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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30. 2021

위험한 일을 품위있게 하는 것

찰스 부코스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위험한 일을 품위있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검은 과부 거미한테서 탈출하기란

예술에 버금가는 대단한 기적

그녀는 거미줄을 만들어 가며

당신을 천천히 끌어당기다가

당신을 품에 안을 테고

기분 내킬 때

당신을 죽일 거야

당신을 계속 품에 안고 피를 쪽쪽 빨아서


-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탈출' 일부 발췌-



'위험한 일을 품위 있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찰스 부코스키(1920-1994)

두 번째로 떠나 볼 여행지는 미국의 유명 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Love is a dog from hell)>입니다.

몇 년 전 책방 시집 코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이라 집어 들었던 책이었습니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이 제목은 영어로 읽어야 더 제 맛입니다. Love is a dog from hell.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개의 이미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알고 보면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개가 지옥에서 온 미친개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랑의 이율 배 반성을 표현한 걸까? 사랑에 한번 빠지면 지옥의 맛을 보게 된다는 걸까? 어찌 됐든 저는 이 제목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 허세 가득하고 오만하리만치 자신감 넘치는 제목을 쓴 시인이 궁금해졌지요.


찰스 부코스키는 1920년 8월에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 안더나흐에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습니다. 대학을 중퇴한 후 24살에 첫 단편을 잡지에 기고하지만 창작활동은 지속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하급 노동자로 일하며 미국 전역을 유랑했다고 합니다. 심각한 궤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후 서른 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와 칼럼을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고, 1969년 마흔아홉 살에 비로소 작은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94년 백혈병으로 73세에 사망할 때까지 60여 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 평론을 발표했습니다.


© clemono, 출처 Unsplash


긴 밤 산책은

영혼의 양식

이 집 저 집 창문 안을 흘끔거리면

지친 아내들이 맥주에 발동 걸려 달려드는 남편을

물리치느라 애먹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그리고 달 그리고 별들, 그리고 세상'-




그의 시를 읽으면서 처음 들은 생각은 이랬습니다. '발칙한데 과감하고, 심지어는 재밌네'

시인은 직유법도 은유법도 쓰지 않습니다. 그의 시는 직설적입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그리고 재밌습니다. 무척!

물 흐르듯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그의 직설화법 때문인지 그의 시는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아래처럼 이야기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멋지게 들리는 건 내가 도박하듯 글을 쓰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연구하고, 가르치고, 그러곤 망친다


부코스키의 시를 읽고 있자면 시인이 쓰고 싶은 대로 썼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에 한 명이 되었지요.


실제로 시인의 삶의 궤적을 쫓아 가보면 시 뿐 아니라 삶 역시 그의 뜻대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중퇴했고, 온갖 막노동이나 잡일을 전전했으며, 그나마 정규직인 우체국에도 늘 지각했고, 술과 여인을 무척 사랑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그의 시에는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뉴욕에서 온

스물네 살짜리 여자가

이 주 동안

내 집에 얹혀 산 적이 있다 - 그게

쓰레기 파업이 한창일 때였는데

한밤중에 서른네 살 먹은

내 애인이 들이닥쳐서는

말했다, "어디 라이벌 얼굴 좀

보자." 그녀는 뜻대로

하고는 말했다, "어머,

어린것이 참 귀엽네!"

그러고는 살쾡이들의

앙칼진 비명이 이어졌다-

왜 있지 않나, 악다구니, 할퀴기,

다친 짐승의 신음 소리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톰 존스가 대체 누구요? 일부-




젊은 여자들한테서

점점 더 많은

편지가 온다


"저는 탄탄한 몸매에 열아홉 살이고

일은 잠깐 쉬고 있어요

작가님의 글은 저를

흥분시켜요

비서 일도 잘하고

절대

거치적대지 않아요

...."


"저는 스물한 살이고

큰 키에 매력적이에요

작가님의 책을 읽었어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고요

제가 사는 곳에

오시면

연락 주세요."


....


여성분들

부디 그대의

몸과 그대의

인생을

그것에

걸맞은 젊은 남자들에게

주세요


그리고 그대들이

내게 떠안기는

미치고 팔짝

지루하고

몰지각한

생지옥은

도무지

달갑지가 않아요


그리고

행운을

빌어요

침대 안에서든

또는

밖에서든


근데

내 침대는

빼 주시고,


고마워요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나는 여성 혐오자가 아니에요' 일부 발췌-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저절로 뉴욕의 지저분한 뒷골목, 그 뒷골목에서 퍼지는 오줌 지린내, 마약에 찌든 노숙자, 매춘부의 호객 행위와 그녀와 흥정하는 백인 남자 같은 이미지들이 연상됩니다. 대부분의 시에서는 쓸 법하지 않은 저속한 단어들이 그의 시에는 자주 나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미국 문단에서는 그를 무식한 늙은이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고 합니다.


© caarl, 출처 Unsplash



누구나

저기압일 때가 있어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가끔은 요것이

행복을 가로막는

진짜 걸림돌이

아닌가 싶어.


그렇게 저기압일 때였어

경마장 주차장에서

돈 많은 돼지 놈이

맹추 애인을 옆에 태우고

빨간 메르세데스를

몰아

내 앞으로

끼어든 게 말이지


불쑥

치솟는 생각이,

저 등신 새끼를

차에서 끌어내려

엉덩짝을 차 주리라!

...


여자가 손을

수납칸으로 뻗어

열더니

놈에게 건네줬어

32 구경 권총을.


