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잡문집 09화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괴롭히는 방법

by 김정은

제목을 쓰면서도 무척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괴롭히는 방법' 이라니! 세상에 정말 그런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법이 진짜로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내가 잘하는 폭풍 검색을 해 본다. 다다다다~~


헐~! 세상에! 직장 상사 괴롭히는 방법이 정말로 있다. 것도 아주 다양하게, 심지어 책도 나와 있다. 게다가 2012년에는 아이폰 전용 직장상사 괴롭히는 어플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있나요? 전 갤놋 유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반대로 상사를 괴롭히는 부하 직원 대처하는 법에 대한 책도 있다!


출처: https://notefolio.net/zzoz/83510
요런 복수는 뭐 애교 수준


출처: https://hslifestory.tistory.com/


2013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5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기사도 찾았다. 46%의 직장인이 상사에게 어떤 형태든 '복수'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단다.


상사에게 했던 가장 통쾌한 복수로는 ‘상사 말 못 들은 척 무시하기’(30.8%)가 1위에 올랐다. 2위는 24.3%를 차지한 ‘상사의 지시가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못 알아들은 척 하기’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사를 칭찬하는 척 단점 꼬집기’가 21.5%로 3위에 올랐다. 기타 의견이 너무 재밌어서 몇 가지 추려 봤다.


- 촌스러운 옷을 입었을 때 계속 칭찬해서 스타일을 촌스럽게 만들기

- 사무실(탕비실)에 살찌는 간식을 잔뜩 사두고 틈틈이 권해서 살찌게 하기

- 커피믹스에 프로틴 가루 타 주기(살찌는데 특효)

-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그 사람의 핸드폰 번호를 연예인 번호라고 뿌리기

- 술자리에서 술을 엄청 먹이기

- 회식 때 개인카드를 긁도록 분위기 유도하기

- 마우스 왼손잡이 용으로 바꾸기

- 일 열심히 하는 척하면서 시간 끌기, 물어보면 대답은 착하게 하면서 일 진행은 질질 끌기

- 상사 애인 뺏기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왜 상사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을까? 1위는 바로 ‘자기 일을 나한테 떠넘겨서’(24%)였다. 2위로는 ‘과다한 업무를 지시했을 때(20.9%)가’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의견을 보였으며, ‘말, 행동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가 3위(19.2%), ‘나를 화풀이 상대로 생각해서’(14.4%), ‘내 아이디어나 업무 성과를 빼앗아가서’(11%), 9.6%의 직장인들은 ‘후배 등 다른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혼을 내서’ 복수를 했다고 응답했다.

(출처: https://kizmom.hankyung.com/news/view.html?aid=201306207845o)


나는 상사복이 참 극단적인 사람이다. 한없이 좋은 상사를 만날 때도 있었고, 세상에 이런 싸이코 같은 사람을 상사로 만나나 하늘을 원망할 때도 있었다. 좋은 상사와 그렇지 못한 상사를 만나는 비율은 4대 6 정도인 듯하다. 내가 만난 상사를 10명이라 가정할 때 10명 중 4명은 좋은 분들이었지만 나머지 6명은 그저 그렇거나 최악이이었다. 그러나 최악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꼽는 XXX가 있다. XXX라 부르기는 뭐하니 그의 별칭을 꼴뚜기 상사 부르겠다(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꼴뚜기왕자를 닮았다!)


나와 나이도 비슷했던 그는 나름대로 회사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부서장이었지만 지구를 뚫고 나갈 극강의 꼰대력을 가졌고, 세상의 완벽주의가 다 울고 갈 마크로매니저(macromanger)였으며,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면서 직급별로 차별까지 하는, 미덕(?)이란 미덕은 다 가진 종합 선물세트 같은 존재였다. 그에 대한 악명을 간간히 들어오긴 했으나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아주 순진한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던 터라, 그와 몇 달을 일하면서 내가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갖고 사람을 대해 왔는지 피눈물을 흘리며 깨닫게 된다.

출처: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2551621


꼴뚜기 상사가 가장 최악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결국 나를 괴롭혔기 때문인 것 같다. 일을 많이 시켜도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면 업무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대로 일은 대충대충 시키지만 성격이 좋아 직원들과 재미있게 지내는 분들도 있다. 어디에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 좋은 상사가 될 수도, 안 좋은 상사가 될 수 도 있는 경우는 최악이 아니다. 진짜 최악은 나를 마음먹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상사이다. 그럼 난 그 상사에게 어떻게 대했느냐고? 별로 도움은 안 될 경험담이지만 그래도 썰을 한번 풀어보려 한다.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그 상사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처 방법은 그 사람에게 '맞추기'였다.

대신 기한을 정했다. 딱 석 달만 맞춰보자. 실제로 이 방법은 여러 번 통했었다. 나는 지금의 직장에서 13명의 부서장을 만났는데 한분은 맞출 필요 없이 너무나 착한 분이었고, 또 한분은 지금까지도 연락드리면서 지내는 나의 멘토가 되었다. 또 한 분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합리적인 분이었고, 또 한 분은 늘 화를 냈지만 일에 있어 진심인 분이었다. 양아치 같은 상사도 있었고,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상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싸이코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스타일과 방향성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로는 대체로 다 무난하게 맞췄던 것 같다.


