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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독과의 산책

제2회 산림치유수기 대상

by Mocca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운 윈스터 처칠은 우울증을 블랙독이라 칭했다고 한다. 늘 우울증을 애완견처럼 달고 살았지만 세상을 구하는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를 이전에는 믿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우울증은 나의 삶을 갉아 먹는 해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은 한창 직장생활에 바쁘던 2004년도 겨울이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활기찬 모습과 달리 나는 항상 어딘가 아팠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표정이 굳어 얼굴을 움직일 수 없었고 팔다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었다. 가장 큰 고통은 위통이었다. 자주 배를 쥐며 아파하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나를 지켜보던 영화감독님께서 조심스레 정신과 진단을 권유하셨다. 그 후, 우울증 진단을 받은 나는 약물치료에 들어갔고 이후 블랙독이라 불리는 우울증과 늘 함께 했다.

식구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치료를 계속하던 중, 엄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상실감과 외로움에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며 살기로 하고 드라마, 시나리오, 소설 등의 작법학교를 전전했다. 잡지기사 작성 아르바이트로 꽤 수입이 되기도 했지만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 되지 않아 현실의 벽에 부딪힌 나는 다시 취업을 결심했고 지인의 소개로 운 좋게 공연과 전시를 기획하는 문화재단에서 홍보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는지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 성공해 2008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외로움과 우울감이 한 번에 없어지리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임신을 할 경우를 대비해 우울증 약을 끊은 상태로 보냈다. 결혼 1년차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우울증은 더해갔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심한 우울증 삽화를 겪게 되었다. 한 달간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몸무게는 중학교 시절 몸무게인 47킬로까지 살이 빠졌다. 여러 번의 자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남편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와이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보이자 매우 상심했고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그제야 나는 남편에게 나의 우울증 이력을 고백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울증은 남의 일이 되어 있었고 행복한 임산부로 요가와 바느질, 치유하는 글쓰기 등으로 태교를 하며 아이를 기다렸다. 다행히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났고 그간 아이가 없었던 남편 집안에 큰 경사를 안겨 주게 되어 모든 이들의 걱정이 한순간에 축복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진심으로 ‘세상에서 태어난 뒤 가장 잘 한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육아는 쉽지 않았고 우울한 성향의 나를 더욱 힘겹게 했다. 그러던 중 시누이가 숲 공동육아를 권했고 아이가 18개월 되던 2012년 봄, 생태보전시민모임 회원이 되어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이전에 산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혼자도 아닌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까지 데리고 산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육아라는 같은 애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숲의 맑은 공기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접하고 나면 우울증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아침에 일어나서 겨우 도시락을 싸가지고 아이를 챙겨 집을 나서곤 했다. 일단 산에 도착하면 기운이 솟고 몸의 통증도 사라졌다. 숲의 맑은 공기와 풀냄새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통은 모두 나에게 치료제가 되었다. 의욕에 찬 나는 취미로 하던 바느질로 가방이나 소품을 만들어 팔아 볼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몸이 건강해 지니 그간 하지 못했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하지만 육아와 병행하기엔 무리였음에도 나의 계획은 점점 커져 갔고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또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났다. 결국 나는 아이가 태어난 지 3년 만에 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 한 달 간 입원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조울증 약의 부작용으로 탈모와 과도한 수면, 무생리 그리고 기억력 감퇴 등이 있었다. 남편은 되도록 스트레스 받는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쉬기를 원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산에 가 있었다. 막연하게 나는 아이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경험했던 숲에서의 일상이라고 판단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나는 다시 숲 육아를 시작했다. 대신 이전의 일들을 교훈 삼아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몸이 힘 들 것이라 예상되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나와 아이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내 나름의 리듬에 맞춰 숲을 산책하고 명상하듯 오감을 자연에 집중했다. 함께 하는 일정인 만큼 나의 상태를 체크해 보고 너무 무리한 일정이라 판단되면 눈 딱 감고 쉬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숲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나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숲 속을 거닐며 엄마와 산책하는 시간을 갖고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놀게 되자 공격적인 성향도 줄고 배려심이 많아지는 한편 곤충이나 식물을 관찰하는 관찰력이나 집중력도 좋아졌다. 산에 가는 것을 가장 즐거운 놀이로 여기며 자연과 소통하는 아이로 자라난 것이다. 이렇게 1년 반 정도를 북한산 등지를 쏘다니며 나의 리듬을 고려한 공동육아를 했다. 주말에는 남편과 나무가 많은 공원이나 주변 휴양지로 여행을 떠났다. 또, 멀리 갈 수 없을 때는 북한산 아래에 텃밭을 빌려 상추, 고추, 호박, 오이, 토마토, 가지 등을 심으며 내가 키우는 먹거리의 충만함을 맛보기도 했다. 이내 남편도 숲과 텃밭 등이 주는 힐링에 매료되어 나의 자연육아를 신의 한 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일상을 누리도록 배려해 주기 시작했다. 또, 건축설계를 하면서 참여했던 강원도 청태산 휴양림 내 숲체원에 자주 데리고 갔다. 산 아래부터 데크가 설치되어 아이도 함께 산책하기 좋은 청태산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나무와 버섯 등은 신비스런 느낌마저 들었다. 숲 속은 내게 외로움도 통증도 없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간 도시에서 병들었던 몸과 마음 그리고 인간관계로 받은 상처를 자연을 찾는 이에게 치유할 힘을 주고 있었다. 처칠처럼 위대한 업적을 세우지는 못할지라도 내 마음 안의 평온함을 찾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심정이었다.

