종교 천리교에서 세운 대학의 거물급 교수가 되어 한국 전문가로 행세하는 다카하시 도오루는 본디 조선학을 전공하는 총독부의 관료로서, 경성제국대학의 조선어문학부 교수로 '제2국민으로서의 황국신민' 엘리뜨 조선인들을 가르치며 또한 어떻게 하면 총독부가 효과적으로 조선을 다스릴 수 있을지 깊이 연구하였다. 그의 기만 전술과 세뇌 교육은 매우 탁월하며 윤치호 를 비롯한 많은 엘리뜨들이 자발적으로 일제의 지배를 체념하여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역사에 크게 논란이 되는 친일파 양성의 기틀이 된다. 다카하시 도오루는 자신의 저서와 자서전, 보고서 등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무라이에게 칼이 있듯이, 조선의 의병장들과 뜻 있는 선비들은 모두 논어와 퇴계를 가까이 두고 읽는다. 유학은 조선의 핵심이다. 유학을 무너뜨려야 조선이 무너진다.' 근대 일본이 전통 사무라이 계급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행했던 폐도령(廢刀領)은, 만화 '바람의 검심' 에도 나올 정도로 당시 메이지 유신의 핵심 명령이었다. 이는 곧 일본에도 전통 기사계급이 몰락하고 부르쥬아가 태동하는 유럽식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조선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오랫동안 숭상해왔던 유학의 가치를 격하한다. 따라서 유학은 유교로 일컬어졌고, 리기논쟁으로 대표되는 주기론, 주리론 등의 용어도 이 때 정리되었다. 아주 단적으로만 말하자면, 일본은 '너희 조선은 세계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그저 중국 밑에서 낮잠만 자며 리가 어쩌니, 기가 어쩌니 하는 공자왈 맹자왈만 반복했으니 도태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이제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여라!' 논리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른바 황도 유교(皇道 儒敎)로 변질되어버린 유학의 가치는 지금도 한국에서 제법 무게감이 있다.
배경설명이 길었는데, 여하튼 내가 어줍잖게 공부하면서 가졌던 질문도 이와 맞닿는 것이었다. 적어도 송나라 때까지, 중국은 세계 4대 발명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과학의 수준이 높았다. 유학 또한 저 멀리 일본과 베트남에까지 전파되어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로 판세는 바뀌었다. 그렇다면 유학은 원래부터 사장될 운명의 학문이었을까? 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이러한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을까? 곽 선생은 나와 오랜 시간, 아는만큼 문무를 겨루어오며 총각 시절부터 이 문제로도 장난삼아, 때로는 진지하게 토론을 계속하였다. 그는 눈이 밝고 엄격해서 확실하게 감각하고 실증되는 것만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독서모임 때 인문학 책이나 소설 책을 읽으면,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이런 식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것이며, 이걸 돈 주고 사 보는 사람 속도 모르겠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반면 나는 어디까지나 과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한 방편일 뿐, 과학의 발전 없이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고, 과학은 늘 철학의 하위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어 왔었다. 과학은 더 많은 편리와 지식은 제공할 수 있지만, 근원적인 지혜와 행복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주자학을 중심으로 서양과학/근대과학을 연구해오신 한국 과학사의 대부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이제서야 본론이다!) 이 논문집은 고작해야 길어야 2~30쪽 되는 논문 10여개 정도를 목차에 맞게 엮은 책이다. 뒷부분의 참고문헌과 각주를 제외하면 끽해야 25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논문들은 모두 목차에 맞게 배치되어, 결국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목차에 따라 다시 정리하자면 1)동서양 과학을 비교하고, 동양 고대 과학에서도 서양 과학과 비슷한 내용이 있음을 보인다. 2) 동서양 과학이 서로 어떻게 교류하며, 과학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보인다. 3)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과학은 어떠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한다.
우리는 왜 '조선은 왜 그렇게 고리타분했을까? 왜 우리는 근대 과학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라는 고민을 갖고 있다. 이 고민은 결국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중세에서 근세/근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과정을 주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타국에게, 그것도 오랫동안 조선의 제후국처럼 느껴지던 일본에게 임진왜란의 침략에 이어 아예 지배받게 되었다.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이들이 이 부채감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김영식 선생은 이 부분을 지적하며 '동서양 과학이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점, 또한 우리가 뒤떨어졌다고 생각한 점 자체' 가, 과학의 완성형, 진리의 목표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늦건 빠르건 '과학이 발전되는 단계' 가 정형화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교 및 결핍 욕구가 생길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화석' '우주론' '지동설/지전설' 등을 통해 고대 동양과학에도 서양과학과 비슷한 내용을 찾아내는데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도, 이러한 흔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철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분야에도 동서양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이곤 한다.
