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모든 언어에 대하여.
언어는, 결국 타인과의 교류 혹은 이해나 설득(심하게 말하면 지배까지?!) 을 전제로 탄생한 도구다. 내가 나를 납득시키는데도 언어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혼잣말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물론 있긴 하겠으나, 기본적으로 언어의 방향이란, 결국 타인의 수용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동일한 언어를 전제로 하는 관계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나는 요즘 사범님의 권유로, 이런저런 체육학의 논문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새롭고, 한편으로는 낯선 세계에 흠뻑 빠져 있다. 요컨대 하나의 이론에 대해 접근하거나 숙고하는 방식은, 비록 오래되어 녹슬었을망정, 내가 한때 학교에 있었을때 아주 익숙하게 대하던 방식이다. 학교 바깥의 사람들은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고 쓸데없이 말꼬리 잡는다며 피곤해하여, 늘 경박한 웃음과 말재주로 포장해야만 했던 시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읽는 요즘의 글들은 - 심지어 늘 읽던 인문학 책들을 잠시 덮어두고 - 체육학 또한 나라의 중요한 학문으로서 얼마나 깊고 무거운 체계를 지녔는가 다시 한번 숙고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시범단의 방식을 전혀 모르고, 그에 쓰이는 언어들을 몰랐듯이, 나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들을 다시 배우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근대 태권과 경기 태권의 효용을 정확히 몰랐고, 스포츠공동체 가 정확히 어떤 범위와 정의인지 알지 못했으며, 체육에서 쓰이는 개념어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는, 내가 그동안 태권도를 비롯한 무공의 요체가, 기술의 숙련과 전파가 가장 중요하다고 오해했던 것과 비슷하게, 또한 시범이 그동안 익혀온 기술을 나열하는 과정이라고 국한했던 것과 다르지 않게, 나는 체육학이 단순히 신체를 도구삼아 하나의 이상을 구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구태여 사회학적 접근이나 이론이 필요할까 격하했던 것이 사실이다. 태권도가 국기(國技)라면, 마땅히 나라 차원에서 이를 보존하고 보전하고 전승하고 확장할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개인의 기량 연무만으로는 이룰 수 없고, 당연히 여러 사회에서의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체육도 그와 마찬가지라서, 나는 요즘 내 알량한 몸으로 미처 다 깨닫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흠뻑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