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버렸다. 원더 윅스(wonder weeks)....!!
나 어렸을 때는 백일 될때까지 내려놓기만 하면 울어제껴서 부모님 피를 말렸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걱정했는데, 우리 아이는 초반 한 달이 고생스러웠을 뿐, 잠드는 시간도 비교적 일정하고 일어나는 시간은 점점 뒤로 밀려서, 아이고, 이젠 되어부렀네, 한숨 놓으려는 찰나에 아내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어보였다. 아이고 어림엄찌요, 여보야, 이제 곧 원더 윅스(wonder weeks)가 옵니데이~ 원더 윅스? 그게 뭐여? 말 그대로 아니겠습니까~ 깜짝깜짝 놀라는 주간이 곧 온다 그 말입니데이, 이유없이 애 막 울고 안 자고 또 이런 날이 막 올 낍니데이, 마음 준비를 잘 해두이소. 아닌게 아니라 백일이 넘어가니 아내의 말이 꼭 들어맞았다. 원래도 낮에는 잠을 잘 자지 않던 아이였으나 어느 틈엔가 자야될 저녁 시간에도 눕혀놓기만 하면 허리까지 다리를 들어올려 바닥을 탕탕 구르며 제풀에 깨어 울기가 일쑤였다. 한 두어달 이제는 되었다 싶다가 다시금 2시간 간격으로 깨기 시작하니 아내도 나도 다시 피로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 백일 전에 시끄럽던 아이는 백일 후에 조용하지만, 반대로 백일 전에 조용하던 아이는 백일 후에 시끄럽게 뒤바뀐다 했던 말씀이 이 것인가 싶었다. 최근 유튜브로 청소기 소리나 머리말리개 소리를 틀어놓아도 이제 효력을 다했는지 잠이 잘 들지 않는 판에, 부부가 목소리를 모아 섬집 아기를 불러주면 또 잠이 들더니만, 이제는 자장가도 별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예전처럼 아내와 나는 2시간씩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안고 흔들고 어르기를 계속 반복하였다.
아이가 잠시 잠드는 틈을 타 아내와 나는 열심히 육아백과며 블로그 등을 뒤져보았다. 갈수록 믿음직한 어른이 부재하는 요즘, 인터넷으로 애 키운다는 말은 참으로 실감이 난다. 원더 윅스의 원인은 없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너무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 또래의 어느 젊은 부인의 블로그가 도움이 되었다. 평소에는 잘 자던 아기가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다리를 탕탕 구르면서 깨며, 세워주거나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지르며 짜증내는 모습까지 그야말로 우리 소은이 판박이었다. 이 젊은 부인의 말인즉슨, 한창 아이의 성장판이 열리고 자랄 시기라, 다리가 아파서 스스로 허리를 휘둘러 가며 다리를 쾅쾅 침대에 부딪치거나 몸을 뱅뱅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인은 손에 크림을 발라 아기 피부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기 전 십 분 정도로 안마를 해주고, 또 아이가 다시금 다리를 구르며 깨려고 하면 그 다리를 잡아서 만져주면 금방 잠든다며 동영상을 손수 촬영하여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아이가 마침내 깊이 잠들었으므로 아내와 나는 거의 자정 가까운 시간에 겨우 침대에 몸을 눕히며 다음에 해보자 마음 먹었다.
오늘 아침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새벽녘, 나는 세시 오십분쯤 일어났다. 아내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그러나 틀림없이 알고 있을 발목과 무릎이 시리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연골이 닳고 인대가 끊어져 꿰매어 이어붙인 발목과 무릎은 제아무리 운동으로 근육을 붙여 지탱해왔어도 비오는 날이면 늘 아우성을 쳐서 술 생각을 나게 했다. 하물며 지금은 운동량도 줄고 살이 쪄서 하체가 더욱 버거웠을 터이다. 이런 날의 무릎은, 꼭 아주 가느다란 칼날을 끝까지 박아넣고 휘젓는 듯 아려오고, 발목은 족쇄를 찬듯 무겁고 지끈거려 걷기도 힘들다. 그러므로 고중량 운동을 하다 터진 디스크를 지탱하기 위해 오히려 운동을 더욱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심정은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깰세라 조심스레 아랫층으로 내려가 아이를 살피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금세 깰 듯이 발을 또 꽝꽝 구르며 칭얼거리고 있었다. 서둘러 복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닫고, 손을 따뜻하게 비벼서 아이의 다리를 붙잡고 조물조물 주물러주었다. 그 경황에 크림을 찾아 부드럽게 할 새가 어디 있었으랴. 나는 그렇게 4시부터 5시까지, 해가 밝아오기를 기다리며 아이가 다리를 구를 때마다 몇 번이고 발목과 무릎을 주물러주었다. 아내가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만들어진 아이를 밀어내듯이, 아이의 몸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내실이 생겨나는 과정이었는데, 결국 이 모든 과정은, 그 유명한 칼 세이건이 말하는 코스모스(cosmos)일 것이고, 동학(東學) 식으로 말하자면 개벽일 것이며, 유학에서는 리(理)라고 말하며 존숭해왔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의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하며,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 다시 커나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의 탄생을 보듬으며, 내 탄생을 돌아보게 되고, 아이와 함께 자라나면서, 그 동안의 내 삶 역시 앞으로와 마찬가지로 절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자식을 결혼시키면서 너도 부모 되어 내 속 알 것이다, 그 말씀을 되뇌이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동창이 터오는 새벽에 나 역시도 부디 아이가 더욱 건강하길 바랐다. 나는 몸을 약하게 타고나 몸의 결핍이 마음이나 삶의 결핍으로 옮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부디 우리 아이는 그러한 삶의 맥락을 현명하게 살아나가길 바랐다. 아이를 주무르면서, 아내를 생각했다. 예전에는 나 혼자의 그리움밖에 몰랐던 시간에, 나 없는 시간 동안 아내가 아이를 돌보며 얼마나 피곤했을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다행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