이때 촬영했던 사진을 그 해, 숲체원 사진 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 시기, 우리가 느꼈던 행복감이 그대로 사진에 투영된 것일까? 이제 숲은 우리 가족의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치유자이자 행운의 전령사가 되었다.

작년 말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찰나 속의 마을’ 사진 공모전에 청태산과 북한산, 제주도 등지에서 「자연과 소통하는 아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아이의 사진이 두 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였다. 거기다, 청태산에서 찍은 사진 하나를 서울시에서 포스터를 제작하는데 사용하고 싶다고 얼마 전 연락이 와 또 한 번의 좋은 추억이 만들어 졌다.

이제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가장 걱정되고 위태해 보이는 가족에서 누구보다 숲 육아의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한 가족이 되었다. 이는 남편과 아이의 변함없는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나는 심리 상담을 일주일에 한번 받고 있고 조울증 약을 하루 한번 먹고 있다. 정신병에 있어 완치가 있기 어려운 만큼 다 나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비슷한 일을 겪을 때 내가 대처하는 방법은 이전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과 몸이 편안하도록 스스로 체크해서 리듬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집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아이디어를 틈틈이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본다.

지난 해 식목일이 가까워 오는 내 생일에 우연히 광화문에 갔다가 산림청 나눠 주는 나무를 받아 아파트 베란다에 심었다. 2년 째 받아 오기를 계속하자 베란다가 나무 묘목으로 가득하다. 십여 그루의 나무는 아직 한 개의 열매도 맺지 않았지만 잘 자라주고 있다. 과실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살구나무, 매실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 산딸나무 등을 심어 놓고 언젠가 그 달콤하고 새콤한 열매를 맛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전에 없이 원예 공부를 시작, ‘도시 속의 타샤 튜더’를 꿈꿔본다. 또, 집 안 공기가 좋지 않을 때 피톤치드나 아로마 향초 등을 피워 나쁜 냄새를 없애고 자연의 향기로 채운다. 피톤치드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공기를 정화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방충작용과 항균작용이 있다. 우리 세 식구는 잠 잘 때 베개도 편백나무를 사용한다.

나처럼 우울증을 앓거나 아이와의 갈등 등의 문제를 토로하는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숲을 권한다. 앞으로 숲치유사 자격증을 따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위해 이런 기회를 좀 더 제공하고 싶다. 또한, 이런 경험들을 모아 아이와 자연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글로 써 볼 계획이다. 나처럼 힘겨운 길을 걸어온 엄마들에게 지구라는 별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간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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