13번째(13번은 역시 불운한 숫자였군)로 만난 꼴뚜기 상사는 첫눈에 봐도 싸이코였다.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인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더불어 자신은 성인군자라 착각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 상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업무 스타일과 성격에 맞추기 위해 석 달간 노력했다. 보고하는 그 어떤 사항이든 조그마한 흠이라도 보이면 결벽증 환자처럼 난리를 치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잔소리를 하는 통에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지만 묵묵히 다 들었고 그의 요구에 최대한 맞추려 노력했다. 그리고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가기 위해 야근도 하고 주말 출근도 했다. 또 아랫사람의 칭찬과 아부에 목말라하는 듯해서 한동안 나름대로 옆에서 들리는 칭찬과 아부에 맞장구 정도는 쳐 주었다. 다만, 어떤 직원이 그 꼴뚜기 상사에게 연예인 000을 닮았다고 아부하길래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에이 그건 아니죠'라고 이실직고한 것이 발단이 되었을까. 그 후로 나는 정말 찍힌 듯했다.


감정 쓰레기통.... 아, 이런 걸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하는구나... 나 지금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당하는구나라는 걸 직장에서 처음 경험해 봤다. 직장 상사가 내게 아무리 과중한 업무를 맡기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응당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일을 처리해 왔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모든 화풀이를 내게 하기 시작했고, 보란 듯이 다른 직원에게는 잘 대해주었다. 부서장이 은밀하게 주도하는 왕따를 당하면서 나는 그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젊은 나이에 높은 직급에 앉은 사람이 도대체 동갑내기 부하 직원을 왜 저렇게까지 괴롭히고 있을까 생각하니 측은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왜 그렇게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는지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의 두 번째 대처 때문인 듯하다. 석 달간 최선을 다해 맞췄지만 결론은 '맞출 수 없었다'였다. 자기 자신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는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평소의 기준이 다 바뀌기 때문에 어제는 이렇게 대처해야 했던 것을 오늘은 전혀 다르게 대처해야 했다. 게다가 툭하면 내게 짜증을 냈고, 내가 마치 자신의 비서처럼, 엄마처럼, 누나처럼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이해해 줘야 하는 것처럼 굴어 정말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래서 부하직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상사에게 할 수 있는 나의 두 번째 방법은 '무시'하기였다.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무시하고, 그저 내 할 일만 묵묵하게 하면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상사는 무시할 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을 하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일상이었지만 직급이 높으면서 젊은 여성인 직원들에게는 천사처럼 대했다. 또 자기보다 높은 상사에게는 맹렬히 충성했다. 그가 일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래도 좀 나았을 것이다. 마크로 매니저라도 일에 대해 진정성이 있으면 같이 일할 맛이 좀 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진정성은 오로지 자신의 상사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뿐이었다. 같이 일하게 된 5개월 즈음부터는 그 꼴뚜기 상사를 경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심리가 은연중에 표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더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을까?


마음먹고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대처하는 마지막 방법은 '회피하기'였다.

나를 앉혀놓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 사항으로 비난을 듣던 날 나는 이 사람과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묵묵히 참고 견디면 그걸 알아주고 인정해주는게 아니라 호구로 취급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날로 인사과에 가서 휴직을 통보했다. 당시 그 부서에 간지 8개월 차였기 때문에 다른 부서로는 이동이 어려웠다. 둘째 육아 휴직 기한이 1년 정도 남아 있었기에 미련 없이 휴직 카드를 들었다. 물론 휴직으로 나는 승진과 한참 더 멀어져 버렸지만 아쉽지 않다. 대신 나는 유학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으니까. 휴직이 어려운 회사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사실 아찔하다.


이제까지 격무 때문에 내 자리를 도망간 적은 없다. 업무가 고돼서 사람들이 잘 도망가는 부서에서도 나는 최소 2년은 늘 버텨냈었다. 격무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면 몸과 마음은 고되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와 부서장과는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난다. 그런 끈끈함은 격무를 버텨낼 동력이 되기도 한다. 격무에서 노력한 것이 인정이 되어 나는 상도 받고 그나마 조금 쉬운 업무를 하는 부서로 배정을 받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이 망할 부서장을 만나게 될 줄이야. 결국 나는 8개월 만에 GG를 외쳤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상사와 매달 100시간 초과근무 중 둘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100시간 초과를 고르겠다. 물론 100시간 초과를 몇 달 해보니 이러다 과로사하는 건 아닐까 싶기는 했다만, 괴롭히는 상사와 몇 달간 일을 하니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릴 것 같았다. 실제로 몇 차례 호흡곤란이 오기도 했고,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은 나를 회의 탁자에 앉혀놓고 보고서를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썼다고 두 시간 가까이 협박 비슷한 윽박을 계속 해대서 정말 이 미친놈 앞에서 당장 창가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여기서 뛰어내리면 신문에 크게 나서 이 미친놈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자 내가 마치 괴물이 된 것 같아 충격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사람 때문에 왜 내가 망가져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나 자신을 격리하고 보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인 분리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피하는 것이 상책일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괴롭히는 진짜 최후의 방법은 바로 '잊어버리기'인 것 같다.

나는 이 글로써 이제 그 꼴뚜기 상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말끔히 지워버리려고 한다. 한동안 그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그런 이상한 사람이 우리 회사를 어떻게 좀먹을 것인지, 그 사람에게 또다시 나처럼 당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 눈에 불 보듯 뻔한 것을 알기에(그는 자신이 배치된 부서에서 꼭 한두 명의 희생양을 만들어 냈고 이는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갑질로 권익위에 신고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내부 고발자가 우리 회사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를 보아온 나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다. 모아둔 증거도 없고...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있다면, 그런데 그가 싸이코틱한 성향이라면, 그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그냥 도망치기. 내가 그 상사처럼 사람을 괴롭히는 소질이 있거나 같은 싸이코라면 함무라비 왕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괴롭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의 괴롭힘에 막연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보고, 최선을 다하면 다 잘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 그렇다면 그에게 먹이가 되지 말자. 괴롭히는 즐거움을 그에게서 뺏어 버리자. 그리고 실컷 흉을 보고 난 후 내 인생에서 그를 out 시켜 버리자.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그의 불행을 조금 측은히 여기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