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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08. 2021

시인은 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인가요?

문태준, <가재미> (상)

울퉁불퉁한 뼈 같은 시여, 네가 내 손을 잡아주었구나

                                                                                    - <가재미>, 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들일까요?

나는 물이 약 70%,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 등등이 약 20%, 무기질 및 기타 잡생각 등이 10%로 이루어진 지극히 평범한 호모 사피엔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시인은 지구 시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네들은 저기 우리 은하에 흐르는 은하수나 이웃한 은하인 안드로메다, 혹은 이름 모를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낭만과 슬픔, 사색으로 이루어진 종족으로써 지구에 잠시 거주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보석함에서 가장 먼저 꺼내 본 시집은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입니다.

문태준 시인은 1970년생으로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는 시인입니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고려대 국문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94년 《문예중앙》에 「처서」외 9편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지요.

1996년부터 불교방송 프로듀서로 시작, 현재는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출처: <가재미>, 네이버 프로필)


한국시집박물관이라는 홈페이지에서는 문태준 시인을 아래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시로 「가재미」, 「맨발」, 「역전이발」, 「수런거리는 뒤란」, 「어두워지는 순간」, 「비가 오려할 때」 등이 있으며, 세 번째 시집인 『가재미』(2006)에는 제5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누가 울고 간다」와 제21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시 「그맘때에는」 등이 실려 있는데, 시인이 유년을 보낸 고향의 풍경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미약한 존재들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시집 『그늘의 발달』(2008)에서는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정감이 가득한 세계를 감각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창비, 2000), 『맨발』(창비, 2004),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 『그늘의 발달』(문학과 지성사, 2008), 『먼 곳』(창비, 2012)이 있다. 산문집으로 『느림보 마음』(마음의 숲, 2012)이 있으며, 시인의 애창 시를 모은 『포옹, 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해토, 2007),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민음사, 2008),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민음사, 2012)를 펴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2002년 고대 문인회 신인작가상, 2004년 제17회 동서문학상, 2004년 제4회 노작문학상, 2005년 제5회 미당문학상, 2005년 제3회 유심작품상, 2006년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출처: 한국시집박물관 http://xn--zb0b2hu97a1ya31wlzk6ku.org/?mod=document&uid=1156&page_id=30)'






시인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들일까요?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다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음식을 먹고, 거의 비슷한 뉴스를 보고, 거의 비슷한 교육을 받았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데도 시인은 나와는 너무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참으로 특별하고 좋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주변을 향해 관조적이면서도 겸손하게, 또 적당히 따듯하게 머물렀지요.

예를 들면 길을 걷다가 늙은 매화나무에 핀 매화를 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 단원 김홍도, 백매>


늙수그레한 매화나무 한 그루    

배꼽 같은 꽃 피어 나무가 환하다

늙고 고집 센 임부의 해산 같다

나무의 자궁은 늙어 쭈그렁 한데

깊은 골에서 골물이 나와 꽃이 나와

꽃에서 갓난 아가 살갗 냄새가 난다

젖이 불은 매화나무가 을 놓고 앉아 있다



                      - '매화나무의 解産' 전문

                                                                                 

                                                       


시인은 늙어서 굵고 주름 진 나무가 이제 막 하얀 매화꽃을 피워 낸 것을 보고 늙었지만 기어이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마는 나무에게서 늙은 임부의 아름다운 고집을 보았습니다. 해산하느라 기진맥진 했어도 갓 태어난 생명에 기뻐 늙은 산모는 넋을 놓고 앉아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이 시를 읽고 난 후로 늙어 보이는 매화나무를 볼 때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저도 출산의 경험이 있으니까요. 한번도 피어난 꽃을 보고 나무의 아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시를 통해 사유의 울타리를 조금 넓혀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자신의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를 갉아먹는 벌레를 보면서 시인은 이렇게도 노래합니다.




