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와 멘토열풍

by Aner병문

소통이라는 말은 본디 20세기 마지막 천재라 불리웠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따온 용어이다. 선천적으로 윗입술이 갈라져 발음과 대화에 많은 노력을 쏟아야 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해서는 그나마 1세대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전부이다. 그마저도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그러므로 감히 하버마스의 소통 이론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소통 이론에 대한 명확힌 이해 없이 한때 우리 나라에서 질릴 정도로 소통 열풍이 불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소통 열풍과 맞물려 자타칭 멘토 또한 방송가로부터 대학가, 직장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난립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누군가와 오해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지는 '누군가 나를 마음 편히 이끌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욕망은, 그만큼 사회의 구조가 억압되고 불합리하게 운용된다는 반증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아직도 스스로 멘토라 자칭하는 이들이 남들을 가르치지 못하여 안달이 났다. 손쉽게 채널을 열수 있다보니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안다 싶으면 누구든 입을 열어 자극적으로, 현학적으로 말하기를 즐겨한다. 그러한 태도가 돈을 끌어오게 되니 사람들의 선망은 더욱 강해졌다. 결국 소통을 말하는 태도는 자극적인 연설로 바뀌게 되고, 자칭 멘토들은 제 삶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니,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나 쓰는 말이지 싶다.



지금 이 시대에 대중적으로 가장 '멘토' 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정치에서도 학계에서도 이러한 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구무완인(口無完人)의 방송가에서 칭송받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며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두 인물이 있다. 이제 요리는 백종원 씨를 말하지 않고는 성립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하여간 개 하면 강형욱 훈련사다. 갈수록 대가족을 기피하고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소비하는 요리, 그리고 반려동물이라는 양대 취미에서 두 거장은 확실하게 성공해온 발자취와 이론을 가지고 있고, 특유의 카리스마와 합리적 해법으로 사람들의 공감과 쾌감을 이끌어낸다. 이 두 사람은 확실한 목표와 야망을 가지고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다양한 채널에서 다양한 방송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TV건 유튜브건 책이건 간에 이들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설파하는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많은 자칭 멘토, 또는 소통을 말하던 이들의 상당수가 이 두 사람에게 붙었다는 것이다. 잠시 다른 얘기로, 일찍이 계명구도(鷄鳴狗盜)로 유명한 맹상군이 누명을 써 실각하게 되었을때, 무려 삼천 명이나 되는 식객을 거둬먹였으나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버리었다. 오로지 '장검아 장검아 이런 대접을 받으니 돌아가자꾸나!' 노래를 부르며 끼니때마다 생선반찬 달라, 자가용 마차 달라, 집에 계신 부모님을 돌봐달라 칭얼거렸던 제나라 사람 풍훤만이 달변을 발휘해서 맹상군을 다시 전보다 더 높은 자리로 복직케해주었다. 그러자 흩어졌던 식객들이 다시금 맹상군을 모시러 돌아왔는데, 이에 맹상군이 분노하며 '오로지 풍훤만이 나를 다시 옛 지위를 누리게 도와주었거늘, 그들은 무엇 하나 한게 없으면서 다시 공밥공술을 먹고자 내게 오는구나. 저들이 무슨 낯짝으로 나를 본단 말이오? 다시 오는 이들의 뺨을 치고 침을 뱉어 내쫓겠소!' 라고 말하자 오히려 풍훤은 절을 하며 그를 만류한다. 맹상군이 식객들의 잘못까지 대신 빌어줄 필요는 없지 않냐고 하자 오히려 풍훤은 정색을 하며 맹상군을 꾸짖는다. '제가 절을 하는 까닭은, 식객들의 허물을 대신 하고자 함이 아니라 공의 잘못 때문입니다. 시장이 아침에 바글거리고 저녁에 한산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저녁에는 마땅히 사람이 찾아야할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마땅히 그러하므로 저들도 그에 따라 처신하는 것뿐인데, 공께서 저들을 탓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백종원과 강형욱에게 들러붙는 저들에게도 어떠한 이득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신하여 요리를 하지도 않고, 대신하여 개와 몸싸움을 벌이지도 않겠지만, 마치 플라톤이 지적한 허상의 권위처럼, 혹은 배달 최영의가 누더기 도복을 입고 소뿔을 쳐 날릴 때, 그와 비슷한 도복을 입고 거들먹대던 극진의 풋내기 흰 띠 제자들마냥 마치 자신들이 똑같은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는 듯이, 두 '스승' 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에게 협박 전화를 하고, 악성 댓글을 달고, 흉을 보기 바쁘다. 일찍이 광복 무렵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만으로 수없는 학살을 자행했다. 세상이 변해도,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는 악습도 있다. 증오가 바뀌지 않아서 그렇다. 단지 목표만이 바뀔 뿐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군사부일체라고 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한 몸처럼 여겨야 된다고 했다. 임금 대신 우리가 뽑는 대통령은 때때로 중우(衆愚)와 금전에 휘둘려 휘청거린다. 부모는 맞벌이나 이혼으로 부재하거나 자녀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 스승은 혹시나 부모가 찾아와 대신 책임을 물으며 증오를 풀까 무서워 감히 학생들에게 손대지 못한다. 젊은 세대가 자라나며 본을 보일만한 어른이 없으니 방송가에서 재주 많은 이를 내세워 스승으로 모시도록 자극적으로 강요하니 이들은 이미 넋이 나가 때때로 열광하거나 절망하기가 이토록 쉽다.




