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다시 한번 ITF 930일차 - 시범단 첫 훈련에 대하여

by Aner병문

시범 : 단순하게 배운 기술을 나열하여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엇.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늘 떨리고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고 무섭기도 하다. 내가 그 영역 안에서 무언가를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나는 학교에서 나온 이유로, 늘 사회에서, 그동안 배워오지 않았던 다른 일들을 새롭게 배워 빠르게 '밥값' 을 해야 했다. 요즘처럼 '경력직 신입' 을 선호하여 회사에서 스스로 지출하여 일할 사람을 키우는데 인색한 요즘 시대에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수련생의 입장에서 나는 오랫동안 태권도의 기술을 반복하여 익히는 일 이상의 다른 내용들도 배우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한 도장에 오래 있으며 더이상 내가 단순하게 한 명의 수련생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부사범으로서 지도자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유단자로서 심판 교육도 받게 되었으며, 정히 영어를 할 수 있는 다른 사범님들이 계시지 않을때 나는 비로소 다른 언어를 통해 다른 나라의 태권도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난생 처음 시범단 훈련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사실 여전히 겁이 나고 아연했었다. 시범단에 들어오라는 안산 사범님의 첫 전화를 받았을때도 그렇지만, 곧 나이 마흔에, 타고나지도 못한 몸은 많이 망가지고, 가뜩이나 '북한태권도' - 즉 북한 계열 ITF '동무' 들의 시범을 보면 오우야... 손등으로 벽돌을 가루로 바수고, 목덜미로 굵은 철근을 눌러 휘게 하고, 가녀린 여자 사범님들조차 타격은 기본이고, 심지어 프로레슬링의 허리케인 러너를 방불케하는 목감아 휘돌리기로 장정들을 쓰러뜨리기 일쑤인데, 내가 그런걸 할 수 있을까 아연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각자의 모교에서 엘리뜨 선수 생활을 오래 하셨던 안산 사범님과 보은 사범님, 그리고 산본으로 새 도장을 차린 장 사범(이하 산본 사범님), 그리고 전임자가 그렇게 새 도장 차려서 나가는 바람에(ㅋㅋ 복수삼아 매일 놀리고 있다.) 그냥 나이 많은 일반 선임수련자였다가 느닷없이, 무한도전 박명수마냥 얼떨결에 쩜오 2인자 부사범이 되어 그야말로 가랑이가 찢어질판인 내가 함께 모여 시범단의 대략적인 기틀을 짜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태권도교본과 달리 태권도백과사전 단권에는 창시자님이 직접 적어놓으신 시범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중 '태권도의 기술이 아닌 것을 절대 시범에 넣어서는 안되며, 특히 박치기는 안된다.' 라고 적어놓으신 것이 흥미로웠다. 실제로 엘리뜨 선수 생활을 해보신 두 사범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시범이란 것, 그냥 단순하게 내가 배운 기술 중 잘하는 것을 그냥 쓱 보여주고 마는 일이 역시 아니었다. 기술 체계에 따라 구성이 있어야 했는데, 그 구성을 표현하는 용어들- 이를테면, '다방면' 이라거나 '일렬' 같은 용어도 나는 비비트겐슈타인의 지적마냥 전혀 몰랐다. 듣자하니 엘리뜨 선수로 대학교에 입학한 선수들을 이미 뛰어 옆차찌르기 동작의 하나로 발목의 구조부터 몸의 탄성에 이르기까지 '타고난 몸을 지녔는가' 에 대해 이미 선별이 끝난다고 한다. 그러한 선수들을 고르고 골라 다시 겨루기와 품새 등으로 나누며, 그 중 뛰어난 이들을 다시 일정한 구성에 맞춰 시범을 연습시킨다 하니 나는 기가 질렸다.



