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사나? 그래서 재미가 없나? 오늘 수필합평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보이는 모순들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문장이 어색한 것 등을 이야기하는데서 끝내는 분위기였는데 제목을 두고 그 내용에서 모순이 되는 것을 지적하게 되었다. 글쓴이의 편에 서서 대변하는 사람과 나를 비롯해 모호한 의미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같이 합평을 하다보면 자신이 쓰고 싶은 글과 모슨 되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신은 절대 볼 수 없는 부분일 때가 많다. 제목에서와 달리 그 자신이 확실하게 결론 내리지 않은채 글을 써서 그런 것 같다. 전체적으로 중재하는 분이 좀 호의적으로 서로에 대해 평하고 정말 잘못된 문장 같은 것을 수정하는식으로 합평이 이루어졌으면 하셨다. 그말도 일리가 있다. 너무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면 확실히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전체가 모순인데 그걸 좋게 평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또 다른 것은 제목도 좋고 발상도 좋은데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내는 힘이 약해서 변죽만 울리고 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내용을 부풀리려다보니 자기 얘기가 아니고 엄한 에피소드를 추가해서 마무리 짓는 경우다. 글감이 수필스럽지 않아서 분량이 안나오거나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수필이라곤 몇편 안써봤지만 분량이 나올 정도의 소재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자기 경험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것도 남을 끌어와 이야기하다 마는 꼴이 된다. 만약 공모전에 내거나 등단을 하려고 한다면 쓸만한 소재가 무엇인지 그 감각을 키우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경우 예전에 그저 멋져 보이는 문장을 뜻도 모르고 쓴 적이 있었는데 보는 사람은 그 말이 이해가 안되는 경우다. 자신도 모르고 썼기에 당연히 남도 알아들을 수 없다. 글에 대한 욕심이 실력을 앞지를때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런 문장을 잘 고치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이 더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 막상 지적당하는 사람은 공들여 멋진 문장을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도 예민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나도 또 수필을 써서 합평을 받고 싶다. 나의 속마음은 지적보다는 칭찬을 받고 싶은 것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칭찬받는 글을 쓸까. 요즘의 나의 행보는 철학자를 꿈꾸는 듯이 보인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 깨닫고 싶은 것을 글로 쓰고 싶다. 책 속에 답이 있을까. 하브루타처럼 토론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나에겐 종교가 많은 역할을 한다. 힐링도 되고 인생철학도 된다. 내 인생이 잘 풀리도록 누군가 기도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 내년에는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사람들과 어우러져 즐거운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