따라서 김영식 선생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는 'why not~? 어찌하여 중국이나 한국에서 서양과 같은 과학의 태동이 없었는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있으면서 또한 없기도 한다. 실제로 조선은,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학의 강국이자 학술의 왕국이었음에도, 어째서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유학이 발전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식 선생이 말씀하시는 전상운 등을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을 좀더 읽으며 생각해봐야겠으나, 문화적/지역적으로 발달되는 학문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밌었던 사실은, 나 역시 학부 시절에 똑같은 구절을 읽었음에도 그 것을 과학과 연관지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순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각지다고 했다. 나는 그 것이 단순한 고대인의 자연관이라고만 생각했으며, 또한 김영식 선생이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윤리론의 기틀이 되었다. 하늘이 둥글고 땅이 각지다는데, 사람이 무슨수로 하늘을 각지게 깎고, 땅을 둥글게 말 것인가. 주자도 그랬고, 왕양명도 그랬듯이 고대-중세의 유학자들은 서양과 마찬가지로 많은 자연적 현상을 목도했지만, 그 것은 대부분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자연을 본받는 윤리론으로 뻗어나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때때로 과학의 발전 또한 역사를 비롯한 다방면의 환경이 도와줘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곽 선생에게 얘기하곤 했었는데, 과학의 발전 중심이 바뀌는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중국이 학술/문화/경제/과학의 중심이 되어 왔다. 자본가가 왕의 목을 자르고, 노동자가 혁명을 일으키던 유럽 대륙에 비해 동아시아는 비교적 조용하고 안정적인 역사를 살아왔고, 이는 곧 네루가 '중국은 잠자는 늙은 거인에 지나지 않는다' 고 표현할 정도였기에 '굳이 그 정도의 과학 발전이 필요하지 않았다' 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몇몇 한국 과학사가들이 말하듯, 십자군 전쟁, 그리고 이슬람 과학자들간의 교류로 인해 중국 과학의 정수는 서양으로 유출되며, 이는 서양의 급진적인 역사적 요구와 맞물려 더욱 빠른 발전을 촉진시켰다.
내가 아무리 수학 과학을 몰라도 구일 홍정하 정도는 안다. 천원술(天元術)과 마방진(魔方陣), 즉 방정식과 행렬에 능통했으며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 이라고 이름붙인 계산술을 통해 연립방정식의 기틀을 잡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이 이미 주판을 다루던 것에 비해 조선은 당시 아직 산가지를 쓰고 있었으므로, 주판으로 표현키 어려운 방정식의 이론이 크게 발전했다고 한다. 청나라의 사신 하국주가 홍정하와 면담하며, 각자 재미삼아 수학 문제를 주고 받았는데, 이 덕분에 하국주는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방정식을 익혔고, 반면 홍정하는 삼각학수의 기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일화로 미루어 볼 때 조선은 비록 중국으로부터 한 차례 걸러졌다고는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나름대로 서양 지식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영식 선생은 '과학' 과 '기술' 을 혼동치 말 것을 당부하는데, 중국과 조선은 각자 중체서용, 동도서기 등으로 정신적인 것은 여전히 동양적 가치를 따르고 '필요한 기술' 만을 받아들이려 했었기 때문에 과학이 자극받아 자생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흑선의 포격을 맞고 막부가 몰락하는 등, 사회적 변혁을 크게 겪은 일본만이, '지나치게 성공해서 오히려 동아시아적 표본으로 삼기 어려울 정도로' 전체적은 사회 개량을 꾀하여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조차 눈여겨볼 정도의 과학적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로, 과학의 발전 역시 기술 발전과는 달라서, 단순히 어느 한 영역만을 무조건 투자한다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변혁하여 지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도 국민도 과학을 오로지 '쓸모있는 기술' 로만 생각하므로, 순수학문의 기틀이 쉽게 배양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곽 선생은 나라가 과학을 발전시켜주지 '않는다' 고 했고, 나는 '못하는 것' 이라고 했지만, 그 안타까움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K-POP이 세계화에 막대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의 음악들이 한국 내에서 지금처럼 위상이 높았을까? 자신할 수 없다. 두번째로, 앞서 말했듯이, 같은 글을 읽었어도 나는 그 글이 과학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전혀 몰랐다. 같은 글이라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해석하는 데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나는 오랜만에 글을 붙잡고 읽어서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지루하였으며, 고작해야 삼백 장도 안되는 책을 밑줄 그어가며 일주일을 읽으려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으나, 오랜만에 마음 잡고 책을 읽어 정말 좋았다. 사실 곽 선생 덕분에 가끔 물리 책도 보고, 양자역학이니 암흑물질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것도 보고 그런다. 그러므로 일찍이 주자와 왕양명은 모두 같은 것을 말씀하시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개별적인 이치를 따져 큰 진리를 깨달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