시인이랍시고 종일 하얀 종이만 갉아먹던 나에게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행복이 생겼다

내가 찾고 왕왕 벌레가 찾아

밭은 나와 벌레가 함께 쓰는 밥상이요 모임이 되었다

선비들의 亭子모임처럼 그럴듯하게

벌레와 나의 공동 소유인 밭을 벌레詩社라 불러주었다

나와 벌레는 한 젖을 먹는 관계요

나와 벌레는 無縫의 푸른 구멍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노동은 단단한 턱으로 물렁물렁한 구멍을 만드는 일

꽃과 잎과 문장의 숨통을 둥그렇게 터주는 일

한 올 한 올 다 끄집어내면 환하고 푸르게 흩어지는 그늘의 잎맥들


                                                                    - '벌레詩社' 전문


자신의 텃밭을 침범한 벌레에게 쉬이 자리를 내주고, 심지어는 소유권도 인정해줍니다. 더불어 채소를 갉아먹는 벌레의 행위에서 시인의 창작하는 노동과의 동질감을 포착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을 벌레와 동일시하여 벌레처럼 작은 생명체의 시선에 머물 줄 알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벌레를 시인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려 벌레의 생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안아줍니다.

시골의 작은 텃밭에서 가끔 조우하는 거세미나방 애벌레나 호랑나비 애벌레를 보면 소스라치며 떼어내던 저였는데 이 시를 읽고 난 이후로는 벌레들을 함부로 잡아 죽이기가 참 곤란해졌습니다...



이처럼 <가재미>에서 보이는 시의 주제들은 공통적으로 시인이 자연이나 생활에서 관찰하고 바라본 대상을 통해 시인이 느끼는 그리움, 아쉬움, 반성, 대상과의 일체감 등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집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를 읽을 땐 시인이 자연이나 생활에서 관찰해서 뽑아내는 사색이 허무하거나 약간은 부정적이어서 삶에 대해 조금 비관적인 사람인가, 혹은 삶이 재미가 없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1부를 읽고 있던 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거울처럼 보여준 것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2부, 3부, 4부를 읽어나가면서 시인의 놀라운 시선과 표현, 그의 철학과 사색의 결론들이 저를 격렬하게 사로잡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1부로 돌아가 읽었더니 처음 느꼈던 첫인상이 말끔히 사라지고, 비로소 시인의 심상이 읽혔습니다.  첫인상은 무뚝뚝하지만 만나면 만날 수록 보드랍고 착한 사람 같습니다.  첫느낌의  무뚝뚝함이 사실은 착한 심성을 구태여  티 내지 않으려는  투박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가재미>에는 자연과의 물아일체를 보여주는 시들이 있는데 그 표현과 묘사, 분위기에 흠뻑 하게 됩니다. 자연의 아름답고 소소한 풍경을 담담하게 그린 그의 시들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같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지요.


                                                        <추사 김정희, 세한도>



여기 세한도처럼 담백하면서도 서정미 가득한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 '누가 울고 간다' 전문-


눈앞에 정경이 펼쳐집니다.

시골의 초가집, 밤 새 눈 쌓여가는 겨울밤,  그 밤에 잠시 툇마루에 머물고 간 새

새의 울음소리에 문을 열고 따듯한 방으로 초대하려 했건만

이름도 못 불러 본 사이 새는 날아갑니다.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고적한 풍경이 되어 시인의 마음에, 혹은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에 살포시 들어와 앉습니다.




또 첫눈 내리던 날, 집 앞마당에서 만난 멧새 한 마리를 본 시인은 멧새가 사실은 이 시골 동네의 터줏대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복하게 내린 첫눈 위에

찍어놓은

한 마리 멧새 발자국

첫 잎 같다

발자국이 흔들린 것 보니

그 자리서 깔깔 웃다 가셨다

뒤란이 궁금해 그곳까지 다녀가셨다


가늘은 발뒤꿈치를 들어 찍은

그 발자국을 그러모아

두 귀에 부었다

맑은 수액 같다

귀에 넣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니

졸졸 우신다

좁쌀 같은 소리들

귀가 시원하다

발자국을 따라가니

내 발이 아직 따뜻하다


멧새 한 마리

시골집 울에 내려와

가늘은 발목을 얹어 앉아

붉은 맨발로

마른 목욕을 즐기신다

간밤에 다녀간 그분 같은데

밤새 시골집을 다 돌오보고선

능청을 떨고

빈 마루를 들여다보고 계신다




                       - '한 마리 멧새' 전문



작은 생명체에도 예사롭지 않게 보는 겸허한 시선 덕분에 시인은 이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이겠지요.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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