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봄꽃들이 피어나는 시기. 봄비를 맞으며 꽃대궐이라는 창덕궁으로 향했다. 지난 번 바람들이기 때는 진달래 몇 송이가 피어 있는 것 밖엔 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색색깔로 거의 모든 꽃나무들이 만개해 있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살구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등 오래된 궁궐 안 나무들은 몇 백년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왕조의 모든 일을 굽어 보고 있었으리라. 아무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충실히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었으리라. 매화의 향기는 너무 그윽해서 어디다 담아가고 싶었다. 촘촘히 꽃들이 박힌 앵두나무는 세종대왕이 앵두를 좋아하셔서 궁궐 안에 많이 심어져 있다고. 그렇게 어여쁜 꽃들에 푹 취했다 나오니 아무리 걸어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봄에만 잠깐 이 꽃들을 볼 수 있다하니 아쉬움도 컷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어김없이 또 꽃들이 피어있겠지. 새로운 희망을 품은 것처럼. 몇백년에 걸쳐 그 과정을 반복했다하니 거의 신선급이 아닌가한다. 나무에 소망을 비는 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아직 벚꽃을 보지 못했는데 곧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만 담을 수 있다는게 영 아쉽다. 내 방안에 꽃나무들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 안 공기를 환기시키고 좋아하는 미스트를 뿌려 향기로 채운다. 제주도에서 사온 미스트인데 제주도는 모든 꽃들이 다 피었을 것이다. 이번 주에 때를 맞춰 잘 다녀온 것 같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지만 정작 보러 다니지는 않았는데 함께하는 북클럽 멤버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한 것 같다. 이제야 봄에는 꽃을 보러 다니는 게 정석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전에는 이 중요한 일을 안하고 뭐에 바빴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드니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자연에 가까워지고 그게 진리라는 걸 깨닫는다. 인간사에서 한발짝 떨어져 자연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 이렇게 마음이 행복해 지는 길을 왜 몰랐을까. 우리 가족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좋아하는 하지만 보러가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ㅋㅋ 내일은 부활절. 이 꽃 피는 시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매년 새로 태어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꽃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희망을 안고 사는 기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