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코로나를 앓고 약 3주 만에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했습니다. 평소에는 대청소를 할 때 저는 부엌과 거실, 화장실(3개)을 청소하고 남편은 빨래, 지하에서 2층까지 청소기 돌리기, 지하실 청소를, 아이들은 각자 방 정리를 했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각자 방 외에 화장실을 맡겼어요. 그랬더니 제 입장에서 청소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이불 빨래가 많아 하루 종일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있지만 어딘가 남아 있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깨끗하게 사라질 것 같아 저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ㅎㅎㅎ
캐나다에 온 지 벌써 10여 개월이 되었습니다.. 겨울에 와서 봄과 여름을 지냈고 지금은 초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은 아직 한창 더울 시기지만 캐나다의 8월은 선선합니다. 한낮에는 가끔 더워 에어컨을 켤 때도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어 밤에는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덥고 잡니다. 여름이 짧아 여름이 더 아쉽고 아깝기도 하고요. 또 겨울이 금방 올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입니다만 이곳에서 계절의 변화만 만난 것은 아닙니다. 먼 타국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친구들은 모두 어학원 수업에서 만났습니다. 어학원 수업은 레벨별로 이뤄집니다. 한 레벨당 수업 기간은 7주이고요. 맨 처음 레벨에서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친구를 사귈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 수업마다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했고 과제에 치여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그렇게 레벨 하나를 이수하고 나니 어학원 프로세스에 많이 익숙해지더라고요. 여유가 생기니 다음 레벨에서 만난 같은 반 학생들과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유뿐 아니라 서로의 성향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드라마 대본을 배우고 최종 시험으로 배역을 정해 직접 연기하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중국, 한국, 이집트, 수단 등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5명의 동기들과 조를 이뤄 함께 연기 연습을 하다 보니 저절로 사이가 가까워지더군요. 물론 모든 조원들이 적극적으로 연습에 참여한 덕분에 케미가 잘 맞기도 했지요. 사실 그룹 과제를 하다 보면 줌 미팅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저 혼자 과제 덤터기를 쓰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분들은 책임감이 강해서 그런 약속을 어긴 적도 또 숙제를 남에게 미루는 분도 없었는데 중동이나 남미 쪽에서 온 동기생들이 주로 약속을 잘 어기더라고요. 또 대놓고 자신은 숙제할 시간이 없으니 네가 다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동기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번 드라마 조원들은 모두들 책임감도 강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바람에 더욱 합이 좋았습니다.
한 번은 드라마 조원들끼리 커피숍에 모여 배역을 정하고 연습을 하는데 28살의 이집트에서 온 청년 모하메드가 자신의 동생 직업이 영상 촬영감독이라며 줌으로 수업을 할 때 드라마처럼 보이도록 찍을 수 있다고 제안했어요. 자신의 집을 연습 장소로 개방할 테니 언제든 와서 연습하라고도 했지요. 그 말에 우리는 모두 환호했답니다. 그렇게 모하메드의 집에 몇 번 모여 드라마 리허설을 하고 드라마 연기 날에는 다 끝난 후 모하메드가 맛있는 음식으로 애프터 파티를 열어주었어요.
찰떡궁합을 자랑했던 조원들
모하메드가 준비해준 요리
드라마 발표 날, 다른 조원들은 줌 미팅으로 각자 연기를 했지만 우리 조는 모하메드의 집에 모여 마치 시트콤처럼 연기를 했어요. 이 날 드라마 구경을 위해 어학원의 교수님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우리 조의 연기에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담당교수였던 미셀 선생님은 연기도 연기지만 너희들의 우정이 너무 예뻐 보인다며 이렇게 외국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새로운 우정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따듯한 평을 해주었지요. 그리고 우리 조는 100점 만점의 98점을 받았지요. 이런 점수는 제 어학원 기간 중 전무후무했답니다.
음식을 만들어준 모하메드의 마음 씀씀이에 반한 우리 조원들은 레벨이 모두 끝난 후에 각자 음식을 가져와 모하메드의 집에서 포트럭 파티를 했답니다. 자기 일은 잘 못하면서 잔소리는 많은, 그러면서도 순수하고 사람 좋은 수단 총각 페이잘, 영국의 리버풀 대학을 나와 큰 회사에서 인사담당자였다가 오랜 꿈이었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캐나다까지 온 모하메드, 중국의 치열한 입시경쟁을 피해 아이가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길 원해 5년 전에 이민 온 나의 단짝 헬렌, 남편이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뭐 부탁할 게 없냐며 한국인의 끈끈한 정을 보여주는 다정녀 동갑내기 진... 코로나 때문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나라와 인종을 뛰어넘어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같은 조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영어 공부에 진지하고 정 많은 한국인 언니도 만났지요. 한국인 동기들 모임에서 왕언니 역할을 해주던 캐서린 언니는 제가 코로나로 아파 누워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발만 동동 구르며 자신이 뭐 해줄 게 없냐고, 약은 있느냐, 먹을 음식은 넉넉하냐 어찌나 걱정을 해 주던지요. 혹시라도 집으로 찾아올까 봐 걱정 말라고 약도 음식도 넉넉하다고 단속을 했음에도 기어코 한국 식당에서 떡볶이와 치킨을 사다 집 앞에 놔두고 간 언니 때문에 눈물의 떡볶이를 먹은 적도 있답니다. 해외에 있다 보니 한국인들이 얼마나 정이 많고 세심한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남편의 친구지만 가족 모두 친해진 인연도 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비행기 조종사였던 마틴은 좋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 고국을 뒤로하고 캐나다로 왔다고 하더군요. 마틴의 부인인 마르게리따는 남미인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움이 가득 넘치는 매력녀예요. 세바스찬 바흐를 좋아해서 아이의 이름도 세바스찬이라고 지었다는 마르게리따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취미로 연주하는데 저와 함께 듀엣을 이뤄 공연하자고 약속까지 했답니다.
마틴네 가족과는 자주 모임을 갖고 있어요. 마틴이 우리 가족을 먼저 초대해주어 방문한 날, 마르게리따는 맥주잔에 소금과 라임을 묻힌 남미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어 주었는데 한 여름에 먹기 딱 좋게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다음에는 마틴 가족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한국식 삼겹살 구이와 쌈장, 닭구이를 대접했는데 연신 'delicious'라고 웃어주는 마르게르따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요. 입맛이 까다로운 세바스찬에게 내가 한 번만 삼겹살 고기를 쌈장에 찍어 먹어보라고 간곡하게 권하자 마지못해 먹었는데 먹자마자 엄지 척을 했답니다.
중국인 단짝 친구 헬렌은 중국인답게 만두의 명인입니다. 포트럭 파티에 헬렌이 만두를 직접 빚어왔는데 제 생애 먹어 본 만두 중 최고였어요.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가끔씩 음식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저는 김치전을 만들어 헬렌에게 직접 배달한 적이 있었어요. 헬렌의 아들 피터는 입이 짧아 비쩍 말랐는데 김치전을 두장이나 먹어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또 캠핑장에 초대해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대접하기도 했는데 헬렌이 너무 맛있다며 세 그릇이나 먹었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헬렌을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잡채를 만들어 줄까 생각 중입니다.
저는 연락을 자주 하거나 살뜰하게 사람을 잘 챙기질 못해 친구가 많지 않아요. 지금도 가족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어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먼 곳에서 만난 귀한 인연을 잘 이어나가도록 노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식 전도사가 되어 맛있는 한국의 식문화도 알려주고 싶네요. 마르게리따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기로 약속했는데 남미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