놈이 그걸 들고

아래를 겨냥한 채

안전장치를

푸는 게 보였어.


썩을,

나는 회관 쪽으로

후퇴했어

그러는 게

무조건

상책

같아서


...



-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빨간 메르세데스' 일부 발췌 -




미국 주류 문단에서는 사랑받지 못했을지언정, 대중에게는 사랑받았을 법합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삶은 우아한 턱시도나 깔끔한 여피 복장을 한 백인 엘리트들의 여유로운 중산층의 삶이 아닌 낡고 허름한 러닝셔츠와 지저분한 반바지를 입고 불안정한 삶을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하층민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모습 - 질투, 혐오, 허세, 게으름, 무지, 나태, 어리석음 등 - 에서 감추고 싶은 나의 은밀한 모습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지저분한 인간의 본성을 숨기거나 아름답게 치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 지질하고 비루할 찌라도 그는 있는 그대로 삶을 묘사합니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 또한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솔직함, 그리고 내가 감추고 싶었던 모습의 문학적 폭로에서 느끼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코스키의 시를 보면 시 쓰기가 사실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만일 내가 바퀴벌레에 대하여 시를 쓴다면 과연 어떻게 써야 할까요? 바퀴벌레는 사실 시의 소재로도 잘 쓰이지 않을 겁니다. 혐오스러움의 대상을 가지고 굳이 시에서 노래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찰스 부코스키는 바퀴벌레로 이렇게 시를 썼습니다.

© Beeki, 출처 Pixabay



오줌을 누고 있는데

바퀴벌레가 타일에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놈이 틈새 속으로

엉덩이를 쏙 넣었다

살충제를 가져와서 뿌리고

뿌리고 뿌리자

마침내 벌레는 밖으로 나와

나를 아주 더럽게 꼬나보았다.

놈은 욕조 안으로

떨어졌고 나는

놈이 죽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왜냐, 나는 집세를 냈고

놈은 안 냈거든.

나는 청록색 화장실 휴지로

놈을 집은 뒤

변기 물에 띄워

보내버렸다. 이럴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할리우드와

서부극 관련자를 제외한

나머지 우리들은 계속 이래야만 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자기네 종족이

지구를 접수하게 됐다고

선포할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단 몇 달이라도

그날을 지연시킬 것이다



-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바퀴벌레'-



유머와 낙관이 담긴 시입니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였지만 약간의 풍자와 유머를 곁들였지요. 시적 화자는 가난해도 집세를 냈기에 집세를 내지 않은 벌레를 죽인 것에 스스로 당당합니다. 바퀴벌레가 지구를 정복하는 날이 오더라도 자신의 이 행위로 그날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자부심마저 보입니다. 이런 시는 처음입니다. 이만치도 자신의 저속함과 못남을 전시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시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를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시인은 욕심이 없는 사내로구나.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류 문단에서는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러나 굳이 인사이더들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부코스키는 시 안에 자신만의 어떤 신념이나 철학, 훌륭한 관점을 넣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야심가가 되는 대신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내게 별다른 야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어야 한다
- 찰스 부코스키 <팩토텀> 중에서 -


그는 문학적으로 위대한 성취를 꿈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그저 예술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시에 쓰인 대로 살았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시로 썼습니다.


지식인은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고,
예술가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한다
-찰스 부코스키-



부코스키도 처음에는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고 합니다. 첫 아내와의 이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의 고통을 시로 쏟아냈고, 꾸준히 문단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고통을 그는 결국 극복해 내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는 숱한 여자들과의 일회성 밀회를 즐겼고 이는 그의 소설과 시에서 줄 곧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작품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과 마초이즘의 풍자라는 정반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번역가의 해설 참조)



거칠 것 없이 살았고, 원하는 대로 글을 썼던 빈민가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찰스 부코스키, 마지막으로 소개할 그의 시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를 읽고 있자면 모든 사랑과 열정의 시간 끝에 남은 허무와 고독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시인은 평생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치즈 발

커피포트 영혼

당구를 싫어하는 손

클립을 닮은 눈

나는 적포도주를 좋아한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지루해한다

나는 지진이 일어날 때 유순해진다

나는 장례식에 가면 졸리다

...


클립을 닮은 눈

나의 초록빛 눈

나는 백포도주를 좋아한다


내 콘돔 상자는

말라비틀어질 지경

나는 그것들을 꺼낸다

트로전앤츠

성감 상승을 위해

윤활유가 발린 것

나는 그것들을 꺼내

세 개를 끼워 본다


내 침실 벽은 파란색


린다 당신 어디 갔어?

캐서린 당신 어디 갔어?

(니나는 영국에 있다)


....


이 모든 게

기름 바위에 갇힌 물개 신세

오후 3시 36분에

롱비치 악대에 둘러싸인 처지


뒤에서 째깍째깍 소리는 나는데

시계는 없구나

코 왼쪽으로

뭔가 기어가는 느낌이야

비행기의 기억은


...


그런데 니나는 영국에 있다

그런데 아이린은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초록빛 눈알을 꺼낸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파란색 침실 안에 내려놓는다



-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중에서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일부 발췌-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 Don't try "

어떤 의미일까요. 시인은 이미 죽어 땅에 묻혔으니 의도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죽음을 앞둔 생의 마지막의 순간에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시인의 심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적당히 구름이 낀 가을의 한적한 주말, 오늘만큼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내볼까 합니다.



                                                                                                                                                  From 작은 나무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좌표를 아래 링크로 걸어둡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58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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