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쓴다는 게 처음엔 눈길을 끄는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내가 배운 광고라는 것도 짧은 순간에 마음을 훔치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도자료를 쓰며 원래 사건보다 부풀리고 매력적으로 쓰는 것에 전혀 죄책감도 없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책이나 텍스트를 읽고 영상을 보는가. 어떤 언니는 모든 게 킬랑타임이라고 했다. 그보다 더 인생에 회의적인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언니는 통역사를 꿈꾸며 영자신문을 보고 영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다. 그 언니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도 보기 드물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왜 사는 것이며 책은 정말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킬링타임용일까. 애석하게도 나는 내가 지혜를 구하고 싶을 때 적절한 의견을 주는 어른이 없었다. 아니 다들 자기 살기에 바빠서 나의 고민따윈 관심이 없었다. 한 평 정도 되는 교실이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이었다. 그만큼 장서수도 많지 않았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세계문학전집. 60권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걸 한 번 다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흥미가 닿으면 시집을 읽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두께의 고전을 읽으며 어떤 책은 두 세권짜리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고 어떤 책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심각하고 우울하고 진지한 것이 고전인가보다 했다. 깨우친 것이 있다면 인생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주인공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거나 감정의 흔들림을 겪는다. 단순한 일상의 여고생에게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생은 그다지 동경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도 그에 못지 않은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것 같다.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남아 글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누군가 말 했듯 이제 내 소망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길이 아닐까.
가끔 눈을 뗄 수 없이 자극적인 소설이 화제가 되는 것을 본다. 그 안에 숨은 의미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극으로 넘쳐 나는 시대에 의미를 찾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킬링타임을 위해서라면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책에서 의미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내가 달라졌나보다. 젊은 시절 왜 그리 지루하고 답답했던지 나는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했다. 그것은 나를 중독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어제 애니어그램처럼 이제 나는 평화를 원하나보다. 그리고 어제 본 영화처럼 신의 뜻이 더 궁금한 나이가 되었다. 세상에서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싶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었으면 좋갰다. 자극과 자극 사이 공허 속에서 지루함이 찾아올까봐 아직 불안해 하는 나를 본다. 이제 나는 어떨 때 지루하지 않은가에서 어떨 때 평화로운지 나를 관찰해 보려고 한다. 사실 화제가 되는 책이나 영화가 궁금하긴 하다. 그런데 <퍼펙트 데이즈>나 <오두막>처럼 어떤 사람들은 잔잔한 이야기에 감동하고 싶어하는 것을 본다. 왠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분 좋고 안도감이 든다. 그리고 그 영화나 책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어느 정도 알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 나이가 좋다. 젊은 시절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50의 나이에도 마음이나 생각이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