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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11. 2021

시인은 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인가요?

문태준, <가재미> (중)

시인은 대체 무엇으로 이뤄진 존재인가요?

향기는 어항처럼 번지네                                       

나는 노란 소국을 창에 올려놓고

한 마리 두 마리 바람물고기가

향기를 물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네


                   - '소국을 두고' 일부


<가재미>에서 특히 좋아하는 묘사입니다.

어느 가을날, 창가에 올려둔 국화의 향기가 바람에  은은하게 번지는 것을 시인은 바람 물고기가 향기를 물고 들어온다고 표현합니다. 이로써 향기가 퍼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시각화 됩니다.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생경한 표현 때문인 듯합니다. 상투적인 표현을 전복하는 순간, 시는 생생하게 살아나지요.



감국화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  

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 '시월에' 일부


노란 감국화가 활짝 핀 모습에서 시인은 늙은 어머니연상한 것이  아닐지요.

꽃의 얼굴에서 잔주름 자글자글한 미소를 본 시인의 시선이 놀랍기도 아름답기도 합니다.




 걀쭉한 목을 늘어뜨리고 해바라기가 서 있는 아침이

었다

 그 곁 누가 갖다 놓은 침묵인가 나무 의자가 앉아

있다

 해바라기 얼굴에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박혀 있다


                                               - '빈 의자' 일부


해바라기 옆에 놓인 비어 있는 나무 의자, 고요하면서도 조금은 외로운 그 광경을

시인은 '누가 갖다 놓은 침묵'이라고 묘사합니다. 그 광경이 외롭지 않도록 '수천 개의 눈동자'를 가진 해바라기가 바라봅니다.







<가재미> 속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묘사가 엿보이는 시도 많지만 사물을 빌려 자아를 성찰하는 시도 많습니다.



 빛이 있고 꽃이 있는 동안에도 깊은 산속 강대나무

를 생각한다

 허리를 잡고 웃고 푸지게 말을 늘어놓다가도 나는

불쑥 강대나무를 화제 삼는다

 비좁은 방에서 손톱 발톱을 깎는 일요일 오후에도

나는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몸이 검푸르게 굳은 한 꿰미 생선을 사 집으로 돌아

갈 때에도 강대나무를 생각한다

 회사의 회전의자가 간수의 방처럼 느껴질 때에도 강

대나무를 떠올린다

 강대나무를 생각하는 일은 내 작은 화단에서 죽은

화초를 내다 버리는 일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두듯 강대나무를 생각하면

가난한 생활이 비로소 견디어진다

 던져두었다 다시 집어 읽는 시집처럼 슬픔이 때때로

찾아왔으므로

 우편함에서 매일 이별을 알리는 당신의 눈썹 같은

엽서를 꺼내 읽었으므로

 마른 갯벌의 소금밭을 걷듯 하루하루를 건너 사라졌

으므로

 건둥건둥 귀도 입도 마음도 잃어 서서히 말라죽어

갔으므로

 나는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내어 떠올려 내 누추

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서럽게

불러 내 곁에 세워두는 것이다


  - '강대나무를 노래함' 전문



강대나무는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를 뜻한다고 합니다. 강대나무는 여러 가지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강대나무가 지금의 세상이 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 준 수많은 사람들 -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절 목숨을 바친 젊은 청년이거나 산업현장에서 재해로 무고하게 죽은 노동자들,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숨진 배달 노동자들처럼 직간접적으로 내가 누리는 혜택과 편의의 숨겨진 공로자들로 비춰집니다.


굳이 나와 크게 관련 없을 것 같은 희생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저는 왠지 이 '강대나무를 노래함'이라는 시를 읽을 때면 부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무의미할 때에도, 가난할 때에도 자신의 모든 일상은 어떤 이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일 수 있기에 어떤 일상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환기시킵니다. 세상 모든 곳에 정의(justice)를 실현할 수는 없지만 이런 개인적인 환기와 자성은 적어도 내 양심에 정의로움 한 스푼 정도 더해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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