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이다. 일상이 주는 편안함은 여행에서 돌아와야만 알 수 있다. 평소엔 그냥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할 일도 적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지기 쉽다. 이번에는 특히 사춘기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 하듯 다녔던 여행이라 더 의미가 깊다. 아이를 아는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순둥이가 이제는 별거아닌 말에 눈을 부릅뜨며 대꾸하기도 하고 사는 것에 즐거움이란 없어보이던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부여하며 떠났던 여행이었다. 아이는 머무르는 내내 더 있고 싶다고 한다. 제주도가 좋아서일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어서일까. 자신도 잘 모르는 눈치다. 이번 여행의 성과라고 한다면 집에서는 서로 할 말도 많지 않고 서로 불만을 내비칠때가 많았지만 운명공동체가 되어 여행을 하니 말이 많아지진 않았지만 핑하면 퐁하는 친밀한 관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려움을 뚫고 즐거움을 찾을 때 우리는 얼마나 서로와 가까워지는가. 잘 따라 다녀준 아이에게 고맙고 무사히 다녀온 불안증 엄마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봄꽃 향기가 나는 제주 버스를 타고 저녁이 다되어 제주에 도착했을 때 겨울이라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어두운 것이 어쩐지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의 제주를 다시 찾아야 겠다. 해수욕을 하고 싶기도 하고 그때 오면 밝은 상태의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밤바다를 보며 바다에 관해 생각한다. 그 차가운 바다. 생명의 바다. 물고기도 해초도 모두 바닷 속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그 조용하고 어두운 바다 속, 그곳을 지키고 있는 동식물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가. 어쩌면 인간도 아주 오래전 바다에 살았을 텐데. 어떻게 바다 위에 살기로 결심한 걸까. 아이에게 여행에서 좋았던 것을 물으니 수영이란다. ㅋ 호텔 수영장에게 감사를... 인간은 역시 바다에서 살았음에 틀림없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쉬운 점은 사진으로는 그 향기가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냄새에 민감한 나는 제주를 다닐때 그 시원하고 은은한 공기가 좋았다. 비오는 곶자왈, 눈 내린 사려니숲, 노을지는 협재해수욕장 등 각자 가진 향기가 내 영혼을 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설록 이니스프리에서 산 핑크 코랄 미스트를 뿌려본다. 원래는 몸과 머리에 뿌리는 것이지만 신비스런 향이라 방안 곳곳에 뿌려 여행의 여운을 달래본다.
이동진 기자가 추천한 <우리가 작별인사를 할 때마다>와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을 주문해 놓고 이번엔 둘 다 완독을 해보리라 결심한다. 독서모임에 추천하니 긍정적인 반응이다. 사실 나는 누가 추천했다는 책을 사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이동진 기자가 강력히 추천했다고 해서 어? 이 사람 뭔가 다른데? 하는 생각을 했다. 삶에 대한 통찰을 가진 것 같다고나 할까. 사실 그가 추천한 책 대부분이 내 관심을 끌지 못했기에 그가 대단해 보여서 추천한 책을 읽는게 아니라 그 책이 괜찮은 것 같아서 그가 대단해 보였다고나 할까. 여튼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일상은 다시 일정한 루틴 속으로 들어간다.
역시 창의적이 되려면 좋은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설렘은 필수다. 우리나라에서 제주 이상으로 괜찮은 곳이 있을지. 외국으로 가야하나? 이제 이곳도 봄이 오려나보다. 하지만 제주 날씨에 비하면 아직 겨울이다. 새삼 제주가 다니기 얼마나 좋은 날씨였는지 깨닫는다. 꽃 피는 곳을 찾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등산복이라도 입고 곳곳을 찾아다니게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여튼 이번 여행은 여행을 자주 다니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루종일 컴튜터만 바라보면서 창의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깨닫는 여행을 많이 해야겠다. 여행의 흔적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간직해야겠다. 찬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