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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25. 2021

시인은 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인가요?

문태준, <가재미> (하)

Photo by Amanda kuk on Unsplash


죽은 나무를

덩굴이 휘감아

끝엘 벼랑까지 올라갔다

그 나뭇가지 아래

저만치

작은 소가 있다

물빛 아래

버들치 몇 마리

벗은 발로

불은 쌀 같은 살찐

그림자 끌고

물때 낀 돌의

푸른 이마를

천천히

짚으며 짚으며

무심하다

고요하고 한가하다

한가하다 화들짝

그림자들이 도망쳤다

물 위에

작은 잎 하나

내려앉았다

단풍이었다



- 빛깔에 놀라다 전문-



시인은 아마도 단풍이 든 어느 가을 산을 등산하다가, 작은 계곡에 발을 잠시 담그고 계곡 물을, 계곡 물 속의 버들치를, 그리고 버들치를 도망가게 한 단풍잎을 보았던 듯 합니다. 시를 읽자니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을의 정경이 저절로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런데 시인이 부린 마법일까요. 저는 어느새 지리산 어느 계곡에 앉아 발을 담그며 버들치를 찾고 있습니다. 마법의 주문이 왜 언어인지를 조금 알 것 같네요.


언어를 고르고 다듬으면, 한 폭의 풍경 사진이 된다것을,  풍경 속으로 나도 모르게 걸어 들어간다는 것을, 시를 통해 느끼고 배우게 됩니다.  


글 속에 담긴 정서가 다사롭고 평온해 시를 읽는 이마저 풍경으로 끌어 들이고 마음에 청초한 가을을 선사합니다.

이리도 쉬운 언어로 가을의 정서를 전달하는 시인의 모습과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오버랩 되는건 왜일까요.  문태준 시인은 웅장하지만 고독한 브람스도, 영웅적이고 오만한 바그너도, 화려하고 천재적인 리스트도, 그렇다고 울하고 아름다운 쇼팽도 아닙니다. 어린아이들도 연주할 수 있도록 쉽게 작곡되었지만 마에스트로들이 커리어의 마지막에 연주하게 된다는 모짜르트, 누구나 연주할 수 있지만 아무나 표현할 수 없다는 모짜르트,  그의 시는 모짜르트를 닮았습니다.



시인이 그리는 풍경은 비단 자연 뿐만은 아닙니다.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

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

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

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

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

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

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마음을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라고 노래합니다.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청보리밭도 살고, 개심사 고운 마루가 살기도 했으나 전나무 숲이 머무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도 합니다.


평범하고 분주하기도 한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은 과연

풍경이 들어설 수 있도록 '빈집의 약속'을 잘 지키는 '착한 사진사'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문득, 내 마음은 지금 어떤 풍경이 들어와 살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오늘의 내 마음 속 풍경은 붕어싸만코입니다. 제가 갑자기 붕어싸만코가 먹고 싶다고 하자 큰아이가 선뜻  '엄마 내가 사다줄께'라며 집 근처 편의점에서 붕어싸만코를 사다 주었습니다.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귀차니즘의 결정체인 큰 아이가 나를 위해 귀차니즘을 극복해주니 그거야말로 찐사랑 아닌가 싶어 오늘 먹은 붕어싸만코는 달콤한 행복이었고 오늘 담은 마음 속 풍경이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자연의 풍경을 보 듯  때로는 내 마음속의 풍경도 함께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시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Photo by Kangbch of Pixabay




이제,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가재미'를 마지막으로 문태준 시인으로 향한 여정을 마치려고 합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

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

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을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속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

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

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

가 가만히 적셔준다


- 가재미 전문-


이 시는 죽음을 앞 둔 어머니께 바치는 애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시인의 개인사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 속에서 전달되는 담담함 속에서 깊은 슬픔을 느낄 수는 있지요. 이 시를 읽을 때면 눈물이 나온다기 보다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병원의 치료도 소용이 없는, 죽음을 목전에 앞 둔 환자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옆에 가만히 눕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들을 오래토록 기억해 주는 것이겠지요.

가재미로 칭해지는 그녀가 시적 화자의 어머니라고 확신하는 데에는 마지막 문장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가냘픈 생명을 간신히 유지해주는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 마저도 시적 화자에게 적셔주는 것은 모정 아니면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가재미 2라는 시에서 그녀의 장례를, 가재미 3이라는 시에서 장례가 끝난 후 그녀의 집을 정리하는 모습을 연작의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나서 그 에 이 시를 배치하였지요.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강아지들 몸이 제법 굵다 젖이 마를 때이다 그러나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마른 젖을 물리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젖 물리는 개 전문-



시인 혹은 시적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 후 그녀가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나로부터도 자유로이 빈집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젖 물리는 개를 보며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보여주시던 '모성'은 다시는 만질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기억속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것이지요.

가재미라는 시집의 종착역은 가는 동안의 풍경들을 지나 결국은  잃어버린 사랑(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써 내려간 슬픈 회고록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소개하고 싶은 시가 너무 많아 선택하는데 힘이 들었던 시집 <가재미>의 소개를 이제 마치려 합니다. 그런 시집이 있습니다. 시 한 편 한 편 주옥 같은데 그런 시가 무려 몇 십편씩 들어있어 만원이 채 안되는 가격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책 말이지요.

더불어  <가재미>는 제게 시란 무엇인지,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길잡이 같은 책이었습니다. 무릇 시란 누구든 쉬이 읽을 수 있지만 쉬이 지 못하게 하여야 함을 분명히 배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시집이, 혹은 그런 책이 있으신가요?





다음 여행지는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려 볼까 합니다. 그럼 다음번 여행까지 안녕히....


                                                                                                                                                  From 작은나무





가재미 시집의 좌표는 아래 링크를 눌러 주세요

http://moonji.com/book/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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