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이제는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는 단위까지 내려갔다.
아내가 임신을 하던 초기에, 나는 책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지 못할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어떤 책들도 좀처럼 길게 읽을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시집을 좀 들추거나, 한동안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긴 글을 읽지 못하고 빈둥대었다. 물론 아내와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던 신혼이었으나 짬짬이 무언가를 읽으려 해도 그렇지 못했다. 결국 어떻게든 적응하긴 했는데, 그 방법인즉, 소설책 등은 정말이지 시간 날때 읽을 수 있도록 미뤄두고, 주로 철학이나 과학 책 같은 인문학 서적들을 하루에 단 두어장이라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시간날때마다 밑줄 긋고, 요점을 적어가며 읽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 세 권을 한 해 넘겨 다 읽었고, 코스모스를 또 그렇게 했고, 철학vs철학을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라고, 이제는 태권도가 또 내게 화두에 올랐다. 1주일에 이틀, 도장 가는 허락을 받긴 했으나 매번 화/목마다 도장 가기 편하도록 다른 일이 없을 수 없었고, 나는 도장의 지도 부사범이자 태권도를 훈련하는 이이기도 했으나 본업을 가진 회사원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떤 날엔 1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도장을 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도장을 가지 않기만 하면 차라리 괜찮았다. 가정의 보금자리를 꾸린 내게는 널찍한 옥상도 있었고, 다락방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커가고, 아내도 외부 일정이 많아지면서 책 읽을 두어 시간마냥 내 태권도를 온전히 수행할 두어 시간은 좀처럼 없는 날도 많앗다. 책 읽는 탄력이 그렇듯이, 나는 훈련 역시 하루에 땀을 빼쪽히 뽑아서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기사 하루에 열 개의 발차기를 해야 한다면, 한번에 열 개의 발차기를 하는 편이 도움이 되지, 아침에 3개, 점심에 3개, 저녁에 3개 해봐야(조삼모사?!) 거기서 거기지 않았나 싶었던 탓이 크다.
그러나 책을 읽을 틈을 낼 수 없어 내 스스로 방식을 바꾸었듯이 태권도도 결국엔 할 수 있는대로 바꿀 수밖에 없엇다. 그러므로 도장 나가는 날과 회사의 첫 회식이 겹친 어느 목요일에, 나는 나름대로 꾀를 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약 40분 동안 내 좁은 다락방에서 가볍게 몸만 풀고, 주먹 쓰는 연습과 근력 훈련을 먼저 했다. 이후 씻고 출근한 다음, 퇴근하자마자 다시 회식이 시작하는 오후 8시 전에 도장으로 후딱 넘어가서 약 1시간 동안 틀만 다 연습했다. 물론 중간중간 사제사매들을 알려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므로, 2단 틀까지 다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적어도 땀이 흘렀고, 적어도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어떤이는 근골이 타고나 이렇게 하지 않다고 완강하고 센 이가 있다. 나는 다만 그렇지 못하므로, 내 실력을 퇴보라도 아니하게끔 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연습할 따름이다
어제는 동생이 모처럼 와서 가볍게 소주 두어병 하고 말았다. 웬일로 아침에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 비교적 일찍 깨어 옥상에서 훈련했다. 비가 온다던 하늘은 아직 찌푸리가만 할뿐, 해도 없이 흐리고 좋아서, 나는 딸아이가 깰 때까지 부지런히 훈련했다. 딸아이는 밖에서 내가 고당 틀까지 다하고, 3보, 2보 맞서기 10개씩 다 할때까지 밖으로 나와 애비는 대체 이 아침부터 뭘 하는가 싶은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꺅꺅거리며 내 띠를 잡고 놀았다.
일기예보대로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면, 빨래를 아니할 순 없으므로, 집 안팎은 온통 여름 빨래로 뒤덮일 터이다. 내 책들을 다 치워도 부부침실인 5층 다락방에서 내가 설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다. 이때는 또 시간이 나는대로 1보 맞서기 10개를 잘 외우면 된다. 다 하기 나름이다. 다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고, 내가 좀 더 잠을 줄여야 한다. 나는 원래 그렇게 약하게 타고나서 부단히 하지 아니하면 남의 반조차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