그러므로 옛 스승들은 글이나 무공을 가르칠 때 감히 외람되지 않았다. 일찍이 '퇴계의 제자들은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빗질할 줄도 모르고 스스로 제 자리를 치울 줄도 모르는데, 글을 읽어 무엇하랴!' 꼬집으며 퇴계와 논쟁을 벌였던 남명 조식은 누가 대쪽같은 영남 선비 아니랄까봐 늘 칼과 방울을 차고 다녔다고 했다. 글을 읽다 졸음이 오면 턱 끝에 칼날을 받치고, 허리에 찬 방울 소리가 나지 않게 걸으니 늘 의젓하게 걸어 경망스럽지 않았다. 당나라의 향엄스님은 위산 선사를 모시며 말을 잘하고 학식이 높기로 소문이 나 스스로 자부심이 강했는데, 이에 스승인 위산 선사가 그를 깨우치기 위해 물었다. '그대가 그토록 총명하고 말을 잘한다니 어디 한 번 대답해보라. 그대가 어미의 뱃속에 나기 전, 동서남북 방향조차 가리지 못했던 그대의 모습은 어떠했겠는가? 그 존재는 어디에서 왔겠는가?' 향엄 스님은 자신이 읽었던 모든 책의 지식을 다 짜내어 답했지만 그 스스로도 흡족하지 않았다. 스승에게 답을 구했지만 위산 선사는 외면했고, 이에 향엄 스님은 무려 스승을 폭행하고(!! 역시 소림사의 나라...) 그 자리에서 방랑길에 오른다. 다시는 책을 읽지 않겠다, 스승의 말장난에 놀아난 꼴이라니! 하며 조그마한 암자에서 울력(運力)으로 밭을 갈던 향엄 스님은, 무심코 밭에서 나온 기왓장을 대나무밭에 던진다. 대나무에 기왓장 부딪는 소리가 청명하게 날 때 갑자기 젊은 스님은 깨달아 엎드려 엉엉 울었다고 했다. 스승이여, 제자에게 매를 맞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저에게 직접 말씀해주지 않아 감사합니다, 그때 말씀해주셨던들 어찌 지금 같은 깨달음이 있었으리이까? 또한 무공을 익힐 때 옛 선사들은 반드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교불엄 권필왜( 教不嚴,拳必歪) 학부전 권필람(學不專,拳必濫) 련불고 권필공(練不苦,拳必空) 엄격히 가르치지 아니하면 반드시 권법은 어지러워지고, 배움을 전하지 않으면 권법을 필히 남발할 것이며, 고된 수련을 견디지 못하면, 권법은 끝내 공허해지리라. 아, 그렇다. 재주 많은 이들만을 서로 잘났다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니, 심기가 없어 사람은 쉽게 휩쓸리고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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