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미루고 미룬 집들이를 다녀왔습니다!!

by Aner병문

너는 멀리 가지 않았다. 똑같은 지하철 역에서 출구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다. 코로나가 많이 풀려서인지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고, 지하철들은 연이어 자주 들어오지 않았다. 역을 두번씩 갈아타야 했으므로 15분씩 늦어지니 결국 삼십여분 걸려 늦게 도착했다. 늘 생각할때마다 너와 엄서방과 곽선생이 늘 이 먼 길을 되짚어 와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선물받은 병영사또와 산토리 가쿠빈 위스키, 늘 술 마실때 쓰는 은잔을 챙겨 길게 다녀왔다. 너는 몸에 감기는 짙은 회색빛 원피스를 입은 채 감자탕을 끓이고, 두부김치를 썰어내오고, 두껍게 썰은 호박전을 부치고, 닭 한 마리를 끓여내오고, 그것도 모자라 육회까지 조물조물 버무려 내왔다. 우리는 신혼집에서 눈치없게도 늘 그렇듯, 두 시부터 두 시까지 (...) 열두시간을 놀았다. 너나 선생이나 나나 본 지 오래 되어 이제 이러한 자리 아니면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마음을 풀고 놀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즐겁게 천천히 오래 마셨기 때문에 산토리 위스키와, 병영 샤또와, 봄베이 사파이어처럼(좀 달아졌더라) 독한 술을 얼음잔에 띄워 연달아 마셨어도 머리가 하나도 아프지 아니하였다. 다만 늘 좋은 시간은 왜 이렇게 녹듯이 빠르게 사라지는지 모르겠다..ㅠㅠ 안온한 집에 정리해둔 너의 서가가 괜시리 정겨워서 속으로만 낄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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