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기행 1 - 미식 편
나는 제주도를 지금껏 딱 세 번 다녀왔다. 그 중에 두 번은 팔자에도 없는 농업 NGO를 다니며 출장으로 다녀왔었다. 아직도 저가항공 뒷좌석의 달그락달그락 바람소리 요란하던 창문을 기억한다. 바쁜 나날이긴 했지만, 하여간 맛있는건 참 많이 먹고 다녔다. 학교의 선배이시기도 했던 직장 상사께서는 당시 면허가 없던 나를 대신해서 손수 운전하면서 좋은 것도 많이 먹여주셨고, 좋은 얘기도 많이 들려주시어 지금도 늘 감사하고 있다. 그래도 실상 사적으로 가본 적은 없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석 달 정도 제주살이를 하시고 싶으시다며, 머무르시던 도중에 처가 식구들도 초대하시고, 또 안식구와 딸도 제주 구경 좀 시켜주고 싶어 하시어 3주 정도 오게 하시었다. 아무리 고부 간에 큰 충돌 없이 잘 지낸다 하더라도 워낙 어려운 관계인지라 아들이자 남편으로서, 짐을 싸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으니 아내도 생글생글 웃으며, 에이, 어머이가 다 잘 해주실낀데, 머가 걱정인교, 넘 염려마시소, 그나저나 울 남편 혼자 있을 생각에 그기이 맘이 영 짠하네, 아무리 그래도 혼자 술 드시지 말고, 내 아는 약속에서만 술 드시소, 하기에 내 어찌 그 약속을 깰 수 있겠나. 너의 신혼집에서 두 번 마시고, 사범님과 두 번 마셨으니 결국은 한 주에 한 번씩만 마신 셈이다. 좌우당간 어머니께 반농반진으로, 아따, 며느리하고 손녀는 지성으로 챙기는구마이, 나는 어찌, 안 부르는고 마시는감? 했더니 어머니는 넌 애 아비가 되어가꼬 뭔소리여, 니는 꿍꿍 돈 블어서 처자식 먹여살릴 생각은 안 허고 흰소리는 잘 헌다잉. 안 그래도 사실 코로나 때문에 1주일을 넘게 쉬어서 여름휴가 간다고 말하기가 애매하던 차였는데, 그래도 회사에서 큰 배려를 해주셔서 2박 3일로나마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었다. 좀 멋은 없으나, 이 일기에서는 먹은 음식을 주로 얘기코자 하므로 단락을 좀 나누어 두드리도록 한다.
1. 국내선은 술을 주지 아니한다.
어머니는 항시 비행기와 배와 차는 비싼 걸 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고, 그래서 저가항공 타도 괜찮다고 말하는 아내를 설득시켜 끝내 아시아나 항공을 타게 하시었다. 아무리 국내선이라 해도 코로나가 풀려가는 끝물인데다 성수기에 항공 이름값까지 겹쳐 그래도 왕복 기십만원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에서 뭐든 얻어먹고 뭐라도 하나 받아와야 직성이 풀리는데, 아이고야, 평일에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옆에 아주 세련되게 생긴 젊은 아가씨가 혹시나 흉볼까 싶어 괜시리 영어로 '진짜 부끄러운 일이라서 아무도 안 들었으면 좋겠어서 영어로 말하는데, 혹시 술 좀 줄 수 있느냐' 고 스튜어디스께 여쭈니, 스튜어디스께서는 힘주어서 '국내선은 어떠한 음료(any drink라고 하시더라.) 도 제공하지 않는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근데 나중에 들어보니 코로나 때문에 아예 물조차 주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좌우간 상공 1600m에서 구름을 보며 마시는 술 맛은 그저 꽁술이라서 아니라서 몹시 각별한데, 그냥 상상으로만 아쉽다 아쉽다 하며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뭐 김포에서 제주까지 길어야 40분이면 내리더만 뭐...
2. 복어
주변 지인들이 장어와 복어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들이 좀 있어, 막역한 이들은 한번쯤 맛보여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실 민물장어는 어렸을때부터 좋은 일 있으면 먹었는데,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민물장어는 서울로 시집오고 처음 먹어보았다 하여, 이제는 우리 가족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등에 먹는 별식이 되었다. 장어도 장어지만, 복어의 가격도 만만치 아니하여 사실 나도 복어를 먹어본 일은, 어머니의 지인께서 하시는 식당에서 몇 번 먹어봤을 따름이다. 복어는 탕을 끓이는 뼈와 살부터, 미나리와 함께 초장에 무쳐먹는 껍질까지 정말이지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그야말로 복어남작이므로, 오죽하면 그 유명한 다산 선생께서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복어를 먹는 백성들' 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거나, 책만 보는 바보라 하여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로 칭한 북학파의 이덕무 역시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지 말고, 복어에 젓가락을 대지 말라' 며 문도들에게 위험과 자극을 추구하지 말 것을 엄히 경고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좌우간 어머니의 지인께서는 역시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지금은 영업을 잠시 접고 다른 일을 하시는데, 다른 집에서도 이래저래 어머니 덕에 얻어먹어 본 일은 있으나, 내가 아는 한 복어의 명인은 그 분이 최고신지라, 어머니가 복어를 사주신다고 하면 늘상 '그 분 집만 한게비?' 하며 기준을 잡아보곤 한다. 앞말이 길었는데,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3주간 못 본 딸아이는, 그새 흠뻑 커서 차 안에서 '아빠!' 외치며 내게 뛰어들고, 어머니는 애비가 내려왔으니 복어 집을 예약했다 하시며, 아버지는 그 동안 약주도 제대로 못하셨다며 아들이 내려왔으니 복국에 소주 한잔 하신다고 벌써 운전대를 잡으신 채 입맛을 다시고 계셨다. 다른 음식에도 그렇지만, 복어에 유독 까다로우신 어머니가 고른 제주의 복집은 과연 2.3초 같은 제주의 2박 3일 중 첫 맛을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복어는 담백하면서도 맛이 얕지 않고, 무겁거나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복어의 진미는 보통 일탕. 즉 국을 제일로 치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잘 튀겨서 혀로만 살짝 밀어도 크림처럼 녹듯이 흩어지는 복어살튀김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주 안주로는 미나리를 잔뜩 넣어 개운한 복국이 제일인지라 아버지와 나는 소주 세 병을 맛있게 나눠비웠다.
