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풀뿌리가 벽돌을 밀어올리듯

by Aner병문

아내와 내가 서로 사랑하며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아끼는 마음은 같으나, 그 접근하는 방식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차후 자세히 이야기할 때가 있을 터이다. 여하튼 간단히 이야기하면, 아내는 마치 혁명가 같아서, 평소에 설거지, 빨래, 청소, 식사 준비 등을 언제나 일정하게 꾸준히 유지하는데는 매우 어렵고 힘들어하며, 해야될때 닥치면 후다닥 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이 일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집 안 구조를 근원적으로 자주 바꾸려고 하는 편이다. 반면 나는, 현재 있는 집 안 구조를 바꾸려 하기보다 내가 그냥 조금 덜 자고, 더 많이 움직여서, 하루에 해야할 설거지, 빨래, 청소, 식사 준비 등을 늘 챙기는 편이다. 장단점이 있겠으나, 여하튼 아내는 도장을 가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틈만 나면 집 바깥 옥상에서 하루의 훈련량을 채우는 나를 보고, 자신은 그렇게 못할 거라도 혀를 내두르는데, 나는 늘 하루의 찌르기와 치기와 발차기 연습을 하듯이 책을 읽었고, 술을 마셨고, 집안일도 해왔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내는 주로 집 안팎의 일을 넓게 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 주로 부탁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아내는 소은이의 어린이날 선물을 받아온다던가,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족 관람 일정을 알아온다던가, 혹은 언제까지 민방위 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무엇을 해야한다던가 하는 큰 대소사를 잘 챙기었다. 오늘은 느닷없이 주차장 풀을 뽑아야 한다기에, 옛날 농사짓던 시절처럼 어데 김이라도 매어야 하나 생각을 했더니, 아스팔트와 달라 벽돌을 깔고 사이에 흙을 뿌린 바닥에는 풀씨가 스미기 쉬워 금새 잡초와 이끼가 자랄뿐더러, 그 뿌리가 굵어지면 위를 덮은 벽돌 정도는 예사로 밀고 나온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말로만 들었고, 김수영 시인의 풀이 눕는다는 시도 눈으로만 읽었지, 실제로 풀의 힘이 그리 세고 끈질기리라곤 생각치도 못햇다. 아닌게 아니라 안식구를 따라 주차장에 나가보니 그동안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잡초들이며 이끼들이 벽돌과 벽돌 새에 가득하여 내 머리숱보다도 무성하였다. 아내는 장마가 져서 이끼가 꽃을 열고 포자를 날리면 더욱 큰일이라며 지금 해야 한다고 성화였다.



아기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는 동안 아내와 나는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았고, 송곳으로 흙을 쑤셔서 이끼들을 파내었다. 날이 더운데다 아이가 금방 동영상에 싫증을 내어 오래 하지는 못하였고, 날이 또 시원하다는 내일을 기약하면서 아이스티에 빵 좀 간식 삼아 먹고 돌아왔다. 나는 사실 아침에 아내가 모처럼 늦잠을 자라고 아이와 함께 자리를 비워주었는데, 몇 시간 자고 나서는 몸이 근질거려서 또 아침 열시부터 한바탕 땡볕에 태권도를 한 뒤였다. 옆집 아저씨가 담배를 문 채 옥상텃밭을 정리하면서 저건 뭐하는 놈인가..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뭐가 되었든 간에 나는 풀처럼 약한 사람이므로, 풀처럼 끈질기에 벽돌을 뒤집듯이 매일 집안일처럼 훈련하고 볼 일이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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