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 교수님의 에세이집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를 읽었다. 이 책 한권은 바로 그녀였다. 내가 만난 그녀의 모습이 선연히 펼쳐지며 그녀가 왜 그렇게 눈물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놀란 점은 누가봐도 핵인싸에 말도 잘하시는 분인데 정작 낯가림이 있고 소심하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다. 상반된 두 가지 모습에 나는 좀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그래서 그녀가 더 좋아졌다. 하나라도 나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가난, 번아웃, 우울증약 등 겉으로 보아서 상상이 가지 않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렇게 열정적이고 다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역시 그녀의 부모님과 남편, 아이 등 그녀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괜찮아, 충분해, 잘 하고 있어. 그런 말들을 필요할 때마다 해주는 사람들. 눈물 많은 그녀가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집에 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읽어야 이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그녀의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잊고 있었던 문학 속의 아픔과 슬픔에 그녀는 유독 주목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쓴다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의 것이 아니지. 아프고 슬프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것이지. 그녀는 매일 시를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수업을 듣고 나면 나는 시를 읽고 싶어졌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서너권의 시집을 빌려왔다. 그 안에는 내가 피하고 싶은 가난, 아픔 슬픔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사실 나는 내 안에 있는 그것들을 애써 피해왔던 것이다. 그것들을 마주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이다. 교수님은 그것들을 아름답고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귀한 것을 꺼내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타인의 고통에 귀기울이는 책 많이 읽은 사람을 알게 되어 기쁘다.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그런 분이 친구하자는 말을 내게 했다는 것이 감동스럽다. 나도 꽤 잘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다. 그녀의 수업을 더 듣고 싶은데 아쉽다. 그녀가 그리울때면 혹시라도 올 답장을 기다리며 편지를 써야 겠다. 그녀와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