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김용 저, 소오강호

by Aner병문

김용 저, 박영창/강승원 역, 소오강호, 중원문화사, 2008.

김용 원작, 이지청 그림, 소오강호, 서울플래닝, 2003


김용 선생의 소설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읽어도 결국 흠뻑 빠져 도통 손에서 놓을 수가 없으니 과연 신필이라는 별호가 전혀 아깝지 아니하다. 소오강호는 그 중에서도 작게는 동방불패 라는 희대의 걸출한 인물상을 유행시켰고(영화판에서 임청하의 독보적인 연기도 한몫 했으려만은), 크게는 선악의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는지도 묻는다. 젊었을때는 소오강호 를 대표하는 무공은 역시 독고구검(獨孤九劍)이라고 생각했는데, 마흔을 앞두고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주제 의식을 더 잘 드러내는 무공은 흡성대법(吸星大法)이 아닌가 한다.



검법으로 이름난 다섯개의 문파- 오악검파 중 화산파의 수제자인 영호충은 젊은 나이에 검술과 내공이 모두 뛰어나고 의협심이 뛰어난 호방한 사내지만, 술을 좋아하고(!) 마치 히피를 연상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다. 무공이 높은데다 인격자로도 이름나 군자검(君子劍)이라는 별호까지 붙은 스승 악불군(근데 솔직히 이름부터 너무 복선이 있는거 아닌가 ㅋㅋ) 과는 영판 달라, 스승의 딸인 악영산과 미래를 약속한 사이임에도 늘 경박하고 품위가 없다며 자주 혼이 난다. 화산파는 비단 김용 선생의 무협지뿐 아니라 어느 무협지에서도 명문정파의 반열에 드는지라 그 수제자이자 사부의 딸과 결혼도 해야할 영호충은 마땅히 정파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사파를 악으로 여겨야 하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렇게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뉘지 아니한다. 형산파의 둘째 가는 고수 유정풍이 금대야로 손을 씻고 무림의 모든 은원을 잊으면서, 마교의 호법장로 곡양과 음악을 통한 우정을 유지하려는 사건을 시작으로, 스님의 몸으로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여 딸까지 낳은 불계대사, 더할 나위 없는 색마에 성범죄자이지만 뛰어난 무공과 의협심으로 주인공을 계속하여 도와주는 만리독행 전백광, 군자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던 스승 악불군, 약하고 가련했던 사내에서 끝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임평지 등, 단순히 선과 악만으로 나눌 수 없는 속세의 상황들이 연이어 밀어닥치며 영호충은 크나큰 혼란을 겪게 된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특별한 초식없이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즉흥적인 절세검법 독고구검은, 영호충의 특기가 되어 심지어 내공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태에서도 그의 몸을 언제나 지켜준다. 창시자님 말씀처럼 맞서기는 언제나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번 읽으면 읽을수록, 영호충은, 자신의 몸에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여러 갈래의 진기, 내력처럼 끝없는 가치관의 혼란에 괴로워한다. 여러 갈래의 내공은 단순히 그가 평생 익힌 무공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족쇄일뿐 아니라, 군자인척 하며 위선을 행하였던 스승의 화산파를 벗어나 여러 가지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영호충의 혼란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다른 악인이자 무림의 고수인 일월신교 교주 임아행은, 흡성대법이라는 독특한 무공으로, 이러한 내공들을 모두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 독특한 내공심법을 지니고 있으나, 그 역시 끝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무조건적으로 타인의 가치관을 전부 다 받아들이는 것만이 또한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영호충은 다시 소림사의 역근경 구결을 외우고 수련함으로써 조금씩 건강을 되찾아가게 되는데, 소림사 역시 무학의 정종이자 불가의 근원인만큼, 가장 기초적인 윤리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사에서 사조삼부곡 등의 정발본이 나왔으나 번역은 늘 조금씩 차이가 있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양가창법의 절초가 회마창인지 최벽파견인지, 항룡십팔장이 맞는지 강룡십팔장이 맞는지(항룡십팔장으로 결정은 된것 같지만, 용이 내려와서 펼치는 열여덟개의 장법도 괜찮은데..ㅠ) 잘 모르겠다. 중원문화사의 번역판은, 번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오타가 많고, 가끔 내용도 뒤죽박죽이고, 문장의 어미 말투가 전혀 다르기까지 하다. 그래서 가끔 잊을만하면 이지청 화백의 만화로도 보고 그랬다. 사소한 흠결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김용 선생의 글은 늘 즐겁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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