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사이로 북클럽을 마치고 맛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보니 남자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랑하면 어떻게든 함께 해야하는데 아버지의 반대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진 것이다. 주인공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여자가 그 당시에는 사랑인줄 몰랐고 성에 눈뜨기 시작했을 뿐이고 후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는 의견이 있었다. 나의 경우 이들의 사랑이 행복해 보이지 않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생각이라 사랑의 기쁨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의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하지 못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 그저 행복감만 있었다면 왜 함께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영화로 만든 감독도 그에 더욱 설득력을 주기 위해 남자가 아편을 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 아닌가한다.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나오지 않는데 남자의 나약함을 부각하기 위해 그런 장치를 쓴 것이 아닐까. 후에 그 남자는 전화를 걸어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노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역시 여자독자들의 공감을 얻긴 어려웠다. 사랑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함께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자주인공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일탈을 시도했다는데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여튼 이래저래 사랑은 어렵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렇게 모여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무척 소중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다른 이의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모두 흥미로운 점이다. 다음 책은 <이토록 사소한 것들>로 하자고 하는데 <얀인>에 이어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를 읽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주저하게 된다. 이제는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책을 읽어도 깨달음이 생기고 마음이 평온해 지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병률 시인의 에세이를 여러권 읽었는데 술술 잘 읽히고 마음에 걸리는게 없어서 계속 책을 사게 된다. 벌써 3권째 그의 책을 읽고 있다. 나도 그와 같은 에세이를 쓰고 싶고 가능하다면 좀 더 깨달음에 대해 쓰고 싶다. 내가 어떻게 우울과 조울을 경험했고 이겨냈는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고 싶다. 한발짝만 잘 못 디뎌도 아찔한 이 세상에서 난 얼마나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걸까. 읽어야할 책이 늘어나고 있다. 10월에 있을 그림책 테라피 행사 준비로 그림책을 선정해야 하고 깨닫기 좋은 가을에 틱낫한 스님의 책을 좀 더 읽고 싶다. 적당한 일거리와 읽을거리는 활력을 준다. 이 나이에 이렇게 바람직하게 보내리라 생각했던가. 우주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멋진 하루하루를 나에게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