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레디 플레이어 원, 미국, 2018

by Aner병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타이 셰리던, 올리비아 쿡 외, 레디 플레이어 원, 미국, 2018



몇 번 정도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매번 기회를 놓쳤다. 개봉된지 4년만에야 비로소 OTT 서비스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는데, 서비스별로 화질 차이가 너무 커서 결국 애플 TV 앱에서 5,000원 주고 소장하여 봤다. 어느 평론이 설명했듯, 대중문화의 총아라고 불리는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은 실로 대단했고, 현실보다 가상을 더 중히 여기는 근미래의 서사 또한 어디서 본 듯 했어도, 지나간 옛 시대의 향수를 적절히 버무려 독특하였다. 역시 썩어도 준치, 스필버그는 뭘 해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법을 아는 감독이다.


하나만 더 나아가보자. 발터 베냐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 에서 대량생산으로 획일화되는 대중문화 속에서 점점 묻혀지고 침체되는 자아의 개별성에 대해 경계하고 걱정했다. 흔히 쓰는 '아우라Aura' 라는 개념이 중시되던 때도 이 즈음부터다.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하였고, 단순히 현실에서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또 하나의 가상 현실을 만들어 그 속에서의 소비를 더욱 촉진한다. 그러므로 굳이 프로이트를 끌어다붙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바타' 서비스 등을 보며 자아의 분열에 대해 무심코 두려운 마음을 가져왔다. 저 컴퓨터 화면 안에 비치는 캐릭터와 그 너머에 있는 누군가는 과연 동일 인물인가? 우리 나라에도 이미 이에 대해 섬세히 다룬 '후아유' (감독 최호, 주연 조승우, 이나영, 한국, 2002) 라는 훌륭한 역작이 있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 누군가와의 관계에 부딪히게 되면 늘 이 영화를 다시 보며 혼자 청승을 떨었다. 결국 내가 해석한 타인과, 타인이 스스로 보이고자 하는 타인은 서로 다른 것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퍼시벌과 아르테미스 역시 자신이 내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내보이려 하지만, 그 관계에는 역시 자신들만의 감정과 해석이 또 한번 쌓이게 된다.



그러므로 그 유명한 '부기영화' 에서 매몰차게 내놓은 평론은 어느 정도 옳다. 퍼시벌과 아르테미스, 아니 웨이드 와츠와 사만다 쿡은, 자신들이 성공을 거둔 게임에 스스로 제한을 두고, 사람들에게 현실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그 때 이미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을 쌓은 뒤였다. 부기영화 에서 비판했듯, 두 주인공의 결론은 결국, 암울한 근미래의 계급사회에서 그나마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었던 어떤 사다리를 스스로 파괴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현실에서의 '레벨 업' 을 꿈꾸면서 학원 수강조차 빼먹고 어두운 PC방에서 괴물을 잡는데 귀한 시간을 바치는 청춘들도 한때 나의 과거였었다. 그래서 나는 이 위대한 대중문화의 소비자이자 창조자가 어째서 이러한 결론을 관객에게 주었는지 알 수 없다. 그조차 최소한의 대중적 양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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