3. 말고기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다. 제주도에는 훌륭한 말이 많이 나므로, 팔십 평생 명마를 기러 나라에 바쳐 왕의 품격이라고까지 불리는 기병을 건재케 하고, 임진왜란 극복에도 일조를 한 헌마공신 김만일이 있고, 또 고려 말, 기병으로 전세계의 반을 제패한 몽고군이 제주도의 토종말 품종을 탐내어 이를 바치라고 하자 뜻 있는 말테울이들이 명마들의 한쪽 눈에 약초를 발랐다던가, 아니면 진짜로 눈을 지졌다던가 쑤셨다던가, 하여간 애꾸로 만들어서 몽고군들이 그들을 탐내지 못하게 하여 제주도 말을 무사히 지켰다는 이야기도 옛 출장길에서 들었던 적이 있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여하튼 제주도에 많은 것이 돌, 바람, 여자 외에도 당연히 말이니까 말고기도 예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는데, 한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제주도 오기 전에 어머니가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다른건 그렇다치고 말고기 좀 먹어보자고 노래를 불렀더랬다. 그래서 마침내 먹어본 말고기는, 정말이지 박력 있는 식감이었다. 쇠고기보다 훨씬 단백질이 많고, 오리고기보다도 불포화지방 비율이 높으며, 무엇보다 근막이 많아 살짝만 익혀 먹어야 좋다는 말고기는, 서걱거리는 육회보다는, 오히려 불에 구워 지방을 따뜻하게 녹여 활성화시칸 다음 먹는게 맛있었고, 살짝 매콤한 육수에 핏기만 가시도록 익혀 먹은 샤브샤브가 더 맛있었다. 다만 첫 맛은 담백한 듯 하여 정신없이 먹었는데, 막상 먹고 나니 역시 육고기인지라 제법 기름기가 있어서, 술과 곁들이는게 좋았다.
4. 감귤 주스와 수제 아이스크림
다른 것보다도 날이 더워 그런지 한라봉과 감귤을 짜낸 주스를 참 많이 마셨다. 모두 동일한 제품인지 어딜가나 돌하루방 모양의 투명한 병에 담아주었다. 아내는 그보다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유명하다는 집에 가서 하나 사주었다.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사드렸더니 어머니도 좋아하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없어서 아쉬웠다.
5. 회
나는 회를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아한다. 육회건 생선회건 딱히 가리지 않지만, 생선회를 보편적으로 좋아한다. 어느 정도 좋아하냐면, 삼시세끼 한 달 먹어도 좋다 할 정도다. 처가가 포항이므로 장모님께서는 '아이고, 바다에 지천에 널려 있는 거를 사위가 좋아한다이까네 내도 편해서 좋다~' 하시지만은, 회 '한 사라' 거하게 먹고, 간식으로도 또 어시장 가서 막회 한 접시 썰어먹고, 그러고 어머님께서 다음날 '사위야, 뭐 먹을래~' 하고 물어보시기에 또 냉큼 '회요' 했더니 어머님 혀를 내두르시며, 아이고야, 사위야, 니 안 질리나, 어째 회를 그예 좋아하노, 이제 딴거 묵자~ 하시며 밥을 따로 차려주셨다. 음... 어머님 사실 손수 음식해주시면 맛있기야 하지만 죄송스러운데...ㅠ 좌우지간 그렇게 회를 먹고도, 너나 다른 지인을 볼 때 마땅히 먹을 게 없으면 걍 회 먹지? 할 정도로 회를 진짜 좋아한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좀 아쉬운 점은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다섯시 여섯시정도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 닫을 준비를 하기 때문에 저녁 거리를 거하게 먹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일찍 어시장에 가서 회를 떠서 온 가족이 같이 먹었다. 사실, 가격에 비해 양이 좀 적긴 했으나, 역시 제주도 해산물이라 그런지 회가 무척 달고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뭐 대략.. 이정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