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작년, 아니 지난주에 왔던 아재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또 왔네?!

by Aner병문

태권도의 5대 정신 중 두 번째가 염치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논어에도 나오는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선생과 나는, 너가 또 오라고 해서 정말로 또 갔다. 새신랑 엄 군 눈치를 보면서(솔직히 눈치 안 주고 착한 청년이다.) 또 갔다. 너가 냉장고를 비워야 된다고 해서 그 핑계 대어 또 갔다. 시간이 햇볕에 짓물러 흐르듯 녹을 것 같은 한낮이었다. 지난 주에 육회를 떴던 정육점의 몸 좋은 사장님은 우리를 또 기억하고 계셨다. 너는 있는 부추를 밀가루에 절여 부쳐주었고, 사먹는 감자탕 대신 닭을 또 손수 끓여주었고, 엄 군을 위해서 베이컨과 버섯을 잔뜩 넣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했고(솔직히 별로 찾아먹는 성격이 아닌데도 감칠맛 있고 맛있었다.), 피자를 시켰고, 구운 명란과 그냥 명란을 절여서 주었다. 나는 그 떄 마시다 만 위스키와 진을 다시 가져왔는데 모자랄까 싶어 혼자 미리 마셨던 오십도짜리 고량주가 기어이 탈을 냈다. 더운 날에 빈 속, 더군다나 그 동안 훈련하며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몸에 동서양의 술을 섞어 들이부으니 아닌게 아니라 술 장사는 없었던지, 나는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서 신혼 집에서 갈데 없이 민망해서 흐늘거렸다. 나는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고, 너가 킬킬대면서, 그 얘기 아까도 했고요, 아까도 했고요, 해서 정말이지 술도 약해지면서, 무언가 이야기에 강박을 가지는 갈 곳 없는 아재가 되었구나 싶어 내 스스로가 슬프고 짜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너는 꿀물을 두 번이나 타주었고, 정말 힘들면 좀 누웠다 가라고 했고, 부드럽고 넉넉하게 나를 대해주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래도 잘 정신을 차려서 늦지 않게 왔다. 정말로 술에 장사 없을 느낀 하루였다. 쓸데없이 술기운에 흐느적거려서 모처럼 두 번이나 있었던 귀한 시간을 완전히 푸지게 보내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다음에는 조금만 마셔야지..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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