실제 시범의 연습과 동선을 짜보니 더욱 그랬다. 몸이 정교하고 날래지 못한 나는, 이른바 화려한 기술도 할 수 없었고, 할 줄 아는 기술도 다채롭지 못했다. 끽해야 4년 정도 걸려 흉내나 겨우 내는 반대돌려차기나, 뛰어반대돌려차기 정도가 전부였을 뿐이다. 명선수가 명지도자가 되긴 어려우며, 너는 30대 떄부터 태권도를 해오며 어떤 기술이 무엇 떄문에 안되는지 직접 몸으로 겪었으니, 다른 수련생들을 공감해주고 이해시키큰데 더 빠를 것이다, 라고 격려해주셨던 안산 사범님이나, 태권도는 어차피 오래 꾸준히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제일 좋은 것이다 라고 응원해주셨던 보은 사범님조차도 나의 이 깻잎 몇 장 깔아놓은듯한 얕은 기술의 깊이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신 모양이었다. 하기사 시범단이 십대 이십대가 많아야 되는데, 우린 뭐 대부분이 3, 40대니 뭐 하면서 하하 웃고는 결국 넘기시었다. 어쨌든 시범이란 건 무대에 들고 나서는 동선부터, 뒤공중돌기나 뛰어돌려차기 의 격파 높이를 맞춰주기 위한 목마 타기, 호신술을 보여주는 구성 등 모든 것이 세세하게 짜여져 있어야 했고, 거기에 덧붙여 박진감과 시각적 효과를 더하기 위한 연기력, 기합의 통일까지 모두 신경써야 하는 것이라 정말 머리가 아팠다. 틀 몇 개 같이 맞춰보고, 위력 시범이나 좀 보이면 되겠지 싶었던 내 생각은 산산히 깨져나갔다. 참고로, 화려한 발차기를 잘 할 수 없는 나는, 결국 연습을 해서 위력 시범으로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 더욱 몸이 남아나지 않게 생겼다. 이미 보은 사범님과의 맞서기로 나는 오른 어깨와 허리와 무릎이 모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보은 사범님과의 맞서기 얘길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은 사범님은 키르기스스탄 대회 맞서기에서, 그 뼈대 굵고 거친 동유럽 사내들을 당당히 부딪혀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셨으니, 그때 국가대표를 인솔하고 돌아온 사범님 역시 보은 사범님을 눈여겨 보셨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지 아직 오래 되지 않았지만, 세 자녀의 아버지이며 부부가 함께 도장을 운영해온 보은 사범님은 지도자로서의 품격과 여유, 또 현역 선수로서의 신체적 능력을 모두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또 유튜브의 큰 행사에 나갈 준비를 하셔야 했기 때문에 안산 사범님, 산본 사범님, 나는 시간을 맞춰놓고 돌아가면서 보은 사범님의 맞서기를 도와드렸다. 어떤 상대와 어떤 규칙으로 붙을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의 경험이 있는 내게 가능한 많은 기술을 보여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웬걸, 하단차기까지 넣은 ITF 태권도 맞서기 기술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아무리 오랜만에 썼어도 나의 태클이나 관절기 등도 전혀 먹히지 않았고, 보은 사범님의 중심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보은 사범님은 명백히 안산 사범님이나 산본 사범님과 맞서기를 할때는 내게 더 여유를 두어 주셨지만, 빈틈을 사정없이 찔러 치셨고, 내가 발을 거둘떄 따라 들어와 하단차기를 꽂았으며, 내가 태클을 들어가면서 위에서 덮어눌렀고, 어깨를 잡아 꺾으면, 반대로 돌아서 뿌리쳤다. 힘과 체력이 모두 완강해서 나는 그동안 유급자 수련생들을 여유롭게 대하며 늘었다고 생각한 내 실력이 역시 깻잎 몇 장이었구나 싶었다. 나는 진짜로 직사하게 맞았고, 다음날인 오늘,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여유롭게 상대해주셨는데도 그랬다. 역시 갈 길이 멀었다. 배워야할 태권도가 아직도 너무 많아서, 나는 오랜만에 안산에서 두 사범님들을 모시고 소주를 많이 마셨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술인가보았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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