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나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성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나는 어떻게든 그런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내가 찾은 방법은 책이었다. 모든 문제를 책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마치 전쟁터에서 한줄기 꽃을 찾듯 분명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이책에서 저책으로 옮겨가며 읽었다. 사실 학교도서관에는 책이 많지 않았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대표작 그리고 시집들. 만약 인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책이 있었다면 좀 더 명확하게 내 문제를 파헤쳐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책을 한권 한권 읽으며 나는 현실세계가 아니라 책 속 세상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내가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와도 비슷하다.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책이나 영화의 세상에 매혹된 것이다. 고전문학은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을 수록 더욱 더 끌렸다.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나를 설레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가진 문제들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재밌는 건 그렇게 해서 해법을 찾기 위해 나는 줄기차게 책을 읽었고 돌아보면 그 시절만큼 많은 책을 읽었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눈 앞의 일들을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상황도 여유있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며칠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쳐 버리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던 것처럼 한때는 책을 안 읽은 날이면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문제해결을 위해 읽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내 손을 떠나버리고 나는 아주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내 안의 심지가 언제 발화할지도 모른다. 분노, 불안, 질투, 우울 등. 여전히 나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평온하게 된 것이다. 이제야 내가 진짜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내 관심사가 아니었던 부분이지만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책을 사서 보기도 한다. 달라딘 게 있다면 에세이를 많이 읽게 되었다는 것.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사실에 의거해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다양한 주제로 에세이들이 나와있다. 의외로 사람들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언제나 있어왔을 것이다.
오랜만에 여러권의 책을 주문했다. 이 지루한 일상에서 나를 구원해줄 책들. 정말 내 인생이 책을 읽으면 달라진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최소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나의 이해가 넓어지는 효과는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순간이나 영화를 보는 순간은 잠시 현실을 잊게 된다. 인간은 참 재밌는 존재다. 타인의 인생을 궁금해하는...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심리.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 나이가 든 지금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왜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 헨리 나우웬이나 디팩 초프라, 틱낫한 스님 등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방법을 제시하는 이들의 책도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책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지만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다. 결국 타인이나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명제를 깨닫기 위해 얼마의 책을 읽었던가. 여전히 나는 첫장부터 나를 끌고 들어가는 책을 찾는다. 결국 도파민의 문제인가. ㅋ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은데 나는 너무 쉽게 해결하려고 한다. 이번에 산 책을 읽으며 봄을 기다려본다. 도파민이든 뭐든 재밌는 책이 최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