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향기일까. 봄내음이란? 눈냄새보다 흙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올때 봄이 가까웠다고 한다. 습기 찬 공기에 흙냄새가 실려 올때 비로소 반지를 주고 받으며 약속이나 한듯 봄이 올 것이다. 봄에는 한껏 가슴이 부푼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창문만 열어놔도 기분이 좋아진다. 봄은 말그대로 피어난다. 내가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면 춤이라도 추고 싶지 않을까. 따스한 햇살이 등을 쓰다듬고 얼굴을 발그레하게 만들날이 멀지 않았다. 매화가 필 시기가 되면 봄이 온 것이다. 매화를 보러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고궁이었다. 청매화가 유난히 아름다운 창덕궁에서 꽃이 시들까 사진을 계속해서 찍어 댔다. 추위를 이기는 꽃. 그것만으로도 매화는 아름답다고 칭송받는다. 그 얇디얇은 꽃잎이 어떻게 추위를 이길 수 있는지. 자연의 신비고 생명력이다. 나이가 들면 왜 꽃을 좋아하는지 나도 이제야 알겠다. 이제 나는 더이상 피어날 수 없지만 나무에 피는 꽃은 더 아름드리 큰 나무에서 더 많은 꽃을 매해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마디로 영원함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4월이면 농사꾼들은 농사를 준비한다. 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부러울때가 있다. 지금은 화분 몇 개 뿐이지만 텃밭을 했던 기억은 그 자체로 풍요롭다. 방울토마도, 상추, 깻잎, 오이, 가지, 고추는 언제나 심는 작물이었다. 커가는 그것들이 신기해서 매주 찾아가곤 했던 텃밭. 우리가 먹을 것보다 항상 많은 수확을 해서 꼭 나눠 먹어야 했다. 특히 허브를 집에서 키웠을때와 텃밭에서 키웠을때 하늘과 땅 차이였다. 텃밭에서는 순식간에 나무처럼 자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로즈마리와 바질 그 두 가지였는데 아파트에서 자란 것이 향이 엹였지만 햇살 아래서 자란 것은 그 진한 향기가 오래도록 남았다.
제주도에 갔을 때 오설록뮤지엄에서 본 수선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자주 보지 못하던 꽃이기도 하거니와 겨울에 제주를 찾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 노랗고 하얀 꽃이 이 추위에 피어있는 걸까. 믿기지 않았다. 정호승 시인이 왜 수선화라는 꽃을 두고 외로움을 말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정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강가의 새들은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궁금하다. 철새들은 철따라 이동을 할 테지만 주로 보이는 왜가리, 청둥오리 등은 그 자리에서 겨울을 날테니 말이다. 겨울 안양천의 억새와 들풀은 새들과 잘 어울린다. 저먼 지방의 어느 철새도래지라도 되는 것처럼 새도 많고 풀도 많다. 산책을 할 때 고고한 새의 자태를 보는 재미가 있다. 고개를 들고 어딘지 모를 곳을 고고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초월적인 존재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오래전에 철새 탐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강 자락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수많은 철새들이 모여 추위를 이겨내려 머리를 날개 사이에 숨기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추위를 이기고 있었던 걸까. 엄청나게 많은 새들과 그 새들의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도 새들이 부러울때가 있다. 그 단순함이 그 자유로움이... 마치 명상을 하듯말이다.
자연은 내가 외롭지 않게 해준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아름답다. 이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것들과 내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봄이 되면 강가에도 나가고 싶고 고궁에도 가고 싶다. 그렇게 나도 그들과 다시 피어나고 싶다.
*천운영<이 계절의 안녕> 제목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